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산업 발전의 교과서, 덴마크 에스비에르

기획/특집 / 이종호 기자 / 2020-07-29 07:05:59
그린뉴딜 ‘태풍의 눈’, 해상풍력

에스비에르(Esbjerg) 시(市)는 덴마크 메인랜드인 윌란 반도의 서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덴마크의 다섯 번째로 큰 지역이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농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에스비에르는 1800년대 중반 항구가 만들어지며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어업/수출물류 위주로 이뤄졌던 에스비에르의 지역경제는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석유가 발견되며 관련 산업이 부흥했다. 석유의 발견으로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을 위한 해양플랜트 허브 도시로 성장한 에스비에르는 90년대부터 해상풍력 배후항만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며 현재까지 덴마크 해상풍력 시장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에스비에르는 전 세계 19개 에너지 도시들의 협업체인 WECP(World Energy City Partnership)에 속해 있으며, ‘해상수도’ (offshore capital), ‘에너지 대도시’ (Energy Metropolis) 등으로 불리는 등 해상풍력 산업의 핵심 산업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에스비에르 항구 전경(출처: Esbjerg Port)

 

덴마크는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닥친 오일쇼크 이후 석유 고갈 및 에너지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고, 때마침 환경오염 및 보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확산됐다. 90년대부터 덴마크는 당시 주력하던 풍력 중에서도 해상풍력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1991년 세계 첫 해상풍력단지 빈데비(Vindeby)를 건설했다. 5MW 규모의 빈데비 이후, 2002년 세계 최초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인 160MW ‘혼스 레브 1’(Horns Rev 1)이 완공됐고, 배후항만으로 선택된 에스비에르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지게 됐다. 

 

네트워크와 노하우 공유로 해상풍력의 기술적 어려움 극복

 

에스비에르가 혼스 레브 1의 배후항만으로 선택됐던 데에는 지리적 이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석유와 가스 채굴 설비의 유지 및 관리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기업들이 에스비에르에 있었고, 해상풍력단지 설계, 설비의 운반, 시공, 유지관리 등 개발의 전 과정에서 이들의 전문성과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었다. 160MW 규모의 혼스 레브 1을 운영하던 당시 오스테드(Ørsted)의 전신인 동에너지(Dong Energy)는 해상풍력산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으로 에스비에르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혼스 레브 1의 완공 이후 운영 초기 단계에는 해상풍력 관련 업체들의 수가 많지 않았고 당시 운영사였던 동에너지 역시 혼스 레브 1이 운영을 시작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해상풍력 활동을 했던 때였다. 혼스 레브 1이 완공되기 전까지 덴마크는 육상풍력에 주력했고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에 대한 경험도 없었는데, 혼스 레브 1의 운영 초기에 수심이 깊고 바람과 파도가 강한 북해(North Sea)의 특성상 파생되는 여러 기술적 결함들이 발생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에스비에르 내 기업들이 석유·가스전 사업에서 활용되는 기술과 노하우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협업으로 문제들이 해결됐다. 이는 에스비에르가 해양플랜트 산업과의 협업으로부터 오는 시너지 효과를 체감하고 미래 성장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

 

▲혼스 레브 1 해상풍력단지(출처: Vattenfall) 

 

첫 번째 대규모 해상풍력단지가 시행착오를 겪은 후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해상풍력 산업에 진출하게 됐는데, 이를 따라 컨설팅, 보험 설계 등의 업체들이 해상풍력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노리며 에스비에르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들 업체 중 하나였던 세계적인 국제표준 인증기관인 노르셰베리타스(DNV GL)은 석유·가스전 사업에 적용됐던 산업안전 기준을 해상풍력 산업에 활용해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에 이른다. 나아가 에스비에르에 사무소를 둔 엔지니어링 컨설팅기업들은 역으로 해상풍력산업에서의 기술과 지식을 석유·가스 산업에 적용하며 산업 시너지가 쌍방향으로 이뤄졌다. 

 

에스비에르의 해양플랜트, 배후항만 인프라, 해상풍력산업은 일방적인 지식 이전이 아닌,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면서 ‘에너지 대도시’(Energy Metropolis)로서의 리더십을 굳건히 했다. 이렇게 구축된 네트워크는 ‘덴마크 해양 클러스터’(Offshore Center Danmark)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 덴마크 해양 클러스터는 2003년 에스비에르와 인근 지역의 기업, 학계, 공공기관들이 해양 관련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협업하는 것을 목표로 형성됐는데, 창립 후 2013년까지 해상풍력산업 개발과 산업 간 지식 및 경험 공유, 그리고 기술 관련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바텐폴(Vattenfall), 람볼(Ramboll), 코위(COWI) 등과 같은 에너지 및 엔지니어링 업체, 덴마크 남부 성장포럼(Growth Forum for Southern Denmark), 덴마크 풍력산업 협회(Danish Wind Industry Association) 등이 이 클러스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8년 덴마크 정부는 덴마크 해양 클러스터를 덴마크의 해양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해양 혁신 네트워크로 지정했으며, 2009년 덴마크 남부대학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구성원들에게 경쟁력을 부여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데 가장 높은 성과를 보인 클러스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에스비에르, 덴마크의 ‘에너지 도시’이자 ‘해상수도’로 불리다

 

혼스 레브 1 이후 혼스 레브 2(209MW), 혼스 레브 3(406MW)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들이 이어지며 약 15GW 규모의 해상풍력 개발 부품들이 에스비에르 항만을 거쳐 갔다. 혼스레브 1의 개발을 기점으로 에스비에르 지자체는 해상 설비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시작했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미래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한화 약 1800억 원 상당이 투입됐으며, 에스비에르에는 해상풍력 터빈 수송, 사전조립, 선적, 서비스 등을 위한 특수 시설이 마련되고 관련 노하우가 축적됐다. 지자체의 인프라 투자는 에스비에르가 효율적인 해상풍력 서비스 제공 역량을 키우고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었다. 2019년 기준, 에스비에르에는 지역 내 1만3500개가 넘는 에너지 관련 일자리와 250개의 관련 업체가 자리 잡으며 에너지 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유럽에 설치된 해상풍력 관련 생산 규모의 80% 이상이 에스비에르 항구에서 출고됐으며, 덴마크 해양산업 종사자의 60%가 넘는 인력이 에스비에르에 있다. 

