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경남지역 지역사를 연구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 이병길 선생

사람 / 이동고 기자 / 2020-02-14 09:42:51

▲ 작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사업으로 울산교육계의 독립운동사를 처음으로 조사연구한 그는 오래전부터 서울주 언양과 양산지역 지역사 연구를 계속 해 온  향토사학자이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그는 양산지역 중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는 재작년 ‘영남알프스 역사문화의길을 걷다’에 이어 작년 말에는 ‘통도사 무풍한송의 길을 걷다“라는 책을 연거푸 냈다. 동부경남지역에지역사를 발굴하는데 그처럼 열정을 가지고 발품을 파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를 언양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 최근에 하는 일은 무엇인가?

통도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한 달에 한 번 글을 쓰고 있다. 사찰역사가 오래되긴 했지만 우리나라 기록문화는 보잘 것이 없다. 옛날부터 내려온 자료가 없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창건에 기록은 있어도 중간 중간 흘러온 기록한 것이 없다. 일제강점기나 그 뒤 동란 이후 불이 타버려 없어진 경우도 있지만 해방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역사기록이 없다.
기록하는 직분이 없으니 사료도 남은 것이 없고 당연히 소임을 마치면 기록은 남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니 제일 먼저 과거 사료를 조사하고, 절에 사적비에 조사하고 한자로 되어 있는 것은 풀이를 한다. 한자풀이는 어렵다. 한자 지식인 네이버, 일본어 신문은 지금과 한자 방식이 다르다. 문헌자료는 신문이나 예전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고 일차적인 자료이고 이차적으로는 현장에 가는 것 유적 유물이 남아 있다. 탱화 동종 바위에 글씨 들이 조성 연도나 시주자. 주지스님들 기본적인 명단이 나와 있다. 암자 같은 경우에는 중창한 기록, 탱화, 동종 만드는 데도 돈이 많이 들어 모금을 해야 하니 공적을 명단 기록에 남겨져 있다. 하지만 자주 가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어제는 통도사 일승교가 있는데 얼마 전 태풍에 떠내려갔는데 옛날 다리를 조성한 기록이 보여. 한데 이끼가 끼여 잘 알지 못하겠더라. 1933년에 조성한 것이라 새겨 있는데 통도사 기록과 일치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다르면 또 다른 다른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을에도 똑같다. 어떤 일을 했다는 명문들이 비석, 바위에도 있는데, 관심을 가지고 돌아다니다 보면 발견된다. 유명한 장소에는 명문들이 다 있다. 작괘천 바위에도 있고, 계모임 단체 들 명단이 있는데 연도도 있고 명단에 50명 있다면 이름을 일일이 검색해 결과가 나온 사람이 이 동네 사람이면 지역모임이고 대구나 위쪽 지역 사람이면 전국적인 모임이라 판단한다. 작괘천에는 시모임 바위에 명문이 나왔는데 그건 전국적인 모임을 새긴 명문이었다. 현장 명문은 사료발굴의 보고, 잊혀진 자료,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료. 동네 계모임 장소라는 것으로 마을역사를 아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울산에서 알려진 사람은 크게 김홍조, 송태관인데. 김홍조는 선각자로 알려져 있고 송태관은 이토히로부미 통역관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조선인자본가이기 때문에 친일 했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객관적인 자료는 없다. 송태관은 상북면 양덕마을 출신인데 이름이 석남사에 있다. 그 아들이 송석하인데 호가 ‘석남’이다. 송태관과 송석하는 시주를 했고 종교적인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도사 자장암에 가면 작은 동종이 있는데 송태관, 아들 송석하, 김홍조, 아들 김택진 등이 새겨져 있어 불교와 관련한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재작년에 이어 연달아 책을 냈는데 각 책의 특징이 있나?


