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개작물과 심는 차례(작부체계)

기획/특집 / 이근우 시민, 농부 / 2020-08-12 09:14:22
농부 철학

유기농은 전통농업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정확히는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이 나오기 전의 농법과 닮았습니다. 화학 농자재의 사용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농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기농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전통농업에 주목해 그 방식을 차용함으로써 유기농의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작부체계라고 부르는 작물의 시기별 심는 차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단작 농사가 주를 이루는 일반 농업이 아닌 도시농업에서 시기별 심는 차례는 매우 중요합니다. 소규모의 경지를 합리적으로 경영해 효율을 극대화함으로써 양질의 농산물을 다양하게 생산해내자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심는 차례를 설계할 때 사이짓기(간작), 섞어짓기(혼작)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사이짓기와 섞어짓기는 사계절 밭을 맨 땅으로 두지 않으므로 그렇게 하는 자체가 토양에 덮개작물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 은은한 옥빛, 토종 사과참외

사이짓기(간작)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밭이 적은 사람은 보리나 밀을 출수하기 전에 두 이랑사이를 얕게 갈고 콩을 파종하되 보리나 밀을 수확한 다음 보리 뿌리를 뒤집어 콩에 북으로 주라.(田少兩麥未穗時 淺耕兩畝間種以大豆, 收兩麥訖 又耕麥根 以覆豆根)” 가을에 파종한 보리나 밀은 겨우내 살아 있다가 이듬해 이른 봄부터 왕성하게 자라기 시작합니다. 콩 파종기에 이르면 보리나 밀 사이에 콩을 심음으로써 두 작물이 잠시 동거하게 됩니다. 6월경 보리나 밀이 수확기에 다다를 때에는 콩이 왕성한 생육기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생육기간(작기)이 다른 작물을 이어 심는 것을 사이짓기라고 합니다. 사이짓기의 이점은 우선 맨 땅으로 두지 않아 토양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서로 다른 작물이 같은 공간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토양 속 미생물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셋째, 작물의 무기물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특성을 활용함으로써 토양의 영양구조를 편협하지 않게 해줍니다. 심지어 특정 무기물을 확충할 수 있는 수단이 돼 주기도 합니다. 넷째, 수확기에 이른 작물의 잔사를 이어 자라는 작물의 덮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섯 째, 단작할 때와 달리 다양한 미생물과 곤충의 서식지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병해충의 극심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여섯 째, 풀의 발생량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겨울을 난 보리와 밀을 수확 전에 베어 풀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으며, 여름작물인 메밀 또한 개화지에 베어 같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곱 째, 겨우내 자라는 보리와 밀은 뿌리를 깊이 뻗어 밭갈이(경운)하는 효과를 줘 토양의 물리적 성질을 좋게 해줍니다.


한편, 특정 작물을 주로 재배하면서 같은 작기의 작물을 소량 섞어 심는 것 역시 사이짓기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하는 주된 이유는 주 작물에 발생하는 병해충을 경감시키기 위해서입니다.
 

▲ 틀밭에 피어난 해바라기

섞어심기

<농사직설>에 “섞어짓기의 기술은 해에 따라 수재나 한재가 있는 반면 구곡에는 이 수재·한재에 따라 맞는 것과 맞지 않는 작물이 있으므로 혼작을 하면 그 중 어느 작물 하나라도 거두어 모두 농사를 망치지 않기 때문에 실시하는 것(大抵雜種之術 以歲有水旱, 九穀隨歲異宜故 交種則 不至全失)”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해 농사를 모두 그르치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섞어짓기를 한다는 것인데,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섞어짓기의 가치는 병해충의 대유행을 막아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두 가지 이상의 작물을 같은 작기에 비교적 동등한 비율로 심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섞어짓기는 함께 심는 작물들의 궁합을 고려해 선택해야 하는데 이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식물의 본래적 속성에 따른 짝짓기입니다.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을 함께 심는 것이 좋습니다. 토양에서 취하는 양분이 서로 달라 경쟁을 하지 않고, 뿌리특성이 달라 역시 경합하지 않으며. 광합성에도 지장을 주지도 않습니다. 둘째, 자라는 기간을 기준으로 합니다. 작물은 생육기간이 다르므로 계절별로 적합한 작물들을 선별한 다음 짝을 지어 심습니다. 셋째, 작물의 독특한 향을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당근과 콩을 함께 심으면 당근의 향으로 인해 노린재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작물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상보적으로 활용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유기농의 전범으로 널리 알려진, 옥수수와 콩 그리고 호박의 섞어짓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섞어 심는 작물의 짝짓기는 매우 다양합니다.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자 : 강낭콩, 양배추, 옥수수, 금잔화
● 강낭콩 : 당근, 셀러리, 오이, 꽃양배추, 감자, 옥수수, 딸기
● 당근 : 파, 상추, 양파, 완두콩, 로즈메리, 부추, 토마토
● 딸기 : 강낭콩,상추, 시금치, 백리향
● 무 : 오이, 상추, 한련화, 완두콩
● 상추 : 당근, 무, 딸기, 양파
● 시금치 : 딸기
● 양배추 : 셀러리, 토마토, 양파
● 양파 : 상추, 딸기, 토마토
● 오이 : 강낭콩, 완두콩, 무, 해바라기
● 완두콩 : 당근, 강낭콩, 오이, 순두부

(옥답4.0 : https://www.agrion.kr/ 에서 인용)

특히 병해충의 피해를 경감해주는 짝짓기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결명자는 선충 예방용으로 심을 수 있습니다. 청고병은 파를 끼워 심음으로써 예방이 가능합니다. 파는 응애의 발생도 줄여줍니다. 고추는 배추흰나비 유충 발생을 억제합니다. 마늘은 풍뎅이 등 해충의 접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방울토마토는 고자리파리나 풍뎅이, 잎벌레 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다양한데, 텃밭의 처지와 형편에 맞는 짝짓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이짓기와 섞어짓기의 핵심은 사철 내내 밭을 맨 땅으로 두지 않고 덮어준다는 것입니다. 토양의 유기물 덮개는 토양의 물리적 성질뿐 아니라 다양한 무기물의 공급원도 되어줍니다. 사이짓기나 섞어짓기는 전후에 심는 작물들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런 영양 공급이 이뤄져 비료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다양한 작물을 짝짓기하게 되면 미생물과 곤충이 다양해져 특정 병해충에 낭패를 보는 경우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다만, 기억해 둬야 할 것은 이러한 노력이 병해충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병해충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위에 예시한 생물적 방제를 비롯해 (친환경)농약을 활용하는 화학 방제와 트랩 등을 이용하는 물리적 방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 해를 찾아라, 두리번두리번

비닐이나 신문지를 이용한 물리적으로 덮는 것에서부터 작물 자체를 활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토양덮개는 우리 밭의 농업생태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자연생태계의 간섭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경작하는 밭은 일정한 생산성을 목표로 설계되지만, 생태계와 환경에서 유리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농업생태계와 자연생태계는 상호작용합니다. 자연생태계는 동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농업생태계는 생태계의 기본원리인 순환이 끊긴 상태로 지속되기 때문에 일상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생태순환농법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해결책이 되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농업생태계는 투입과 산출의 체제인 데 반해 자연 생태계는 투입도 산출도 없는 순환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덮개와 덮개작물은 이러한 근원적인 모순을 보완하는 최선책입니다. 작물로써 작물의 그루와 토양을 덮는 것만으로도 농업생태계의 단절적인 속성을 지속가능한 차원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장맛비 맞으며 상추심기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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