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기획/특집 / 이기암 기자 / 2019-11-15 09:47:08
▲ 문경석탄박물관 전경, 이 본관 건물 밖에 탄광사택과 은성탄광 갱도체험공간이 있다.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우리 석탄 산업과 탄광노동자

석탄은 인류의 역사보다 긴 생명을 가진 광석이다. 약 6천만 년 전 고생대 시대 식물들이 땅 속에서 천천히 변했으니 말이다. 인류가 석탄을 연료로 사용한 것은 아무리 늦어도 4세기라고 한다. 물론 지금 우리에게 석탄은 산업혁명, 즉 증기기관을 열었지만 이제는 그 효용이 사라진 과거의 연료로 느껴진다. 우리나라 석탄 산업은 1896년 러시아 사업가가 함경도에서 석탄채굴권을 가져가면서 시작됐다고 기록한다. 국권을 빼앗기기 전인 1903년 대한제국 궁내부가 평양 사동탄광을 프랑스 회사와 합동 개발했다. 하지만 한일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광업령’(1915)을 제정한 뒤 석탄을 중요한 자원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1930년 중반 이후 중일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석탄 수요가 늘어나 한반도 전역에서 탄광을 개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탄광과 석탄 산업은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청에 귀속됐다가 1948년부터 대한민국 정부로 넘어왔다. 1950년 11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대한석탄공사’가 발족했다. 석탄은 천연자원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자급이 가능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연료정책이 바뀌면서 탄광은 점차 감소했고, 1973년과 78년 두 차례 석유 파동으로 잠시 호황을 맞은 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그 결과 1989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334개의 탄광이 폐광하고 목숨 걸고 평생을 일했던 탄광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 태백석탄박물관 상설전시로 재현된 강원지역 탄광촌 가정


태백, 보령 그리고 문경 석탄박물관

탄광노동자를 말할 때 ‘막장인생’이라고 불렀다. 석탄을 캐는 갱도의 가장 끝을 막장이라고 하는데, 땅을 수백 미터를 파고 들어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곳,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노동현장을 뜻한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면 대형 노동재해로 수십 명이 죽어 나왔고, ‘오늘도 무사히’ 돌아온들 세상에서 가장 고된 노동이 반복됐다. 그랬던 탄광이 문을 닫자 성한 몸 없이 굴렀던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폐광지역 인근지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정부는 1995년에 제정된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으로 지원한다고 했지만 사후약방문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 세워진 박물관들이 바로 폐광 지역에 들어선 석탄박물관이다.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보령이다. 1987년 까지 6천여 명의 탄광노동자가 일했던 보령은 197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서해안 최대 광업도시였다. 하지만 1990년 대표 탄광이었던 성주광업소가 폐광하면서 황폐화의 기로에 놓였다. 그 자리에 남긴 것이 1995년 5월 18일 개관한 보령석탄박물관이다. 태백석탄박물관은 1997년 5월에 문을 열었다. 태백산 초입에 세워졌는데 태백은 인근 정선, 영월, 삼척과 더불어 남한 최대의 석탄생산지였다. 태백석탄박물관은 지하공간에 1960~70년대의 탄광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해 보여준다. 문경석탄박물관은 앞의 두 곳보다 약간 늦은 1999년 5월에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은성무연탄광이 1994년에 폐광한 뒤 1996년부터 건축에 들어갔다. 박물관 본관 외에도 야외에 이전 탄광 갱도와 사택지역을 체험코스로 운영하고 있다.

산업사 또는 생활사, 석탄박물관의 두 모습

세 곳의 석탄박물관 모두 탄광노동자를 담고 있다. 하지만 품고 있는 결이 조금씩 달라 눈길을 끈다. 차이점의 기준은 산업박물관과 생활사박물관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었는가로 나눌 수 있다. 산업의 측면이 가장 많이 부각된 곳은 보령이다. 보령은 석탄의 기원부터 석탄 산업사를 시작으로 석탄 생산광정을 채굴부터 가공까지 일관 라인으로 드러낸다. 반대로 문경은 산업사를 보여주되 생활사에 보다 더 무게를 뒀다. 특히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중앙에 보이는 조형물은 탄광노동자의 얼굴을 대형 디스플레이로 전시해 놨다. 산업보다 노동자를 중심에 뒀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구성이다. 전시 내용에서는 탄광노동자들의 노동재해를 집중해 다룬다. 그리고 야외에 따로 세워진 사택 체험공간은 건물 하나마다 다른 테마로 탄광촌의 모습을 보여줘 이채롭다. 태백은 보령과 문경의 중간지점이라 할 수 있다. 석탄 외에도 다양한 광물을 상설전시로 보여주면서도 석탄 생산과정에서 광부들의 노동 이야기를 다루고, 탄광 노동자 가족이 사는 집을 규모는 작지만 재현하고 있다.
 

▲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된 노동조합 깃발. 탄광이 폐광하면서 탄광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노조도 사라졌다.


