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홍수로 배우는 것들

문화 / 이동고 기자 / 2019-10-19 05:44:03
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경주 북천은 천년고도 경주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인공적인 하천정비로 하천생태계가 완전 망가졌다. 지난 홍수로 징검다리 석축이 뒤죽박죽됐다. 울산 태화강변 국가정원 조성원칙도 홍수 대비는 친수성과 물순환을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경주역 남쪽 방향은 천마총과 첨성대, 오릉 등 걸어 다니기 좋은 관광지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 반대편은 휑한 편이다. 인도를 걷다가 강변도로를 건너 경주 북쪽을 가로지르는 북천 강변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걸으면서 유적을 찾아다니는 것은 경주를 만나는 좋은 방법이다. 차를 타고 다니면 만나지도 못할, 표시도 없는 유적지를 만난다. 하지만 경주는 걷기에 불편한 도시로 대부분 아직 차량도로 위주로 돼 있다.

 
북천을 따라 오르다 보니 지난 태풍으로 피해가 컸다. 거대한 석축을 철심으로 엮어 만든 하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암석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그 부드러운 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때는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물살을 거스르는 것들을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또 낙차가 큰 거대한 암벽으로 북천 물속 생태계를 완전 단절한 곳도 보였다.

 
구황교를 건너 굵직한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석탈해왕릉에 도착했다. 석탈해왕은 신라의 4대왕으로 그 또한 다파나국에서 태어나 바다를 건너 신라로 왔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가 모두 알이나 황금상자에서 태어났고 신라의 왕실을 일군 박, 석, 김 세 성의 시조를 이룬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도 가야를 세운 김수로도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알이나 황금상자에서 태어난 것은 하늘의 뜻으로 세워졌다는 국조를 신비화하는 보편적 서술이다. 왕비가 알을 낳았다는 것과 배에 태워져 버려졌다는 것은 그의 탄생이 축복받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알은 먼 지역에서 안전하게 올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석탈해왕릉은 봉분 석돌장식도 없는 그냥 흙의 부드러움으로 선이 아름답다. 그 위로는 북악의 머리처럼 아주 큰 바위들이 병풍처럼 돌출돼 있는데 바로 표암(박바위)이다. 경주이씨 시조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으로 신성시 여기고 있다. 근처에 표암 유허비가 있는데 원래 동천에 있던 유허비가 1879년 홍수 때문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 위로는 알천양산촌의 시조인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목욕했다고 하는 구유 같은 광림대 석혈이 남아있다. 이곳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이자 신라 화백회의가 열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음 찾아간 곳은 헌덕왕릉이다. 마침 벼들은 누렇게 익어 가는데 지난 태풍에 쓰러진 벼들도 많다. 간신히 서로 묶어 세워 벼들 속에서 수백 마리 참새 떼가, 혹은 고라니가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현덕왕릉은 남산 소금강산 지구와 북천 사이에 있는데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설명에는 고려, 조선시대 북천에 큰물로 능이 떠내려갔고 지금 능은 복원한 것이라 한다.


헌덕왕은 재위 중에 일어난 김헌창의 난을 평정한 왕으로도 유명한데 이도 홍수와 관련이 있다. 헌덕왕은 신라 41대왕으로 애장왕 10년(809년)에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왕위를 찬탈한 까닭에 반정을 꾀한 친위세력 위주의 측근정치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함께 반정에 가담한 이들은 아우와 조카들이었는데 차례로 시중에 기용해 조정을 장악했다. 재위 10년까지는 안정적이었지만 인사 편중에 대한 불만이 곧 터져 나왔다. 특히 지방으로 방출당한 관리들의 불만이 많아 초적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은 선덕왕을 이어 왕으로 추대됐지만 그날 폭우로 냇물을 건너지 못해 왕위를 원성왕에게 내어준 불운한 인물이었다. 헌덕왕은 바로 그 원성왕의 태자 인겸의 아들이었다. 헌창은 비록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어긋난 운명의 비운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난을 일으켜 헌창이 네 개의 주를 장악하는 등 반란에 성공한 듯했으나 정부군의 진압작전으로 성이 함락되자 헌창은 자결했다. 운명을 가른 건너지 못한 하천은 어느 하천이었을까?


경주는 어디는 물난리로 인한 유적 훼손과 역사기록이 넘치지만 경주 북쪽을 가로지르는 북천 하천조성공사는 거칠고 인공적이다. 인위적인 석축과 예산만 낭비한 콘크리트 낙차와 구조물이 군데군데 자연하천 모습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조경과 꾸밈은 조잡하고 천년고도의 품격과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그 역사적인 기록을 자연하천과 연결지어 해석을 못하고 있으니 이런 꼴이 난다고 생각했다. 복구공사가 한창인 중장비 앞에 웬 촌로가 족대로 천렵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아니 그곳에 뭐가 잡힙니까” 물어보니 “미꾸라지 정도는 들어오는데 오늘은 안 된다”고 아쉬워한다. 촌로의 기억 속에는 북천에 물고기들이 천국을 이루던 시절도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하천을 생태적으로 살릴 고민은 없는 듯이 보였다.


울산은 태화강변 국가정원을 두고 큰 축하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반가워하고 축하할 일이면서도 강변 국가정원이 큰물이 지면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다. 기후변화를 고려할 때 강변 국가정원은 큰물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니 큰물을 끌어안는 자연생태적인 습지 중심, 물 순환 중심으로 가면 자연스럽고 특색 있는 테마가 될 텐데 아쉽다.


어디에나 있는 외래 핑크뮬리 다음에는 또 뭐를 모방해 심을까? 겨우 남아있는 왕버들 옆 자연습지에 또 전망 데크를 깔아 쇠물닭 번식지는 더 좁아졌다. 무엇을 먼저 고려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가야할지는 미룬 채 축하행사에만 들떠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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