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포수 별동대

기획/특집 / 배성동 시민/소설가 / 2021-06-08 00:00:20
연재

조선범 망명 보고서(8)

▲ ©문정훈 화가


산포수부대의 결의

홍범도는 범 포획을 구실로 평소 뜻이 맞는 계원들을 은밀히 접촉했다. 일등포수 김문술(39세), 김창옥(40세), 김춘진(38세), 유기운(34세)과 역마촌의 역마포수는 북청산포대 포수계의 핵심 계원들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무대로 사냥을 해온 오랜 동지들이었다. 홍범도은 그들 앞에서 작금의 시국 상황과 조만간 닥칠 총기 몰수를 강력 비난했다. 


“화승총 없는 식민지 포수는 상갓집 개보다 못하오. 식민지 개로 살순 없소.” 


여덟 척 체구에 뼈대가 굵은 얼굴에는 짙은 눈썹이 서릿발처럼 섰다. 호랑이 뼈대 저리 가라는 강한 뼈대에서 나오는 대찬 호령에 핵심 계원들은 기꺼이 동참했다. 


홍범도가 모병한 의병 수는 68명이었다. 엄한 규율을 지닌 산포수를 비롯해 민간인이 섞였다. 산포수들의 손에는 화승총이 쥐어졌고, 총이 없는 민간인들의 무기는 창과 도끼, 단검 정도였다. 권취문은 이들에게 산악전술, 유인술, 사격술을 지도했다. 권취문은 일등포수로 구성된 별동대를 구상하고 있었다. 포수 경험이 풍부한 일등포수들은 언제든 무장 세력으로 나설 수 있었다. 노령 연추의진에서 무기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용맹성과 과감성 그리고 노일전쟁 때 러시아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입산한 포수를 우선 선발키로 했다. 

날으는 홍범도, 뛰는 호랑이

권취문은 오래전부터 홍범도의 영웅적인 무장투쟁을 암묵적으로 조력해 왔다. 첩첩난관을 견디어온 홍범도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장부다. 부리부리한 눈과 투박한 외모는 살짝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여기서 홍범도를 좀 더 살펴보자. 평양 우영 제1대대 나팔수를 지낸 말단 사병인 그가 어떻게 뛰어난 병법을 구사했는지는 강용권의 <홍범도장군>에 잘 나타나 있다. 백절불굴의 투지와 열화 같은 투쟁 정신은 어디서 난 것일까? 그의 머슴살이 신분과 봉건사회에 대한 증오, 불굴의 무장투쟁은 그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서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비록 한학교육을 받지 못하고 한글 정도 깨우친 정도였지만 참모만 잘 거느리면 천하를 호령하는 대호(大虎) 감이다. 


홍범도는 1895년부터 반일운동을 해왔다. 대표적인 반일투쟁은 강원도 김수협이라는 사람과 함께 벌인 철령 무장 탈취 사건이었다. 철령은 원산에서 한양을 오갈 때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다. 왜제 총 12자루와 탄환, 군수품을 빼앗아 감쪽같이 사라진 홍범도는 안변군 학포에서 의병 40명을 모병하고 한 달 동안 사격과 전법을 가르쳐 의병대오를 꾸렸다. 총기 탈취 사건이 벌어지면서 왜제 원산경비대대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홍범도와 김수협은 의병대오를 이끌고 주둔지를 떠나 유인석 의병장 대오와 합세해 세 차례 전투를 치렀지만 매번 실패해 김수협이 전사하고 의병 대부분을 잃었다. 이때 무장항쟁 지휘관 유인석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았다. 그 후 유인석은 만주, 연해주로 망명길에 올랐고, 홍범도는 함경도에 남아 탐관오리들과 왜제 앞잡이를 처단하고 부잣집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단독 의병 노선을 걸었다. 


1904년 노일전쟁이 터진 후 사실상 군사적으로 조선을 장악한 왜제 침략군은 수중에 든 조선을 러시아 진공의 발판으로 삼았다. 홍범도는 러시아군과 접전에 혈안이 된 왜제가 의병 탄압이 느슨해진 틈을 타 다시 반일투쟁을 전개했다. 북청, 갑산, 삼수 개마고원을 중심으로 백두산 등지에서 활동하는 함경도 산포수들을 규합했다. 그때 김홍만, 태양욱 일등포수들과 합세했다. 홍범도는 후치령 허원리에서 왜제병으로부터 총과 탄환을 탈취한 이력으로 북청경무분견소 군경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다. 만백성을 봉건으로 다스리는 친일배들의 파렴치 소행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증오하고 격분으로 총기를 탈취하다가 구속됐다. 그는 여섯 달 동안 원산경무대 유치장에서 감옥살이를 치렀다. 이때 원산경비대대에 복무하던 조력자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했다. 조력자는 홍범도가 체포되더라도 끝까지 발설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조력자가 있다고 본 군경은 탐문조사를 벌였으나 군 내부에 있는 조력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연풍 금정판으로 피신한 홍범도는 광산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추적이 잠잠해지자 처가의 고향인 북청 안산면 야산에 들어가 조용히 수렵생활을 했다. 이때 홍범도는 함경감영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안산, 안평 두 현 직업포수들의 동업단체인 포수계에 가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연대장(捕捐大將)에 추대된다. 포연대장은 지방 관리들과 교섭해 포획물의 수량을 헤아려 세금을 납부하는 직책으로 사냥꾼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직책이다. 

