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하면서 내 삶의 모든 것을 바꿨다” 채식평화연대 오미란 활동가

사람 / 이동고 기자 / 2020-03-04 09: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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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바로 채식
▲ 오미란 채식평화연대 활동가는 “채식으로 모든 삶이 바뀌었다”며 “영혼은 자유를 얻었다”는 말을 했다. ⓒ이동고 기자

 

그에게 채식은 자기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졌다. 채식을 통해 마음의 자유까지 얻은 그가 현미김밥과 채식김치로 채식문화를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책은 뭔가 대단한 일이 아니라 먹거리 변화 실천이며 채식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굳게 믿었다.

Q. 지금 하는 현미김밥과 채식김치 일은 어떤가? 


내 삶을 바꾸고 싶어 채식을 했고 채식의 경험을 확산시키기 위해 현미김밥과 채식김치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데 한계는 있다. 재료도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것이 많고. 채식은 사람 사이의 평화와 동물과의 평화를 위해 하는 것이고 기후위기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미래를 돌려 달라고 학생들도 파업하고 우리나라는 기후깡패라는 불명예를 달고도 경제적인 면만 부각하고 기후위기 심각성을 정부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도 정치적인 판단으로 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Q. 일반적으로 채식을 하는 분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는 것 같다. 


완전 채식을 하다 보면 패스트푸드점에서 채식버그가 나왔다 해도 먹기를 주저하게 된다. 채식음식을 고기를 굽는 판에서 그냥 굽기에 교차오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너무 예민하고 강박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사실 나 같은 채식인들은 육고기 자체를 음식이라고 느끼지 않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반인들이 보면 인식차이가 생기고 다른 세계 사람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요즘 체인점에서는 채식김밥, 채식버그가 다 나온다, 일단은 큰 회사들이 채식에 관심을 갖고 상업적이기는 하지만 채식음식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긴 하다. 입을 대는 순간 그 교차오염이 된 것을 바로 느낀다. 젓갈도 안 먹는 사람인데 그 느끼함을 바로 느낀다. 어떤 분들은 음식을 주문할 때 특별히 채식만을 위한 조리기구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음식점이나 과자 뒷면을 보면 재료는 다르지만 같은 용기를 썼다는 것을 경고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채식인들을 위한 표현만은 아니고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는 알러지 예방을 위한 것이다.

Q. 청소년들이 채식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채식교육 준비는 어떠한가? 


청소년들이 채식을 가장 빨리 접근하는 게 동물권 문제로 접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거나 대학을 들어가면 동물들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나 책을 통해 채식을 고민하게 된다. 어른들은 잘 변화하기 힘들지만 청소년들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때 카라나 동물권평화연대 등 동물권 단체들 영향을 받으면 어른보다 더 빨리 변해 채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는 식생활 대부분을 부모에게 지배당하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심지어 채식을 하면 ‘우리 아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하고 오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채식만을 고집하면 사람이 이상하게 되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것이 일반 사람의 인식인 경우가 많다. 


지금 먹방 문화는 우리가 먹는 소중함을 무너뜨린다. 초기 백 선생은 자기 개인이 선화하는 식으로 기름도 많이 쓰고, 설탕도 듬뿍 써 달게 하는 등 자신을 띄우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문화를 심는 일을 했다. 


학생들에게 먹거리가 기후위기 문제를 가장 빨리 풀고, 내 삶과 건강을 좋게 한다는 것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으로 기후위기와 채식을 연관한 수업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교육청에는 선택적 채식급식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먹는 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 또한 폭력이기에 목소리를 낼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 강사 방에서 채식 만들기 준비를 김치와 김밥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즐겨먹는 샌드위치, 햄버거, 유유를 대체하는 음식을 개발하고 콩고기 들어가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Q.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은? 


