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이론 산책하기

문화 /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2021-05-04 00:00:22
서평

 

(현재 626쪽 중 261쪽까지 읽었음을 미리 알려 두는 바) 이렇게나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지 않을 이유야 오조오억 가지는 찾을 수 있지만 단 하나의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이들의 잇단 부고 소식을 접하며 “사회는, 우리는, 아니 나는 그들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일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존재하지만 인식을 거부당한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죽음을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죽음들’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규모에 대한 정부 통계는 전무하며, ‘한국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 관련 경험과 장벽’ 논문에서 2018년 기준 20만 명, 한국 인구 5182만 명의 0.3%로 추산하고 있을 따름이다. 


흔히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라는 말로 자신의 무지와 게으른 인식을 드러내지만, ‘그런 사람’이라는 말은 명백히 나(주체)의 경계를 구성하는 외부의 존재가 있다는 인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다시 ‘없는데’라는 말로 존재를 지워버리는 자기 모순적인 태도는 이들을 손쉽게 인식의 장에서 퇴출시키고야 만다. 정체성의 정치가 필요한 이들이 폭력의 위험을 무릅쓰고 존재를 드러내더라도 “정신병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로 치부되고야 마는 까닭은 이들을 부정, 병리화, 비난, 혐오해야만 성별이분법 질서 내 공고한 주체의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의 명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는 생물학적 성(섹스)과 구분되는 사회적 성(젠더)을 통해 성별분업, 성역할 등의 근거가 되는 여성의 열등함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됨을 주장했다. 성차별은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젠더는 여전히 유효한 도구다. 그러나 최근 렏펨은 ‘젠더론’이라는 말로 ‘트랜스 멍멍이’, ‘트랜스 독수리’, ‘트랜스 부엉이’ 등 어디에나 ‘트랜스’를 붙일 수 있으며, 젠더는 ‘뇌 내 망상’일 따름이고 퀴어 정체성은 가짜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젠더가 트랜스젠더에서 기인했고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성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해 질서를 교란하는 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극우 종교단체의 주장과 묘하게 닮아있다.


렏펨 또는 퀴어를 부정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한 이론적 반박을 읽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반려견과의 산책처럼 이리저리 따라가다 보면 “아하!”하는 감탄이 나올 때도, “어라?”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매우 만족스러운 산책길이었다. 10년 전 처음 접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이 여전히 트러블로 남아 있는 와중에 속 시원한 솔루션을 제공받아 지적 희열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고, 교사의 위치성에 대한 고민이 깊은 와중에 “규범”과 “수행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탐구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젠더 스펙트럼에 대해, 젠더는 곧 섹스라는 이론에 대해, 최근 페미니즘 진영 내 경합하는 주장들에 대해, ‘쓰까페미’라는 말로 권리를 제로섬게임으로 보는 편협한 사유에 대해 궁금하다면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길 권한다. 혼자보다 함께 긴 호흡으로 읽기에 적합한 책인 터라 혹시 함께 공부하며 읽고 싶은 분이 있다면 연락 주시길…


어제는 전교조 여성위원회 페미니즘 연속 강연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똥’ 활동가를 줌으로 만났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소수자 학생이 학교에서 겪을 어려움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됐고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고민에도 빠졌지만, 무엇보다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외칠 수 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 있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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