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오피니언 / 조숙 시인 / 2021-05-04 00:00:59
작가세상

바다를 바라보면 눈은 멀리 수평선으로 향한다. 수평선이 별빛처럼 멀리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수평선은 대략 4.5km 거리에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라보는 사람의 키에 따라 거리가 다르다. 키 작은 사람에게 수평선이 더 가깝다. 수평선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수평선 너머 아득히 사라지는 배를 보면서 우리는 꿈을 꾼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해가 뜨고 달이 뜬다. 수평선의 일직선을 뚫고 올라오는 일출의 모습을 다산 정약용은 ‘붉은빛 물에 비쳐 어룡이 동탕하고, 뭇 어족 일제히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네, 황금 고리 번쩍하자 잔물결 일어나고, 구리 징 같은 태양이 오르자 먼지 장애 없구나(장기읍성, 동문에서 일출을 보다 중에서)’라고 노래했다. 일출이 주는 장엄한 느낌을 물고기와 용이 동탕해 보인다고 했다. 울산에서는 간절곶에서 일출을 보기 위한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 간절곶처럼 높은 절벽에서 보면 그만큼 수평선이 멀어진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해맞이는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아주 귀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으로부터 3백 년 전 1832년 9월 17일에 귀경대(龜景臺) 일출 장면을 기록한 <동명일기>는 연안김씨가 썼다. 1년 전에 날이 흐려 일출을 놓치고 어렵게 다시 맞이한 일출이었다. ‘홍색(紅色)이 거록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노더니, 이랑이 소래를 높이 하여 나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 외거늘,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그 붉은 우흐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白紙) 반 장 넓이만치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 몬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 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恍惚)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天中)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렛바퀴 같하야 물 속으로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 혀처로 드리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으더라. 일색(日色)이 조요(照耀)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하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할 데 없을 듯하더라.’ 


어렵게 얻은 일출의 장면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장대한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고 눈부신 일출의 빛으로 눈앞이 어질한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밤의 수평선은 어둠 속에 있지만 점점이 떠 있는 오징어 배의 불빛을 보면 둥글게 수평선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동해에 관련된 글을 쓰기 위해서 울릉도의 북면 숙소에서 며칠 밤을 지낸 적이 있다. 밤바다를 밝히는 고기잡이배는 어두워지기 전부터 불을 밝히고 마치 바위처럼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 너머로 노을이 퍼져서 하늘을 뒤덮고 나서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둔 불빛만 남게 된다. 짙은 남빛으로 변해가는 하늘 부분과 출렁이며 검어지는 바다 부분은 하나로 합쳐지고 경계가 사라졌다. 소리까지 사라진 하늘과 바다의 접촉 부분에 불빛만 남아 수평선을 알려주고 있었다.


1580년 송강 정철은 동해를 여행하고 기록한 관동별곡에서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뚜렷이 남아 있으나, 이 글을 쓴 사선(四仙)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사흘이나 머무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단 말인고? 선유담, 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를 비롯하여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고?’라는 글을 남겼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검은 중에 불빛이 아련한 울릉도 밤 수평선, 송강 정철 같은 명문장이라면 어떤 시를 남겼을까. 만난 적도 없는 정철이 그리워졌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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