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 인문강좌] 1년 동안 니체…<우상의 황혼>(3)

문화 /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 2020-09-18 00:00:48
밥TV 지상중계

루나와 리브의 니체 썰전 - 책을 좋아하는 루나와 철학을 가르치는 리브가 벌이는 흥겨운 철학 수다



Q. 우리는 행복해야 이성적일까? 이성적이어야 행복할까?

루나: 니체가 소크라테스의 ‘이성=행복=덕’이라는 구도를 비판하고 있어.


리브 : ‘이성적 능력 이성=행복=덕’을 연결 지어 설명하는 것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통된 생각이야. 먼저 덕이 어떤 개념인지를 알아야 해.


루나: 아레테.


리브: 무슨 뜻이야?


루나: 훌륭함?


리브: 아레떼를 덕이라고 번역했어. 그런데 고대 그리스어 arete를 현대어로 번역하는 것은 힘들어, 그래서 직역하기 보다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봐야 돼.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고유한 능력을 완벽하게 실현한 상태를 아레테에 도달했다고 보는 거지. 마치 꽃이 만발했을 때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활짝 피어난 그 상태가 아레테에 도달한 상태야. 물론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도 자신만의 아레테에 도달한 상태가 있겠지. 인간의 아레테가 도달한 상태는 이성적 능력이 활짝 꽃핀 상태인 거지.


루나: 나는 니체의 비판이 이해가 돼. 이성이 만발했을 때 과연 우리가 행복했는지 의문스럽거든.


리브: 그걸 조금 깊게 이해해야 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능력이 발휘된 상태를 조금씩 다르게 설명해. 공통된 것은 이성적 능력이 만발했을 때 행복한 상태로 이어진다는 것이지. 난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플라톤이 이야기한 마부와 두 말의 관계를 생각해 봐. 하나는 욕망이라는 말이, 다른 하나는 분노라는 말이 끌고 있을 때, 이 두 말은 서로 가려고 해, 우리 안에는 이런 두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 이 두 말은 서로 가려고 해. 욕망이라는 말이 앞질러 가면, 마차는 기울어지지, 우리의 삶은 엎어지는 거지. 


루나: 최근에 일어난 욕망만 보이는 사건들이 떠오르네.


리브: 부부의 세계?


루나: 버닝썬 사태.


리브: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춘재.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있는 검은 욕망이 툭 튀어 나온 거지, 자신의 삶의 마차만 넘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마차를 넘어뜨린 것이지. 결코 행복한 삶을 자신도 꾸릴 수 없고 주위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도록 만들지.


루나: 여기서 니체의 비판은 이성이 충만했을 때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가장 행복했을 때, 가장 적절한 건강상태에 있을 때, 이성과 감성, 정열, 욕망, 본능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동의해.


리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이성을 우위에 뒀다는 것이 니체는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두 말을 이끄는 마부를 이성으로 본 것이지. 이성적 능력으로 두 말을 조절하는 도식 자체가 니체는 마음에 안 든 거지. 


루나: 니체는 마부의 자리에 무엇을 놓고 싶었을까? 나는 건강한 생리적 상태 즉 행복을 놓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


리브: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을까?

Q . 니체는 이성이 만든 개념을 비판했을까?

루나: 소크라테스를 넘어가면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어, 이성중심주의는 감각과 본능, 정념을 무시하면서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올려놓는다는 것이잖아, 니체는 이를 생명이 사라진 죽음의 세계라고 보고 있어. 형이상학자로서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리브: 독자로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니체가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할 때 이성중심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는 거야,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을 때 ‘이성중심주의’라는 프레임을 씌워놓고 읽으면 안 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다채로운 논증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프레임을 씌우고 읽으면 편협한 독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루나: 니체가 그런 프레임을 씌웠다는 거야?


리브: 프레임을 씌운 게 아니라 니체가 이성의 강조를 비판할 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 이성중심주의라고 프레임을 씌우기보다는.


루나: 그렇네.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네. 프레임에 가두고 편협하게 보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는 것.


리브: 이성은 개념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도록 만들어. 우리는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세분화하고 정교한 개념을 만드는 것을 지식의 진보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니체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니체는 개념이 생생하고 풍요로운 감각의 세계를 박제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


루나: 잠언과 화살4에 그것을 비판하는 글이 있어. “모든 진리는 단순하다.” 이것은 이중적으로 하나의 거짓말이 아닐까?


리브: 책을 예로 들어 볼 게. 책을 만질 때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어. 향기도 맡을 수 있어. 책이라는 것은 나에게 감각적인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지. 


루나: 너무 느끼지 마.


리브: 그런데 니체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순간, 풍요로운 생기발랄한 감각의 세계를 개념이 망가뜨린다고 본 것이야. 한마디로 분위기 깨는 거지.

Q.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있을까?

리브: 철학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니체가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의 노선을 따르는 것을 알 수 있어. 깜짝 질문,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유명한 말, 뭐지?


루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리브: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강물은 계속 변하잖아? 강이라는 개념으로 마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강물은 계속 변하는 것이지. 그래서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이지. 감각적인 세계가 계속 변하는 것을 강조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적 노선을 니체가 따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어.


루나: 잠깐. 같은 강물은 아니지만 강물에 발을 계속해서 담그고 있잖아. 이성중심주의 즉 개념주의자들은 강물에 물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니체는 그 강물이 예전의 그 강물이 아니다,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리브: 문제는 ‘이 세계가 변하는 것만 있느냐?’하는 것이지. 이것을 이미 플라톤이 고민‘했어. 정말로 변화하는 것 밖에 없는가?


루나: 정말 궁금한데, 그러면 형이상학자로서 고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보는 거야?


리브: 나는 그렇게 봐. 나를 예를 들면, 니체는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욕구와 욕망과 충동의 덩어리밖에 없다고 봐. 끊임없이 생성변화 소멸하는 것이지.


루나: 니체는 고정된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


리브: 그런데 생각해 봐.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도 여전히 나를 나라고 보고 있어.


루나: 자아동일성 문제.


리브: 니체는 동일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 믿고 있는 습관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보는 거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그렇게 되면 연쇄살인마 유영철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 범행을 저지를 때의 유영철과 범행 후의 유영철은 다른 사람이니까.


루나: 쉽지 않은 문제군. 자아동일성의 문제가 파괴됐을 때 나타나는 문제네.


리브: 단지 그렇게 보려는 믿음의 산물로만 보기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그 이후의 철학자들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원리, 기준을 찾아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어. 그것이 가능했기에 지식의 진보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어.


루나: 니체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은 이거야. 개념화시키고 정돈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냄새 그리고 느낌들이 다 사라져 버리잖아. 마치 신화가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어. 니체가 소크라테스를 공격하는 것도 그 지점이잖아. 과거의 신화적인 것들(감각적인 것들)을 다 탈락시키고 언어적이고 개념적인 것들만 전달하는 사태를 공격한다고 봤어.


리브: 그런데 생각해 봐. 니체 본인도 개념을 쓰고 있잖아. 중요한 것은 개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것이냐? 아니면 이 세계를, 실재를 그 개념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골치 아픈 철학적 물음이지.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야.


루나: 중세시대 유명론과 실재론의 격돌이 생각나기도 하네. 니체는 유명론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리브: 그런 노선을 가고 있지.


루나: 리브는 실재론의 노선을 걷고 있는 거지?


리브: 그렇지. 니체 이후에도 실재론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이 많이 있지.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구독신청

오늘의 울산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