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 수정 얼음 나라

문화 / 이동고 기자 / 2020-02-06 06:57:46
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영남알프스 설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산 정상에 올랐다. 가지산 산신령이 보낸 수정 얼음 나라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많은 이들이 초대를 받았다. 울산은 물론 포항, 창원 등 겨울눈이 그리운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전염성이 강한 돌림병으로 사람들이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따로 갈 곳을 정하기도 힘들었다. 자연은 겨울이라 삭막하고 생기를 느낄 수 없어 몸은 움츠려드는데 마음마저 졸이는 날들이 길었다. 이를 보다 못한 가지산 산신령이 나섰다. 기상 재주를 부리사 가지산 8부 능선 이상에만 눈이 쌓이는 신공을 부렸다. 이를 안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설산의 신경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가지산이 처음인 사람은 처음인 대로 가지산을 오르던 사람은 설경을 놓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산을 무작정 오르도록 만들었다.


먼저 초대받은 인간들이 감복해 올린 영남알프스 설산의 풍경들이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먼저 오른 이들이 정상에 오른 영상을 퍼 날랐을 터였다. 산에 올라 온 사람들 모두가 산을 타던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혼자 오르던 사람은 물론, 부부 동반, 부부들끼리, 친구들끼리, 허벅지 탱탱한 청춘남녀들까지 다종다양했다. 성인에 가까운 자제들도 부모를 따라 나선 것은 다 가지산의 설경과 가지마다 찬란한 수정 얼음의 영롱함을 보기 위함이었다.

 
산신령은 낮은 산에는 그런 비경을 선물하지 않았다. 눈이 없는 비탈길을 한참이나 지루하게 올라야 했다. 미끄러운 눈길을 다리 부들거리며 올라, 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턱밑을 차오르는 정도가 돼서야 눈 온 풍경을 맞았다.
가파른 석남재 코스를 택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고 있는데 바로 뒤를 따라온 부산에서 왔다는 커플은 정상이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겨우 30분을 오른 시간이었다. 남자는 배낭을 메고 여자는 자유 몸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직 30분 정도는 더 가야 능선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들은 흡사 ‘눈은 어디까지 올라야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가지산에 눈 온 풍경은 2년 전 폭설일 때 올라 본 이후로 처음이라 설렜다. 당시는 오후에 올랐고 눈길이 미끄럽고 힘들어 아래 휴게소까지 올라가고는 그냥 내려왔다. 눈이 쏟아지는데 계단을 앞두고 더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도 얼마나 올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가지산을 찾은 산꾼들도 가지산을 스무 번도 넘게 올랐지만 이런 폭설과 장관은 처음이라며 감격해 했다.


드디어 아래 휴게소를 지나고 나무계단이 끝나자 쌓인 눈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 쪽으로는 멀리 고헌산이 드넓은 펑퍼짐함으로 후덕함을 자랑하며 머리 부분만 만년설처럼 빛나고 있었다. 오늘에야 가지산보다 낮지만 고헌산이 왜 영남알프스 주산(主山)인지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가지산 정상을 이제 다섯 번, 그것도 설산을 보고야 알게 되는 것이다.

 

▲ 울주 상북면 마을들을 품고 있는 고헌산의 후덕함이 설산이 되고 나서야 더 뚜렸이 느껴졌다.  그 너른 품이 영남알프스 주산임을 알게 했다.ⓒ이동고 기자


가지산 정상 방향은 쌀바위를 머리로 좌우로 능선이 하얗게 보여 날개를 펼친 흰 독수리 같았다. 눈길은 한낮이 되자 이내 바닥이 질퍽질퍽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적설의 찬 기운을 품은 바람으로 썰렁해지면서 바닥의 질척함이 끝나고 발이 막 미끄러졌다. 거의 2년 만에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곧 가지산 중봉을 오르는 가장 힘든 코스,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이젠을 하고 내려오면서도 벌벌 떨었다. 그만큼 가파른 코스다. 중봉에 올라서자 전망이 대단했다.

 

가지산 왼쪽 능선에 눈이 쌓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반드시 인생 샷을 얻고야 말 테다’하는 심정처럼 열심히 셀카를 찍어대고 있었다. “히밀라야 산을 오른 것처럼 찍겠다”고 외치면서 짝퉁 사진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눈은 밀가루처럼 바닥에 폴폴거려 내려가는 길이 미끄럽지는 않았다. 참나무 가지마다 눈이 소복이 쌓여 입체감 있는 나목 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 막바지 정상을 향한 코스다. 올라가는 데만 신경을 쓰지 않고 가파른 바위 끝으로 절벽이 주는 시원한 전망과 설산의 풍경을 담았다.


가지산 정상은 산신령의 초대를 받은 자기 발로 걸어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000년에 새로 세운 대형 표지석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먼저 만들어진 아담한 표지석에서는 기다림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출출한 터라 이내 휴게소로 바로 내려갔다. 식당 바깥도 안도 사람들이 그득했다. 막걸리 한 잔을 먼저 들이키고 뜨거운 라면에 가져간 김밥을 먹었다.

 

 기분이 좋아질 대로 좋아져 밀양 방면 능선의 얼음꽃 장관을 맘껏 누렸다. 역광으로 얼음꽃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의 얼음들은 땡그랑거렸고 아깝게 바로 밑으로 떨어졌다. 올려다보니 산신령의 전령사인 듯 큰 까마귀들이 투명한 얼음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탄성을 질렀다. 눈을 뒤집어 쓴 정상에 자라는 무거운 소나무들은 얼음을 주렁주렁 달고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백신도 없는 전염병에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 말고는 다른 처방이 없다는 걸 알고 벌인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은 폰 메모리가 바닥나도록 찍고 또 찍었다.

 


날이 풀려가며 수정 얼음 나라 장관은 오늘이 마지막인 듯했다. 짧아서 더 찬연한 얼음 수정나라의 초대를 맘껏 누렸다. 또 이런 순간이 언제 올까나.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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