재작년 2018년 “영남알프스, 역사문화의 길을 걷다”는 이 책은 서 울주, 즉 언양 상북지역 문화역사 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까지 산재되어 있는 그 지역의 숨겨져 있던 역사를 복원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자기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던 역사를 복원했다고 볼 수 있다. “통도사, 무풍한솔의 길을 걷다”는 통도사 양산지역 역사를 발굴한 책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한 사람을 찾고 일반 민중사에서 나타난 인물사를 발굴한 역사다.
‘통도사 신평 3.1만세운동’과 ‘통도중학교 민족교육사건’이 처음으로 발굴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은 일단 사료가 없었다는 것,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통도사 신평 3.1운동은 울산지역 최초의 3.1 운동이었다고 주장한 이후로 양산시와 양산문화원에서 3.1운동 백주년 심포지움을 열게 됐다. 통도사 스님이 주축이 되었고 1919년 3월 13일 신평에서 일어났다.
언양이 4월 2일이니 그 보다 빠른 시기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시 신문에 보도 자체가 안됐다. 아마도 통도사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통도사에 피해를 줄까 싶어 자체 내 보도통제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평 만세운동은 실제 경찰자료도 없고 지역주민 증언은 있지만 일제경찰 자료는 날짜가 틀리고 했다.
일본 자료는 하나는 당시 신문, 일본이 두고 간 자료, 당시 재판기록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개인의 증언과 기록 등이다. 조사에 제일 어려운 것은 100년 전 사건이라 증언할 사람이 없고 알고 있는 사람도 당시 왜곡된 기억, 만들어진 기억이 혼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각색 때문에 혼란이 생긴다. 통도사 민족교육사건의 경우는 경찰조서도 있고, 재판기록도 있고, 감옥 간 기록은 있지만 당시 큰 사건이었지만 신문보도는 없다. 당시 통도사 주지 임명문제가 걸려 있어 통도사에서 모종의 보도통제를 하지 않았나 싶다.

3. 울산에서 지역사를 연구하는 의의를 말한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숨겨진 울산지역 지역사 복원이다. 숨겨졌다는 것은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고 잊혀진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일은 복원이다. 자료 집적기관이 없기에 자료가 없고 또 연구기관도 없다. 100년 전 기준으로 보더라도 당시 유적 유물이 사라지고 있다. 성남동 울산초가 울산 객사자리인데 울산객사가 중요한가? 울산초등학교가 더 중요 한 것인지도 따져 봐야 한다. 객사는 조선시대 역사이고 울산초는 근현대사 역사이다. 100년 전의 역사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금 우리와 가까이 있는 역사를 가치스럽게 보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이 부족하기에 그런 일이 생긴다고 본다. 앞으로 100년 후는 울산초등학교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울산초등학교가 가진 학교성립의 역사, 독립운동, 학교 교육의 현황은 역사의 현장성인데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객사터는 전국 어디에나 있고 객사를 둘러싼 중요한 일이 없다면 현재와 가까운 역사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시립미술관을 성남동에 만드는 것도 근현대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울산경찰서, 북정동 우체국 공간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공간인데 장소성을 살리지 못했다. 옥교동, 70년대 80년대 울산의 중심이었고 일제강점기에도 동헌과 기차역이 있었기에 성남동은 울산의 중심지였다. 울산지역의 상징적인 역사성이 다 사라지면 지역역사가 멸실되는 것이다.

4. 울산에서 언양지역은 어떤 차별성이 있나?


행정구역으로 울산이 중심부라면 언양은 주변부이다. 원래는 언양지역이 중심부였지만 행정구역이 재편됨으로 주변부로 밀려나 그 중요성이 훼손되고 망각되고 있다. 특히 언양읍은 부산, 밀양, 울산,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정보의 집산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니 1920년 전후 언양의 독립운동가들이 양산, 울산, 경주까지 확산될 수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언양의 신학업, 이동계는 양산 농민운동에 참가, 양산농민들 당시 경찰서까지 습격하는 일까지 관계됐다. 당시 농민들이 주재소가 아닌 경찰서를 습격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산에서도 크게 조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 김일성은 보천보 전투에서 작은 주재소를 습격한 일로 전국적인 큰 인믈로 부각된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 큰 사건이었다. 일제강점기 1920년 전후 언양지역은 청년운동, 청소년 운동, 농민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주변지역으로 확산하는 역할을 했다.
언양지역이 이러한 것은 지정학적 위치가 있고 둘째는 언양지역이 갖고 있는 천도교 같은 종교적 영향이 있고 계급평등성을 지닌 동학이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산과 인접한 관계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이 많았고 선진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이 많아서였다. 신학업. 정인목, 정인섭, 오영수, 신고송 등이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 농민운동과 청년운동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이관술 같은 경우에는 생가마을에 있었던 유림대표였던 김창숙 선생과 연관성을 따져 볼 수 있다. 김창숙은 1920년 전후 부산, 양산, 언양지역 부자들에게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자동차 전복사고가 나서 한 달 이상 백양사에서 병치료를 했는데 그 당시 전국적인 인물이었으니 울산지역에도, 통도사 스님들도 만나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입암마을의 유림인 손후익이 이관술 선생 이웃이고 이재락과도 연결된다.