처음에는 시민운동에 대해 전혀 몰랐다. 가정을 일구고 파주에서 살다가 울산에 온지 10년이 된다. 환경운동연합에 가입한지 5년이 넘었는데, 2015년에 채식을 알게 됐다. 그 전에는 환경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수기 코디 일을 했다. 정수기 자체가 모든 세트를 교체해 버리기에 일을 하면 매일 엄청난 쓰레기 많이 나오더라. 환경운동연합 회원이니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텀블러. 일회용 사용 안하기, 손수건 쓰기 등도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채식을 하니 모든 것을 상쇄할 정도로 환경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채식은 환경에 기여한다는 자기 위안감을 얻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터전과 주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채식을 하면서 ‘이제 바꿔야겠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정수기 일을 그만뒀다. 조무간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있었지만 나름 정수기 영업을 잘해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채식을 하니까 정제된 음식은 못 먹게 하니 모두 피하게 되더라. 심지어 정제된 물도 못 먹게 되더라. 하나도 안 맞은 거더라.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일도 하다가 아파트 팔고 시골로 갈까하는 생각만 하다가 못했지만 여러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 채식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Q. 채식평화연대 활동가가 된 과정과 활동은? 


지금 대표인 이영미 선생을 성당에서 만났다. 이영미 선생의 채식에 대한 말이 다 맞는데 유기농 채식을 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다. 그냥 못 들은 척하다가 채식을 접하면서 지금은 채식평화연대 활동가가 됐다. 채식평화연대 활동을 너무 강하게 주장해서 거부감이 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심으로 이야기하기에 채식평화연대 사람들 70~80% 정도는 이영미 선생이 영입했다. 현재 등록된 회원은 500~600명 정도인데 실제 회비를 내는 사람은 180~200명 정도 된다. 시민운동을 하니까 다른 단체를 알게 됐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의 활동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을 힘들고 불편하게 만들고 반대 측을 너무 악의 축으로 적대시 하는 것이 아닌가 비치더라. 채식평화연대를 하니까 긍정적인 에너지가 좋더라. 육식 반대 같은 말 대신 ‘그냥 채식하면 좋아요, 채식하면 평화로워요’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 요즘은 다른 단체들도 결사반대, 아웃 이런 문구를 지양한다고 하더라. 채식평화연대 활동을 6개월 했는데 급여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보험 일 등 복잡한 것은 정리하니까 좋던데 너무 힘들더라. 


우리 채식평화연대는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취합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최대한 시간을 들여 활동한다. 같이 연대하는 쪽에서는 우리들이 너무 느리다고 빨리 빨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보채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Q. 채식와 연결된 평화에 대해 설명한다면?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진짜 평화가 찾아온다고 본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고 인간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환경문제 때문에 채식을 하게 됐지만 동물들도 아파하고 슬퍼한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집에 들어오는 개미나 거미를 다 쓸어내고 죽였는데 지금은 ‘얘들은 원래 자기 길을 가는 건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죽이지도 못하고 생각이 많아지더라. 진정한 평화는 우리만 누리는 평화가 아니라 동물에까지 미치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평화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식평화연대는 정기적으로 평화여행을 다닌다. 2017년엔 부탄을 다녀왔고 작년엔 라다크를 다녀왔다. 부탄에 갔을 때 안내자가 한국에 유학 온 청년이었는데 한국말을 잘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들은 ‘내일도 저 하늘에 별과 달이 그대로 있게 해주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산과 땅들이 그대로 있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들은 사람을 위해 절대 기도하지 않더라. 우리 주변 환경이 그대로 있으면 사람은 저절로 평화로워 진다는 거다. 그런 기도가 마음에 엄청 다가오더라. 그들의 기도는 보편적인 평화를 위해 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 가족, 내가 아는 사람들, 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나? 경제적으로는 우리 1960~70년대 수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런 기도를 하고 있더라.

