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製茶)의 기쁨

문화 / 김상천 시인 / 2021-06-08 00:00:31
다향만리
▲ 녹차 제다(製茶) 중 살청(殺靑)과 유념 과정 ⓒ김상천

 

목적을 성취하는 기쁨이 크지만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누리는 기쁨 또한 적지 않다. 어쩌면 과정에서 겪는 일들 때문에 얻는 의미와 만족감이 훨씬 크고 많다. 등산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상에 서는 뿌듯함과 기쁨보다 산에 오르는 과정에서의 재미가 더 좋다고 한다. 등산 도중 길가에 핀 야생화의 매력이며 울창한 숲과 온갖 나무와 바람 소리, 새 소리 그리고 개울가에서의 점심 식사, 오르고 내리는 산길의 멋스러움과 오솔길이 있는가 하면 큰길도 있고 절벽 계단도 있어 재미있다. 땀 흘린 뒤 산 중턱에서 맛보는 시원한 바람은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인간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생의 목적을 다 이루고 목표점에 이르는 기쁨보다 삶의 여정 길에 겪는 일들 속에서 누리는 행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차(茶) 또한 완성된 차를 마시는 기쁨도 있지만 제다(製茶)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청허당(淸虛堂) 뜰에는 4년 전 지리산에서 구입한 차나무 백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기후와 토양이 잘 맞지 않아서인지 힘들게 자란다. 올해도 5월이 돼서야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바구니를 들고 찻잎을 따는 아내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내가 손수 따지 않고 등 떠밀어 아내에게 이 일을 시킨 것이다. 귀찮아하는 아내에게 ‘제다의 기쁨을 당신에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찻잎을 따는(채엽:采葉) 과정에서의 멋스러움은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자신 또한 행복감에 젖을 것이다. 한 바구니 찻잎을 방으로 갖고 와서는 돗자리를 펴고 찻잎을 곱게 널었다. 위조(萎凋)하기 위해서다. 위조란 시들게 하는 것인데 파란 찻잎 옆에서 아내는 차와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아마도 그날 밤 파란 꿈을 꿨을 것이다.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그리고는 삼백도가 넘는 고열에 차를 덖기 위해(殺靑:살청)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불을 땐다. 달궈진 솥뚜껑에 찻잎을 넣고 실장갑 네 켤레를 낀 손으로 덖는다. 어느 정도 덖은 다음 준비해둔 멍석에 찻잎을 올려놓고 열심히 비빈다(揉捻:유념). 이런 살청과 유념을 아홉 번 반복한다. 어느덧 아내의 이마에는 붉은 땀방울이 몽실몽실 피어 오른다. 이때 불 조정과 덖는 시간 조정을 조금만 잘못 해도 차를 망치게 되는데 차는 도자기처럼 ‘불의 예술’로 탄생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차를 만드는 장인의 심정, 이 또한 행복이 아닐까. 마지막 건조(乾燥)를 하면 비로소 녹차(綠茶)로 탄생하는 것이다. 


요즘 나는 아내가 만든 녹차를 청허당 방문객들에게 열심히 자랑하고 맛보게 한다. 다들 맛이 훌륭하다며 좋아하지만 차를 만든 아내의 행복만 하겠는가. 요즘 화차(花茶)를 만드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화차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제다의 과정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정성껏 만든 차를 사람들에게 내어놓을 때 그 또한 큰 기쁨이라 할 수 있겠다. 일부 다원(茶園)에서는 제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하니 자녀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이차 같은 발효차는 짧은 시간에 체험이 불가능하지만 녹차는 가능하다. 


남쪽 지역에서 텃밭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에게 몇 그루의 차나무를 심어보라 권한다. 차나무가 생육이 까다로워 아무 데서나 자라지 않지만 조건이 맞는다면 텃밭 언저리에 차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차를 마시는 즐거움도 있지만 제다의 기쁨이 실로 크다. 찻자리에서도 그 느낌이 다를 것이다. 내가 길러낸 차나무에서 채엽한 찻잎으로 차를 만들고 아끼고 소중한 사람들 앞에 내어놓을 때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요즘 제다의 기쁨을 누리는 찻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아내가 부럽다. 녹차를 마시는 나보다 녹차를 만든 아내의 기쁨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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