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로부터의 해방

문화 /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2020-02-06 09:43:52
아빠 일기

몇 해 전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었을 때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매료돼 아름다운 미니멀리스트가 돼 보고자 노력한 적이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입지 않는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버리는 일이었다. 한때 옷 쇼핑몰의 CEO로 살면서(단 3개월 만에 망했다)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자주 옷을 구매했다. 정말 필요해서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그냥 갖고 싶어서 구매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옷장에는 몇 년 동안 입지도 않는 옷들이 쌓여만 갔고 마침 찾아온 미니멀리즘의 유행과 함께 입지 않는 옷은 과감하게 버리기로 한 것이다. 비교적 상태가 좋은 옷들은 언젠가는 다시 입을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버리기 쉽지 않았지만 2년 정도 입지 않은 옷들은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옷장이 훨씬 가벼워졌다, 아니 가벼워졌었다. 


지금 내 옷장은 다시 혼잡한 카오스가 돼 있다. 다시 시간이 흘러 몇 년 동안 입지 않는 옷들이 뒤엉켜 어디에 무슨 옷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 번 미니멀리즘의 매력을 알면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던데 아주 쉽게 소비를 추구하는 삶으로 다시 회귀했다.


미니멀리즘에 빠져 있을 땐 거의 1년 가까이 물건은 필요할 때만 구매했다. 그것이 추구하는 삶의 간소화에 적극 동참했다. 옷이 별로 없으니 정말 좋아하는 옷 몇 벌만 돌려서 입었고 아침에 옷을 고르는 시간이 절약돼 내가 제법 깨어있는 시민이 된 듯한 우월감도 느꼈다. 주말이면 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기다렸단 듯이 쇼핑을 하는 사람들을 기껏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쓸데없는 소비에나 낭비하는 자본주의의 노예며 속물이라고 무시하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짧았던 나의 ‘단순하게 살기’라는 삶의 방식은 이제 과거의 일이 돼 버렸고 오늘도 나는 심심할 때마다 미사일 배송이 가능한 어플을 열어 필요한 게 없는지, 아니 꼭 사야만 하는 정당성을 부여할 만한 물건이 없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주말엔 서점에 책을 보러 갔다가 같은 건물에 있는 옷 상점에 들러 8만6000원이라는 거액의 외투를 샀다(아내에겐 4만 원이라고 거짓말했다가 영수증을 들켜 혼이 났다, 성공한 유부남이 되기 위해선 훨씬 더 치밀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충동구매가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흘 연속 그 외투를 입는 중이다.


이렇게 소비의 바다에 풍덩 빠져 발버둥치지만 아직도 내겐 철저하게 꼭 필요할 때만 소비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육아용품이다. 올해 세 살이 된 아이에게 지금까지 먹는 거랑 소모품을 제외하고 지출한 돈이 십만 원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비싼 유모차와 카씨트는 선물로 받았다. 그밖에 옷가지는 물려받고 장난감도 주위에서 이것저것 얻어 쓰고 있다. 아직 물건에 대한 집착이나 구매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이라 어렵지 않게 미니멀리스트 베이비가 가능한 부분이다. 가능하면 오래오래 이 상태가 지속됐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돈을 내 품위 유지비로 대체 사용할 것이다(아이는 무얼 입어도 귀엽지 않은가?).


사실 자본주의와 소비란 바늘과 실처럼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세상에 더 필요한 물건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있다. 하지만 기업은 계속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세상에 내놓고 광고와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새로운 아파트, 더 멋진 자동차, 더 빠른 스마트기기, 인공지능을 탑재한 가전제품 등, 구매하면 더 멋진 인생을 살 것이며 품격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광고를 하고 결국 우리는 지갑을 연다. 그렇게 돈을 쓸 때 우리는 대우받는다는 느낌을 얻는다. 또 소비는 가장 쉽고 빠른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다. 벗어나고 싶지만 참 쉽지 않다.


필요한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생은 풍요롭고,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많은 위인들이 말해 왔지만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그런 삶을 살기가 참 힘든 것 같다. 최근에 다시 소로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극단적 자연주의자였던 그도 월든 호숫가에서 평생을 살지 않고 2년 만에 다시 속세로 돌아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늘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면서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은 배우려 들지 않는 것인가?” 오늘 저녁은 나를 유혹하는 휘황찬란한 쇼핑거리가 아니라 고즈넉한 동네 산책길을 걸어봐야겠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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