 

▲에스비에르를 거쳐 간 북해 인근 해상풍력단지(출처: Esbjerg Port)

 

2019년 6월 덴마크 정부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70% 절감시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는데, 이는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높은 절감계획이다. 이 계획만 봐도 덴마크가 재생에너지 등 지속 가능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고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덴마크의 풍력산업 협업기관 윈드덴마크(Wind Denmark)는 덴마크에 1GW의 해상풍력발전이 형성될 때마다 1만4600개의 정규 일자리가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인구 7만2000명을 보유한 항만도시 에스비에르의 활약이 그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난 10년간 해상풍력 시장의 급속성장으로 인해 덴마크의 풍력 관련 기업들의 매출 역시 배 이상 뛰었다. 2010년에만 해도 해상풍력은 이들 기업 매출의 20%를 차지했던 반면, 2020년에는 40%를 넘기는 기록을 세웠다. 덴마크의 기업들은 유럽 해상풍력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고,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가 2050년까지 450GW의 해상풍력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이들 기업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는 폭발적이다. 덕분에 현재까지 관련 일자리만 7만 개 넘게 창출됐고 국가 총 수출액의 12%가 관련 기술 및 서비스로부터 나오고 있다. 2019년 기준 덴마크 전체 전력 소비량의 47%가 풍력발전으로 공급되고 있으며, 이는 해상풍력의 확산과 기술 발달의 영향이 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에스비에르는 대한민국 국토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덴마크라는 작은 나라가 전 세계 해상풍력 산업의 선두주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덴마크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에스비에르 성장 ‘현재진행형’

 

덴마크 정부는 에스비에르와 해상풍력 산업에 지속적인 정책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2019년 초 덴마크 정부는 2019년 오스테드, MHI 베스타스, 지멘스 가메사 등 세계 유수 해상풍력 기업들과 MOU를 맺음으로써 매년 정기적으로 덴마크의 풍력산업 환경에 대해 논의하는 등 정부-산업 협력관계를 강화할 기회를 마련했다. 뒤이어 지난 5월에는 2030년까지 5GW 규모의 해상풍력을 생산할 ‘에너지 아일랜드’ 계획을 발표하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발틱해(Baltim Sea)에 위치한 보른홀름(Bornholm) 섬과 북해의 인공섬을 연결한 이 프로젝트는 장기적으로 10GW 규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에스비에르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인프라 투자 기업 인프라노드(Infranode)가 에스비에르의 해상풍력 터빈 제조 인프라에 1억3400만 유로(한화 18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임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약 2000개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더해 클러스터 시너지 효과의 중요성을 직접 눈으로 봐온 에스비에르는 해상풍력 시장을 선도하는 동시에, 추가적인 성장 모멘텀을 위해 디지털 허브로의 인프라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2019년 말, RE100(자사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부터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페인)을 선언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글로벌 IT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에스비에르에 미국 뉴저지와 북유럽을 연결하는 7000km 길이의 해저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에스비에르가 디지털산업에서도 허브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관련 기술이 에스비에르의 주력 산업인 해상풍력, 해양플랜트 등과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 에스비에르 해상풍력산업 발전의 역사에는 정부의 공격적인 투자 및 지원, 그리고 산업 간의 협업과 상호보완을 통한 성장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덴마크 정부의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정책 방향에 힘입어 지자체는 지역 내 산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기존 산업 인프라 및 기업과의 협력을 추진했다는 점이 에스비에르가 덴마크 ‘에너지 대도시’로 불리게 된 주요 요인이다. 에스비에르의 해상풍력은 클러스터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기존 기업들이 해상풍력산업 진출 기회를 제때 잡을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한 사례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은 울산에서 추진 중인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에도 장기적인 성장의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에스비에르와 같이 울산 역시 지역 내 기존 조선·해양플랜트 관련 기업과 인력이 협력하고 상호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019년 5월 울산시는 ‘한국-덴마크 녹색전환을 위한 파트너십 패널 토의 세미나'에서 덴마크 에스비에르와 해상풍력 에너지 분야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 도시는 업무협약을 통해 해상풍력 관련 정책과 규정, 발전단지 조성 및 운영 경험과 노하우의 공유, 두 도시의 공동이익을 위한 프로젝트 개발 등 해상풍력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뒤이어 6월에는 송철호 울산시장을 단장으로 한 울산시의 투자유치단이 에스비에르의 항만시설을 시찰하고 인근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를 방문해 해상풍력산업의 성장과정과 노하우, 그리고 향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해상풍력 및 관련 업계에서는 에스비에르가 울산이 해상풍력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좋은 모범사례라고 보고 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울산의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최근 발표된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 하에서 시장선점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들의 각축전이자 협업의 장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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