4. 최근에 한 울산 3.1운동 백년사 연구에 대해 설명하자면?

3.1운동도 100년 됐다고 하지만 3.1운동과 관련한 교육계의 운동은 밝혀진 것은 별로 없었다.
울산교육청 차원에서도 올바른 조사가 없었다. 울산교육청이 교육독립운동사 발굴이 그동안 숨겨진 100년 역사를 일정 정도 복원시키는 일이었다, 일단은 자료가 발굴되었다. 일제 강점기 학적부를 복원해 항일운동가와 학생들의 자료를 발굴할 수 있었다. 학교과 관련한 독립운동사를 복원할 수 있었다. 이 일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사료 발굴은 물론 이후 역사체험과 현장답사까지 하는 교육해야 하고 현재 추진 중에 있다.
교육현장에서도 선생님들도 스쳐가는 방식이기에 학교마다 독립운동에 대한 안내판을 만드는 설치한 것은 아주 긍정정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알라기는 교육계뿐만 아니라 울산 전역에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지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들려 달라

일차적 자료를 탐독하다 특정 사람의 이름이 있다면 그 사람 이름을 통한 일제 강점기 신문 검색을 한다. 또 일본 경찰이 남긴 자료, 총독부 자료검색, 다른 인물이 남긴 자료를 검색한다.
둘째는 자료와 자료와의 연관성을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다. 제일 어려운 점은 개인정보 때문에 개인 제적등본과 학적부는 등은 유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떼기가 불가능 하다. 일본에 가서도 학적부를 떼려면 유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자료간의 불일치인 경우도 많은데 이제 까지 잘못된 기록을 잘못 해석해 계속 잘못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독립운동가의 사망일자는 5월 11일 인데 해방 후 70년 동안 엉터리 사망일자가 계속 유통되어 왔다. 이는 처음 연구자가 잘못 확인했기에 유가족도 중요시 하지 않았다. 최근에야 제적등본을 통해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래서 최근 현충원 비석을 바꾸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신문에는 진짜 날짜로 기록하고 있다. 후손도 잘 모르고 가족과 떨어져 감옥에서 순사했거나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정보의 바다에는 잘못된 기록이 엄청 남아 있다. 한 명이 기초작업을 확인하지 않은 채 착오로 올렸는데 학술논문에 계속 유통이 되고 있다. 잘못된 결과가 유포되고 있는 것이 많다. 나 자신도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 적이 있기에 그것이 두렵다.

6. 본인 스스로 발굴한 지역사 중 가장 드러내고 싶은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인 언양지역 독립운동가를 좀 더 알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특히 1919년 4월 1일 언양 장터 만세운동부터 1920~30년대 청년 청소년 야학 농민운동이 활발한 지역이었는데 그 핵심지역이 현재 언양 읍성 영아루 부근이다. 반경 1km 안에 독립운동가가 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영수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언양 알프스 시장은 ‘언양 만세시장’으로 영아루 남문길은 ‘언양 독립운동길’로 조성하면 좋겠다. 이는 언양을 이제까지 언양지역을 산악관광 한 지역으로 생각했던 것에서 역사문화 관광지구로 바꾸는 계기로 될 것이다. 이는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과 연결하는 문화관광 코스가 될 것이다. 언양지역이 근현대사와 고대문화를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산악관광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을 훼손하지 않는 보존의 관광이 되어야 하고 마을의 역사 역시 보존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갈수록 보존보다는 훼손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7. 중앙 역사 중심에서 앞으로 지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보나?