태백 철암과 정선에서 보는 새로운 변주

태백박물관에서 부족한 생활사는 실제로 탄광광업소와 광산마을이 있었던 인근 철암에 세워진 ‘철암탄광역사촌’에서 채워지고 있다. 2014년에 개관할 때부터 폐광촌의 낡은 상가 건물들을 그대로 살려 문화전시 공간을 만들어 마을 전체를 생활사 전시관으로 조성했다. 건물 지하부터 3층까지 각 공간마다 다양한 테마로 전시관을 만들고, 일반 미술전시도 혼용한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것이다. 태백 바로 옆 정선에도 2001년 폐광한 삼척탄좌를 2013년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시켜 개관한 ‘삼탄아트마인’이 있다. 전시장과 공연장 그리고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까지 들어섰다. 폐광 개발지원사업으로 조성된 기금 등을 투여해 기존 탄광시설을 원형으로 보존하면서 변주를 한 공간이다. 그리고 정선 고한의 구공탄시장과 고한역 건물 벽은 탄광노동자를 기억하는 거리예술로 가득 차 있다. 전국 곳곳에 벽화마을이 있지만 대부분 천편일률적으로 사직 찍기 좋은 그림으로 채우기 일쑤인데 이곳은 전체 공간을 탄광노동자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고한역 벽면에 부조형태로 채워진 탄광노동자 모습은 일반 벽화와 차별되는 질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좋은 사례가 된다.

일제강점기 탄광노동자의 역사는?

폐광지역이 석탄박물관에서 문화공간으로 그리고 거리 공공미술로 조금씩 색을 더해가고 있다면 일제강점기로 시대를 올려 건립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부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초반인 2004년 3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했다. 위원회는 2015년에 다섯 차례 활동시한 연장 후 종료 폐지됐는데 그보다 앞서 2007년 ‘추도공간 및 기념시설 건립 기본계획(안)’을 세우고 8년의 준비과정과 입지선정, 건축을 거쳐 2015년 12월에 개관했다. 위원회 활동을 매듭 짓는 상징과 같다. ‘국립’이란 명칭이 붙어있듯 행정안전부가 건립하고 운영은 별도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하고 있다. 부산으로 건립 위치가 결정된 것은 2008년이다. 강제동원으로 해외로 끌려간 약 100만 명 중 다수가 경상도 사람이고, 부산역과 바로 맞닿은 부산항을 통해 일본, 사할린, 남태평양 등으로 갔던 경로를 참고한 것이다. 강제동원된 분야는 매우 넓지만 동원된 노동자 중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이 가장 많았던 곳이 탄광이었다. 노동재해로 죽기도 했고 멀리 사할린 광산으로 끌려간 이들은 해방 후에도 억류돼 1990년대까지 돌아올 수 없었다.
 

▲ 태백석탄박물관 지하에 만들어진 갱도 체험전시에서 만나는 탄광노동자


일제강제동원역사관과 강제징용노동자상

‘강제동원’은 우리가 많이 써온 징용을 포함해 더 확장된 개념이다. 일제는 1939년 ‘모집’이란 허울 좋은 이름을 걸었고 이후 1941년부터는 ‘관알선’ 그리고 1944년에는 ‘징용’이란 이름으로 강제노동을 시켰다. 가장 많은 수는 노무동원이었고 전선으로 끌려가는 군인‧군속동원 그리고 여성동원 순이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이 전체를 포함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중심이 되는 것은 결국 가장 많은 수를 포괄하는 강제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 7개 층 중 4층과 5층이 상설전시실로 5층에 기획전시 공간이 들어 있다. 그리고 7층 옥상 가장 높은 곳에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상설전시 1은 먼저 ‘기억의 터널’이란 제목으로 강제동원의 개념과 실체, 광복과 귀환, 아직 끝나지 않은 강제동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2는 ‘시대의 겨울’이란 제목으로 국가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된 조선인노무자숙소, 태평양전선, 일본군위안소가 있고 탄광도 별도 공간으로 마련돼 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기도 했고,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후 최근 일본에서 자행한 수출규제와 역사왜곡 외교가 불거지면서 어느 때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다. 강제동원역사관은 결국 일제강점기의 한 단면을 담았지만 현대사로 이어지는 역사적 숙제를 드러내는 곳이 됐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현재 일제강점기 노동자에 대해 가장 깊게 다루는 공공박물관이 된다. 이는 2016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세운 강제징용노동자상과도 연결된다. 당시 용산역 앞에 세운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이후 인천, 제주, 창원, 부산 그리고 올해 3월 1일에는 울산에도 건립됐다. 이는 ‘역사바로세우기’에 노동자들이 동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스스로 노동의 뿌리를 찾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각 지역에 세워진 노동자상이 대부분 탄광에 강제동원된 노동자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울산에 세워진 노동자상은 앞면에 세워진 노동자의 양손에 쥔 외날 곡괭이와 뒷면 갱도를 파 올라가는 모습이 보다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상설전시 속 탄광. 사진=역사관 홈페이지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전시벽면. 1939년 이후 강제동원 돼 해외로 가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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