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나는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

문화 / 배문석 / 2021-05-04 00:00:33
영화 덕후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보다 더 빛났던 말. 말. 말

정말 멋진 여배우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도 놀랍지만, 수상 소감을 그렇게 재치있고 진솔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머리가 텅 비어버릴 만한데 아주 차분하게 짧지도 그렇다고 그리 길지도 않은 소감을 이어갔다. 


제일 먼저 자신을 수상자로 호명해준 브래드 피트에게 농담을 던졌다.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있었냐?” 이 말은 <미나리>의 제작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는 <미나리>의 제작사 ‘플랜B’의 대표였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었다. 

 


다음으로 자신이 한국에서 왔으며, 이름 윤여정을 유럽 사람들이 ‘여여’나 ‘요정’ 등으로 잘 못 부른다고 언급했다. 가시 돋힌 말 같지만 바로 이어서 “오늘 밤 모두 용서한다”며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리고는 함께 영화를 만든 동료들에게 감사했고, 특히 정이삭 감독을 ‘캡틴’이라고 부르면서 높이 추켜세웠다. 


그 뒤에는 후보에 올랐던 배우들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동갑인 글렌 클로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서로 경쟁한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연기를 했을 뿐이라고 수상 경쟁을 뛰어넘었다. 그저 자신이 조금 더 운이 좋았고, 미국에서 한국 배우들을 환대해주는 것 같다고 겸손을 더한 것이다. 

 


시상식이 모두 끝나자 미국 언론과 시청자들은 윤여정의 말을 최고의 수상 소감으로 꼽았다. 다음 날 NBC와 인터뷰할 때는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다시 받았다. 그 한 마디에 오랜 내공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1966년에 TBC 탤런트로 데뷔했고 1971년에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연기경력이 55년, 영화만 따져도 올해로 딱 50년이 된다. 수상 소감 맨 마지막에 그녀를 영화로 이끌었던 김기영에게 고마움을 표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윤여정은 <화녀>를 통해 청춘스타보다 연기파 배우로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결혼과 미국행 그리고 오랜 공백을 딛고 연기를 다시 시작했을 때도 멋진 배역에 매달리지 않았다. 스스로 ‘생계형’이라고 말했고 그녀의 두 아들이 “나가서 일하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여기엔 사실 배역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에 아이들을 키우고 먹고살 수 있었던 과거마저 담백하게 녹여낸 것이다.


그럼에도 <바람난 가족>(2003)의 임상수, <죽여주는 여자>(2016)의 이재용, <하하하>(2010)의 홍상수처럼 충무로의 감독들은 배우 ‘윤여정’을 계속 청했다. 그리고 <미나리> 이후 해외로 퍼졌지만 그녀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TV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예능까지 가리지 않으면서도 늘 중심을 잃지 않았던 그녀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작년 <기생충>의 수상 때 준 울림 이상으로 윤여정의 수상은 더 큰 공감을 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 영화계의 업적이 아니라 개인 윤여정의 몫이라고 정확히 짚어준 것도 매우 맞는 말이다.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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