학교현장에 중앙의 역사를 중심으로 가르치는데 실상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는 지역사가 더 중요하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지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성장한 후에도 그 지역에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중앙 중심의 역사를 강조하다 보면 지역중심 역사는 사라지게 되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의미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을, 지역을 발전하려는 사람을 양성하려면 그 지역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8. 앞으로 추가 연구를 하고 싶은 분야는?

계속 이 작업이라는 것이 영남알프스와 관련한 사란들의 역사문화와 관련한 작업인데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결국 사람 중심의 작업인데 이 중에는 이름 있는 사람도 있고 이름 없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적절히 배정하는 식으로 연구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사람들을 독립운동을 한 사람과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 즉 이분법적인 항일과 친일이라는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 인생이 80평생이라고 한다면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 삶인데 그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너무 한 점이 있다. 즉 청년시절 항일운동을 하다가 중장년에 적극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일정 친일을 한 경우에도 그것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특정한 인물의 역사관을 긍정과 부정을 동등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특정 인물의 결과적인 말년의 삶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인물의 독립운동사가 자체가 어떤 과정에서는 당시에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행동할 때 역사의식보다는 자신의 의지나 타인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에 한 가지로 기준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친일 항일만 따지면 우리 문학사에 남을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언양지역 정인섭도 그런 경우다. 정인섭은 호는 ‘화장산인’ ‘눈솔’ 인데 정인섭 경우는 어린이운동, 민속운동, 한글운동, 문화예술운동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문화를 알린 사람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학도병 권유 활동 등 친일행위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는 한글사전 만드는데도 관여했다.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우리나라 민속을 다른 나라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민속운동도 송석하와 같이 했고 방정환과 어린이 운동도 같이 했고 극예술 연구회 활동도 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운동을 한 분이다. 자기 인생에 충실한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친일로 보면 안 된다. 사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속운동을 가장 많이 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조선을 자신들의 나라라고 여겼으니 취미생활로 한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항일운동은 성리학자, 유학자, 민족자본가가 돈을 댔다. 30년대 이후로는 국내는 계급운동으로 전환했다.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의 국제 프롤레타리아 연대이고 사회주의 관점이다. 이를 독립운동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고 이념의 자체가 다르다.

9. 울산지역 전체로 볼 때 지역사를 연구하는 방식과 시스템은 어찌 해야 할까?

지역사는 각 지역의 문화원에서 연구하고는 있지만 과거에 비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적다. 또 자료를 새로 발굴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지역사를 전체적으로 알리는 총괄 사이트와 역사 문화 답사를 관장하는 식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역사를 알리는 문화해설사들이 같이 모이는 통합적인 센터가 필요하다. 각 단위로 나눠져 오류도 있고 역사문화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기에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울산 전역에 각 장소에 근현대사적 장소에 대한 안내판이 있으면 한다. 특히 역사적 인물이 살았던 생가터에 안내판 정도라도 세웠으면 한다. 또 안내판이 있으면 지역 역사도 알게 되고 유명 생가터에 살면 자부심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몇 군데 제외하고는 현재 역사 안내판도 없다. 읍면지역 울산 마을에도 역사지도 안내판 정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마을주민도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고장을 사랑하는 자기가 살아온 지역의 역사문화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 마을에 대한 애정을 가지다 보면 몰랐던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있었으므로 만들어진 것이고 미래의 우리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역사를 복원하고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는 한 번 망실하면 복원하기 어렵다. 역사는 오류를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오류가 없는 역사기록이 필요하다. 또 언양읍성 복원을 예를 든다면 문화재라는 이유로 형태적 복원에만 치중하는 것은 문제다. 이는 단지 과거 모습의 복원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유용한 복원이 되야 한다. 읍성 울타리를 그대로 복원하더라도 안은 수목원이나 공원 쉼터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이 지금 시점의 복원이라 생각한다. 문화역사적인 복원으로 접근해야지 문화재 외양만 복원하는 것은 비용만 많이 들고 지양해야 한다. 빈 공간에 과거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역사적 연구이고 현재 필요한 용도로 잘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현재적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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