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살을 한 달 살았다

문화 /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2020-02-13 09:03:34
엄마일기

옆구리를 다쳤다고 했다. 평소 탁구를 치던 언니라 무리가 됐나 싶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모임에서 만나왔다. 지난 11월 모임은 옆구리 때문에 돌아다니기 불편하다고 언니가 다음에 보자고 했다. 그로부터 12일이 지나고 연락이 왔다. 만나지 못할 사정이 생겼다고, 조만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말이다. 다친 곳이 많이 아픈가 걱정이 됐다.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 언니의 남편께서 받으셨다. 누구시냐고 묻는데 순간 나를 뭐라고 소개할지 주춤했다. 전화기를 건네받은 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데 언니가 말을 잇지 못한다. 많이 아프냐고 물어도 언니는 난처해 할 뿐이었다. 어정쩡하게 끊어진 전화 뒤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남편이시다. 암이 생겨서 서울에 치료 받으러 다닌다는 말을 짤막하게 전하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생활하지 않았던가. 탁구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오던 언니였다. 그래서 나아서 만날 줄 알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언니 곁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안심이 됐었다. 무슨 암인지, 초기인지 말기인지, 수술을 했는지, 경과는 어떤지, 두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용히 기다려야 할 때인 것 같았다. 


해가 지나고 일월의 마지막 날에 언니는 눈을 감았다. 마흔다섯 살을 한 달 살고 갔다. 아팠던 옆구리는 간암으로 밝혀졌다. 생전에 체육인처럼 살았던 언니인데 암환자로 세 달을 버티고 갔다. 언니에게는 사춘기 딸과 늦둥이 아들이 있다. 남편과 사이가 좋았다. 서로 친구처럼 같이 탁구도 치고 자전거도 타고 취미를 공유하는 부부라 보기에 훈훈했다. 


언니의 소식을 듣고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입구 전광판에 언니의 이름이 적힌 걸 보고 왈칵 눈물이 났다. 계단을 올라가 204호 앞에 다다라서 언니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몸집이 컸던 걸로 기억나는데 반으로 접힌 듯 너비가 줄어있었다. 상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코가 후끈거렸다. 영정사진 앞에 섰을 때 언니가 죽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언니 왜 거기 있어요. 


“집사람이 걱정할거라고 걱정 많이 했어요.” 언니는 암에 걸렸으면서, 걱정하고 있을 내 걱정을 했단다. 언니의 가까운 지인에게서 항암치료도 받지 못할 만큼 체력이 떨어졌다더라, 밥을 넘기지 못해서 바짝 말라갔다더라, 복수가 차올라서 배가 남산만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언니 세 달간 많이 아팠구나. 그런 와중에 내 걱정을 했다니 언니답다. 


언니가 차려준 밥상을 여러 번 얻어먹었다. 마지막으로 언니네 집에서 먹었던 건 복숭아조림이다. 이런 것도 집에서 만들어 먹나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후히 베풀었던 언니는 가는 손에 식재료를 담아주곤 했다. 언니가 해줬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장례식장에서 식욕이 없었다. 언니가 주는 마지막 밥이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집어 먹었다. 


병을 알기 한 달 전에 언니는 친척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사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었다. 옷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언니는 먼저 일어났었다. 사흘 뒤에 옷 샀냐고 물었더니 백화점에서 백만 원을 썼다고, 앞으로 십년은 입어야겠다고 말했었다. 그랬는데 언니는 더 입지 못했다. 하늘은 알았는지, 짓궂게도 고운 옷을 선물했다.


언니는 가루가 되어 나무 밑에 묻혔다. 가서 흙을 만져보았다. 언니의 엄마는 소리 내어 울었고 남편은 사진 속 언니 뺨을 쓰다듬었다. 딸이 영정사진을 품고 앞장섰고 아들은 한 손에 과자봉지를 들고 뒤따라 걸어갔다. 내일은 언니가 죽은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세 달 전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삶도 죽음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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