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 대정전 후 두 시간

문화 /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 2020-05-13 09:27:23
서평

 

표지에 보이는 고압송전탑이 가장 많은 데가 울산이다. 게다가 대정전이 자꾸 대정천(온산공단을 거쳐 바다로 합류, 80년대 온산병 발생지역의 소하천)으로 읽혔지만, 아니었다. 하지만 울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발전소 대부분은 바다를 끼고 있다. 울산 사람들은 전기를 많이 쓰는 지역에 발전소를 지으라고 말한다. 왜 남쪽 끝에 지어놓고, 먼 서울까지 송전탑으로 전기를 실어나르냐고 묻는다. 이 책에 답이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장편소설 <당인리 대정전 후 두 시간>은 사흘간의 대정전과 대정전을 컨트롤하는 한국의 에너지 공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 말미에 태양광과 전기자동차, 가정용 비상발전기를 거꾸로 돌려 금 모으기 운동처럼 전기를 모으는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정전 같은 사고가 터지면 시민들은 희생될 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82년생 김지영>이 30대 여성의 고백과 통계자료와 기사를 통해 30대 여성이 겪는 보편적 일상을 재현했다면, <당인리 대정전 후 두 시간>은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 지역 간 에너지 불평등, 위기에 무능하고 실무진의 공을 가로채는 부도덕한 정치인과 언론, 생존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있는 현장을 구석구석 들춰낸다. 그리고 발견한다. “정전은 전쟁보다 평등하다. 하지만 서글픈 평등이다.” 대정전은 모두에게 평등한 재난이라는 말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스템은 OECD 국가에서는 보기 힘들 만큼 중앙집중형이다. 우리나라 전체의 정전이라는 허구에서 시작하지만, 대정전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독자는 설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은 에너지 공기업에서 일하는 아내(태권도 유단자)를 둔 남편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 전문기관, 기술용어가 나오고 공간이동이 별로 많지 않은데도 소설은 잘 읽힌다. 명랑한 문체 때문이다. 작가는 자기소개에서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된다”고 했는데, 이 소설에는 ‘청와대 근처 일식집’, ‘아주 특이한 날의 귀가’ 등 여러 곳에서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띄워 올리는 명랑함이 있다. 


‘아파트타워스-일상의 전복’ 편은 20층 고층아파트에 사는 72세 노인 임옥섭이 대피소로 이동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은 고층아파트에서 촛불을 켜 놓고 잠을 자다 바람에 날린 커튼에 불이 붙는 바람에 죽는다. 2쪽 분량인데 한 편의 또 다른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다. 경제적 성취, 편리함, 성장에 발목이 잡혀, 위험이 목전에 닥쳐 있는데도 그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권력의 민낯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 노인의 최후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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