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진정한 시작

기획/특집 / 이근우 시민, 농부 / 2019-07-17 08:31:28
농부 철학

농사 3년 만에 유기농의 참맛을 알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농사방식에서 얻은 깨달음이라면 소중한 체험이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수확한 농산물을 평가하는 표현이라면 심각한 오해입니다. 특별한 농사방식만으로 작물의 특성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작물의 특성은 토양의 상태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3년간 유기농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3년 이전까지 그 토양에서 어떤 농사를 지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면 고작 3년 사이에 토양이 농사짓는 이가 원하는 대로 변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 밭이 화학비료와 농약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던 곳이라면, 3년 유기농은 일반농법으로 지은 농사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유기농에 적합한 토양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기농 하던 밭에 일반농법을 도입하면 토양이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 반대는 최소한 5년은 지나야 유기농에 적합한 토양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약초 중에 천마라는 작물이 있습니다. 천마는 화학농약을 최소 2년 이상 쓰지 않은 땅이라야 재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를 뒤집어 표현하면 화학농약이 잔존하는 기간이 2년이라는 것이죠. 유기농을 시작한 바로 전 해에 농약을 사용한 토양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그 영향이 2년 동안 지속된다는 점에서 유기농 3년은 예전 농법의 연장일 뿐인 것입니다.
잘 갈아놓은 밭의 토양 상태는 백지가 아닙니다. 무수한 무기물의 구성체입니다. 그 화학적 구성비는 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토양에 따라 작물의 생육과 생산량이 서로 다른 것은 토양의 성질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기입자의 함량에 따라 토양의 성질이 결정되며, 이들 입자는 결합해 입단을 형성합니다. 이들의 구성에 따라 토양의 밀도가 달라지고 고체입자들 사이의 공간(공극) 또한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토양의 보수성, 배수성, 통기성, 물의 이동, 또는 뿌리의 활력 등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밭을 잘 가는 것만으로는 토양이 바람직한 성질을 가지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토양의 화학적 성격과 물리적 특성이 유기적으로 작동해 토양의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토양의 변화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 가뭄의 끝자락에 열린 호박


‘경반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밭의 토양 하부에 형성되는 단단한 층을 말합니다. 돌처럼 단단한 경반층은 밭의 위와 아래의 소통을 가로막는 격막의 역할을 합니다. 토양의 구성물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것을 가로막아 지속적으로 농사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물 빠짐을 방해해 밭에 물이 차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아시다시피 상시적으로 물이 차거나 습기가 과도하면, 밭에 병이 만연하거나 뿌리의 활력이 떨어져 농사를 짓기 어렵습니다. 또, 밭에 사용되는 화학비료가 경반층 위에 쌓이면서 염류집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경반층은 오랜 기간 무거운 농기계를 사용해 밭을 갈거나 하는 따위의 일상적 영농활동을 하는 사이 서서히 형성되고, 한번 만들어지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견고해집니다. 문제는 이 경반층을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3년 간격으로 기계를 동원해 심토를 파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반층을 예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3년 유기농의 성과를 자찬하기에 앞서 자신의 밭의 상태가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황하게 유기농 3년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농사의 진정한 시작은 토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농사짓는 방식, 농법의 핵심은 토양관리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많은 친환경 농법들이 토양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결여돼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환경농법에는 우리 농업이 가져야 할 매우 소중한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핵심이 친환경농법임은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토양의 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막 농사를 시작한 농민이 유기농을 실천할 경우 진정한 유기농의 구현은 그 원년이 아니라 토양의 상태가 유기농의 목표대로 변하는 시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경우 방식만 유기농법이고 생산하는 작물은 여전히 과거 농사방식으로 생산한 작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자두가 한창인 공판장


사실 농사에서 토양관리는 농법 이전의 문제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무경운 농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무경운은 밭갈이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토양 생태계와 물리적 성격을 온전히 보존, 강화하면서 농사를 짓는 방식입니다. 우리 부부도 일부 밭에서 무경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경운을 시작하려면 많은 전제가 필요합니다. 일종의 선수조건이 있는 셈입니다. 밭을 새로 장만해 무작정 무경운 농법을 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토양은 백지가 아니라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과격한 무투입 농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투입은 무경운보다 더 많은 선수조건이 있습니다.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무투입은 무소출로 이어질 뿐입니다. 이러한 농법들을 실천하기 위한 선수조건의 핵심은 당연히 토양의 상태입니다. 토양관리는 그림 그리는 이가 선택하는 캔버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캔버스는 백지가 아닙니다. 화법에 따라 미리 선택하는 매우 중요한 배경이자 토대인 것입니다.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각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썩지 않고 그저 말라가는 사과는 농산물의 궁극적 가치를 일깨우는 ‘사건’에 가까운 성취이자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글은 과장되고, 농사 외적인 요소가 많아 ‘썩지 않는 사과’에 대한 통찰이 결여돼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 글의 필자가 해당 농민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연농법만이 썩지 않는 사과를 구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 년 이상 공을 들이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성취일 뿐 아니라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는 일반농법으로도 어느 정도 근접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과수 중에 사과나무는 유기농은커녕 무농약조차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유기농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 냈다는 것은 농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반드시 그 농민처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농민의 성공에서 가장 본받아야 할 점은 토양관리입니다.

 

▲ 팔아도, 팔아도 줄지 않는 양파


많은 이들이 화학비료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경반층마저도 화학성분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경반층은 오로지 흙 표면을 무거운 것으로 압박할 때에 생깁니다. 화학비료로 인한 표면 흙이 덩이져 단단해지는 것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화학비료의 문제는 남용입니다. 화학비료는 가성비와 효율성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높습니다. 상시적인 남용이 이루어지는 까닭입니다. 거꾸로 화학비료를 토양의 상태에 맞게 알차게 쓰게 된다면 어떨까요?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유기농을 하는 이들은 액비를 많이 사용하는데, 숙성, 발효시킬 액비 재료에 잘 계량된 요소비료를 첨가하면 더 훌륭한 액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액비는 살포, 관주할 때에 적정량만 잘 가늠하면 작물에 큰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이처럼 화학비료는 토양에 필요한 무기물을 즉각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좋은 자재입니다. 다만 농사에서의 의존도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 농사보다 더 바쁜 택배

어떤 농법을 선택하든 농사의 핵심은 토양관리입니다. 자신이 장만한 밭의 토양을 세심하게 살피고, 검사해 토양의 건전성을 회복하도록 애쓰는 일이 농사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이 일은 몇 년간에 걸쳐 꾸준히 진행해야 하는 긴 작업입니다. 밭을 사기 전에 미리 그 토양까지도 조사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럴 수 없다면 원하는 농사를 마음껏 짓기 위해서는 토양조성에 긴 시간을 바쳐야만 합니다. 


이근우 농부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구독신청

오늘의 울산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