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닮은 녹차(綠茶)

문화 / 김상천 시인 / 2020-02-13 09:11:51
다향만리

녹차(綠茶)는 우리나라 차종(茶種)의 가장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차(茶)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녹차만 알아 왔고 가까이했다. 차 문화 역시 녹차 중심의 차 문화를 유지 발전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차의 전래(傳來)와 지리상의 위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신라 흥덕왕 때 김대렴(金大廉)이 중국에서 차 씨앗을 가지고 온 곳이 중국의 칭다오(靑島)다. 중국의 칭다오는 소엽종(小葉種) 차가 자라는 곳이며 따라서 녹차를 만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위도상도 한국의 남부지역과 일치하는데 김대렴이 가지고 온 차는 당연히 소엽종이었고 차 역시 녹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지리산에서 자라기에 딱 좋은 차다. 그러므로 한국의 차는 전래되는 순간부터 선택의 여지 없이 소엽종(小葉種)이었고 녹차이며 녹차 중심의 차 문화(茶文化)였던 것이다. 중국의 녹차가 대부분 유념(揉捻)의 방법이 누르는 긴압형(緊壓型)인 데 반해 오직 칭다오의 라오산(嶗山) 녹차만이 옛부터 비비고 굴리는 권곡형(拳曲型)이다. 이처럼 한국의 녹차 제다(製茶) 과정에서 유념이 권곡형인 것은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천년을 이어온 이러한 녹차가 근래 와서 차 시장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건강에 좋은 발효차와 커피에 눌려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절집 선방(禪房)에서도 커피가 나온다고 하질 않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른 봄이면 한 해 동안 먹을 차를 구하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매년 지인들과 함께 떠나는 차 기행인 셈이다. 이른 봄 청허당(淸虛堂) 차실(茶室)에 오는 손님에게는 꼭 녹차를 내고 이 봄에 잘 어울리는 차라고 권하게 된다. 그러나 내 차실(茶室)에서는 옛날만큼 녹차를 소비하지 않는다. 어느덧 나도 발효차(醱酵茶)를 가까이하게 되고 이제는 발효차 전도사가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차실(茶室)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녹차를 사랑하고 가까이 두는 것은 녹차가 내게 소중한 아내를 닮았기 때문이다. 녹차는 탕색(湯色)이 연녹색이다. 내게 있어 연녹색은 청순가련의 아내를 닮은 색이다. 계절로 비유하면 봄이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녹차는 아내처럼 쉽게 상처를 입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다뤄야 한다. 물과 비율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금방 토라져 그윽한 향과 맛을 감춰버린다. 온도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밋밋하든가 떨떠름하다. 아내는 여름과 겨울을 몹시 싫어하는데 볼수록 녹차를 닮았다. 또한 녹차는 비발효차(非醱酵茶)차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쉽게 많이 마실 수가 없다. 빈속에 마시면 속이 쓰리고 카페인이 강해 불면증이 올 수도 있다.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세밀하고 까탈스러운 것은 왜 발효차(醱酵茶)처럼 좀 바뀌질 않는지.


녹차의 제다(製茶) 과정은 크게 5단계로 나뉘는데 다른 차들의 제다 과정과 많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고 까다로운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잎을 따서 모으는 채엽(採葉), 시들게 하는 위조(萎凋), 덖거나 찌는 살청(殺靑), 차잎을 누르거나 비비거나 굴러서 세포벽을 파괴해 향미를 내는 유념(揉捻), 그리고 건조(乾燥)가 있는데 특별히 햇볕에 자연 건조하는 것을 쇄청(曬靑)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일본 녹차는 좀 특이하다고 하는데 이는 살청에서 중국과 한국은 초청(炒靑) 방식 즉 덖는 방법인 데 반해 일본 녹차는 증청(蒸靑) 방식 즉 찌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차를 끓이는 데도 그 절차가 복잡하고 세심한 행동이 필요하다. 한 잔의 녹차를 내리는 팽주(烹主)의 모습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은 이처럼 녹차의 까다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내는 중국의 10대 명차 중 으뜸인 서호용정(西湖龍井) 녹차를 무척 사랑한다. 늘 함께 있어도 녹차를 내릴 때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녹차를 닮은 아내와 함께 올봄에도 특별한 찻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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