반구대포수와 만남

반구대포수들이 개마고원에 도착한 것은 가지산 궁근정을 떠난 지 근 이십 여일 만이었다. 곳곳에 숨은 왜제 끄나풀들의 눈을 피해 잠행을 해온 반구대포수들은 뼈 가죽만 남아 있었다. 어느덧 백로가 훌쩍 지난 뒤라 개마고원은 초겨울 날씨였다. 


“찾았소. 우리가 용케 찾아낸 것 같소.” 


권취문이 있는 밀영지는 후치령 허리원(中腹) 서짝골에 있었다. 자작나무, 참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가 자생하는 첩첩산중이었다. 밀영지 인근에는 작은 개울이 흘렀다. 소식을 들은 권취문이 달려와 포수들 한 사람씩 일일이 끌어안았다. 하나 같이 살점이라곤 하나 없는 앙상한 몰골이었다. 권취문은 반구대포수들을 데리고 홍범도가 있는 지휘부로 갔다. 


밀영지는 눈에 띄지 않는 산중에 있었다. 잠복 경계병의 날카로운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총대를 들고 훈련을 받는 대원들이 보였다. 맹수에게 겨눈 총구를 왜제 침략군에게 겨누었다. 들고 있기도 힘든 화승총을 지닌 자, 병기를 손보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소지한 화승총의 유효거리는 고작 50~100미터다. 지휘부 밀영으로 걸어가는 반구대포수들을 본 사냥개가 짖어댔다. 남녘 진돗개보다 체구가 큰 풍산개였다. 고산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추운 북지의 토종개답게 털이 거친 것들이 한눈에 봐도 날렵하고 명석해 보였다. 단단한 네 다리와 딱 벌어진 가슴, 쫑긋한 귀, 치켜세운 꼬리, 날카로운 눈빛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화전 집인지 너구리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휘부 밀영으로 들어갔다. 


“동지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호랑이도 무서워한다는 홍범도가 성큼 다가와 반구대포수들을 안았다. 큰 덩치에서 뜨거운 혈기가 느껴졌다. 홍범도가 지휘부 대원들을 인사시켰다. 이제 막 추석을 넘겼는데도 그들은 솜 넣은 옷을 입고 있었다. 14명의 사내들은 사냥 생활로 단련된 일등포수들로, 의병을 결의한 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두 손가락이 없는 사람, 뺨에 상처 자국이 있는 험상궂은 얼굴도 있었다.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화승총 화약 탄환을 잘못 다뤄 부상을 입었다. 인사를 마친 반구대포수들은 권취문이 안내하는 밀영에서 짐을 풀었다.


반구대포수들은 모처럼 휴식을 맞았다. 미루던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했다. 반구대포수들은 산발이 된 머리를 중처럼 짧게 깎았다. 이발을 하고 나니 소도둑놈들 상판떼기들이 말끔해졌다. 그들은 다음날부터는 권취문이 영도하는 훈련에 참가했다. 이 지역에 밝은 북청산포수들과 조를 이뤄 산악훈련도 치렀다. 상강이 가까워질 무렵 고된 훈련이 끝났다. 후치령은 가을이 없는 고산지대였다. 

조선포수 별동대

권취문이 주도하는 별동대가 구성됐다. 반구대포수들 외에 북청 출신의 이경화, 최화준, 석이 등 12명이 선발됐다. 이들은 무기 공급을 위해 노령에 있는 연추도회소로 떠날 정예 요원들이었다. 그 사이에 의병 수는 차츰 불어났다.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일반인, 나중에 합세한 태양욱 연합부대를 포함하면 그 수는 200여 명이 됐다. 홍범도는 중복주재소 무기 탈취 전략을 마련했다. 개마고원 산포수들로 구성된 새외사관 네 반으로 편성됐다. 산포수는 끈기와 강골의 상징이다. 한 번 본 짐승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정확한 사격술을 지녔다. 후치령반은 홍범도와 김문술을 중심으로 편성됐다. 홍범도와 한 조가 된 김문술은 노일전쟁에 참전한 전력이 있었다. 황초령반은 김창옥, 박용낙, 온성노, 부전령반은 김춘진, 유기운, 조병룡, 리문협, 금패령반은 황봉준, 노성극, 원성택, 최학선으로 구성했다. 황초령반 반장 김창옥은 백두산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산포수였다. 키가 여섯 자나 되는 6척 장신의 김창옥은 씨름판에서 당할 사람이 없는 장사였는데, 올 초에 들어서도 마천령 고두산에서 표범을 잡았다. 부전령반 반장 김춘진은 총기와 화약을 잘 다루고, 과묵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금폐령반 반장 황봉준은 천리안 소리를 듣는 일등 발자국꾼으로 총 대신 활과 창을 잘 다루는 창꾼이었다. 


연합 지휘부 작전회의가 열렸다. 전투부대는 홍범도부대, 차도선부대, 태양욱부대, 노희태부대로 분류됐다. 홍범도부대는 북청 후치령에서 마천령, 이원, 단천 지역을 작전지역으로 하고, 차도선부대는 풍산, 갑산, 삼수, 혜산에서 유격전을 벌이기로 했다. 태양욱부대는 백두산 지역, 북포태산, 백암, 대흥단, 무산 방향을 작전지역으로 정했다. 노태희부대는 홍범도부대와 연합작전을 펼치기로 결정됐다. 


배성동 시민기자, 소설가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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