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오피니언 /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2019-06-20 09:08:37
기억과 기록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가 지났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날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데, 학과 선배 몇이 강의실로 들어와 갈 데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동기생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선배들의 권유로 생애 첫 학내 집회에 나갔지요. 학생들의 자치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학도호국단을 대신하는 총학생회를 부활하자는 집회였죠. 총학생회 부활 운동이 전국적인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우리들은 집회에 참여하고 나서야, 집회의 이유와 집회 참석자가 저희들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뒤에 들은 얘기지만, 집회를 주도했던 이는 지금도 그 때를 잊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노래를 배웠지요. 민중가요가 불리는 곳, 그 언저리에서 서성이며 4년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 노래를 들을 기회는 종종 있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뒤 새로 공부를 시작했고, 또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근현대사를 비롯한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하니, 5·18민주화운동은 빼 놓을 수 없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국가보훈처는 5월 18일이면 광주5·18묘역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벌어진 이상한(?) 논란을 목격하였답니다. 국가보훈처가 2016년인가, 기념곡을 합창으로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반발하는 5·18관련 단체와 유족들은 기념식에 불참했습니다. 그들은 별도의 기념식을 거행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기념식에서 합창단이 기념식 무대에 올랐고, 준비가 덜 된 합창단원 일부가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방송을 탔습니다. 흔치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진 겨울날,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로 정치적 상황이 변화했습니다. 당연히 노래는 기념곡의 지위를 다시 얻었지요. 역사에선 이런 것을 진보라고 합니다.


진보사상은 근대에 와서 인류가 가지게 된 개념이라지요. 역사학에서는 17세기부터 진보를 말하기 시작했답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인류가 좀 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간다는 믿음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기계가 발명돼 인류의 삶은 더욱 편리해질 것이며, 도덕과 정신의 발전으로 세계에 대한 인류의 이해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핵폭탄과 같은 전쟁무기를 낳았고, 양심과 도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유태인 학살과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역사가 진행되면서 인류가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역사에서 진보는 있기는 할까? 1960년 즈음에 E.H.카는 ‘피압박 민족의 해방과 하층민의 자유 확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에서의 진보는 있어왔다고 말했습니다. 식민지 사람들은 독립을 쟁취했고, 하층민들의 지위는 지속적으로 향상돼 왔다는 뜻이지요.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긴 역사가입니다. 그는 역사는 인류에게 물질문명의 진보만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 평등을 향해 부단히 투쟁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고, 그 결과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물질적, 도덕적 혜택을 누린다고 했지요.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지요. 그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다는군요. 홍콩의 거리에서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를 넘어 세계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60년 전, E.H.카의 말처럼 한국의 자유와 정의,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경험이 홍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후 그들의 경험이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을 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이렇게 서로 연결된 채 더 나아져 가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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