만나는 시간보다 피하는 시간이 애절해질 때

오피니언 / 김루 시인 / 2020-09-18 00:00:57
작가 세상

언제부턴가 소소한 행복을 잃고 말았다. 책을 읽고 함께 눈을 마주 보고 웃던 친구들. 걸음을 맞추며 나란히 걷던 산악 친구들. 소소하게 모여 차 한 잔 나누던 벗들. 후배들. 얼굴 못 본지가 오래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연극도 영화도 마음 놓고 보러 가지 못했다.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그러던 것이 벌써 몇 개월째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주말이 기다려졌지만 이젠 주말이 시큰둥하다. 종일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유 없이 초조하고 이유 없이 불안한 건 내 기분 탓일까. 


이어폰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선다. 걷는 걸음이 무겁다. 마스크를 하고 걷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땀이 송글송글이다. 사람이 없을 때는 잠시 마스크를 내렸다 다시 올리고 걷는다. 주말인데도 호수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천천히 걷는다. 걷다 답답해지면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은 아니지만 마음이 울적할 땐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곡을 듣는다. 그의 연주가 나를 물결치게 하기 때문이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났는데 물결치는 호수를 들여다보며 피아노 연주곡을 듣는 건 기대 이상이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앉아 음악을 듣는다. 흔들리는 나뭇잎이 건반이다. 물위를 건반이 두드린다. 새들이 건반을 두드린다. 바람이 하늘이 호수가, 연주는 점점 격렬해지고 호수공원은 춤추기 시작한다. 앞이 탁 트이고 출렁이는 물살 위에서 바람을 가로지르듯 가볍게 새가 난다. 코끝으로 스치는 풀잎 향기를 맡으며 나뭇잎 사이로 물결치는 햇살들. 주술이 펼쳐진 걸까.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는 아트센터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호른의 소리. 바이올린 소리. 피아노의 잔잔한 화음이 물위를 건너 내 심장까지 와 닿는다. 그러고 보니 벤치에 혼자 앉는 것도 처음이다. 항상 누군가랑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잘한 수다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렸던 기억이다. 그런 날이 그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자잘한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올려다보며 목이 부러져라 부러워하는 시대는 지났다. 내가 가진 것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다 보면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수다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서부터 몇 시간이고 모여 수다를 떨다 존재하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허구를 믿는 본성을 가진 인간으로 인지혁명을 이룬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과학을 이루고 실현 불가능하다 믿었던 달의 여행까지 계획한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영화와 같은 공포가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 수칙에 충실해지자.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견딘 시간이 몇 개월이다. 다시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에 집중한다. 나를 전율하게 하는 음악은 자연이다.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음들이 살아 움직인다. 이건 오롯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목소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간 다음에 이 음들이 남아 물결친다면, 다음의 사람도 새처럼 날아 내일이 좀 더 가벼워질 텐데. 단순한 상상으로 나는 걷는다.


김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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