Q. 부탄에 갔던 이야기를 해준다면?


부탄은 아주 풍요로운 땅이다. 부탄은 물을 수출해서 돈을 번다. 수입의 첫째는 관광자원이고 둘째는 물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것이다. 수력발전을 해서 인도에 전기를 판다. 인도에서 전체 부탄경제의 40% 정도를 지원해 준다. 부탄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인도 쪽으로 붙었다. 중국처럼 소수민족을 침략하지 않고, 같이 사는 정책을 취한다. 인도 사람들은 비자 없이 부탄을 자유롭게 오간다, 부탄은 가난해 보이지만 가난하지 않다. 정부에서 생활복지를 책임지고 있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하는 데 다 이유가 있더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부가 들어주지 않을 때 시위를 하지만 부탄은 2년에 한 번 행복위원회가 국민들에게 200문항 정도로 설문조사를 한다. 전 국민이 질문지에 답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한다고 한다. 통치하는 왕은 미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사람인데 국민의 뜻을 반영한 정책을 한다.

Q. 인도 라다크에서 받은 인상은? 


라다크는 더 척박하지만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라다크는 황무지와 약간의 녹지, 사막, 빙하가 다 있는 곳이다. 우리 생명평화연대 여자 회원이 라다크인과 결혼했다. 향수병에 걸려 보내줬는데 1년에 한 번 만난다고 했다. 그 여성회원을 따라 같이 갔다. 


남편분이 홈스테이를 한다고 알고 갔는데 자기 아버지가 호텔을 경영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묵었다. 라다크는 넓은 지역에 수도 ‘레’가 있고 차를 타고 4시간 동안 가장 높은 5600고지를 넘어가야 마을이 나왔다. 여름인데 비가 오고 더 가니 눈도 왔다. 라다크는 7월이 풍요롭다. 감자 등 온갖 채소가 다 나오고 보리농사를 4개월 동안 지어 1년을 먹고 산다. 수도 ‘레’ 호텔 정원은 꽃나무만 있을 것 같은데 안에는 채소를 키우더라. 정원을 잘 가꿨는데 울타리에만 꽃나무를 키우고 안에는 모두 채소를 키우더라. 산은 황량하고 민둥산인데 골짜기 빙하물이 내려오는 곳 아래에만 마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근처 큰 절에 1시간 이상 걸어가 예불도 드리고 했는데 스님들 사는 공간 입구가 문짝도 없이 그냥 두꺼운 카페트만 걸려 있었다. 화로 같은 것으로 겨울을 난다고 했다. 


차에 우유가루와 커피 등 설탕을 많이 넣고 먹더라. 일반 집에 가지 않고 호텔에서만 먹었다. 실제 생활을 체험하지 못했다. 같이 갔던 사람들 두세 팀이 번갈아 가면서 김밥, 잡채를 주방에서 만들어 같이 나눠 먹었다. 현지 음식은 토마토, 당근, 상추, 배추, 하얀 브로콜리 가지를 넣어 볶아 먹는 방식이어서 음식은 단조로웠다. 우리는 볶지 말고 그냥 달라고 했다, 그냥 먹어도 아주 신선하고 맛있었다. 대부분 불교신자이고 가까운 곳에 무슬림 마을도 있었는데 평화롭게 지내더라. 마을사람들 눈빛과 모습이 선했다. 관광지라도 가게를 다니더라도 굽신거리며 비굴한 방식이 없었다. 인도 본토로 가면 전혀 다르다. 인도 사람은 적극적이고 말도 많아 아주 시끄럽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의 삶을 체험했다.

Q. 채식이 주는 몸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나? 


채식을 하면 몸도 가벼워지지만 마음도 자유로워진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전부터 변비가 아주 심했다. 채식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극단적으로 빨리 정리했다, 집에 와서 냉장고에 든 동물식 내용물을 다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못 버린 것이 된장용 멸치였다. 과일도 모든 것을 껍질 채 먹었는데 금세 회복이 되고 어디 아프냐고 할 정도로 살이 확 빠져 버리더라. 황성수 박사한테도 물어봤지만 “나도 뼈다귀만 있지만 그게 정상이고 그것이 건강해지는 거야”하더라. 위에 있는 숙변까지 다 나오고 통곡물 현미채식을 하면 자연 디톡스(해독)가 되더라. 


채식 전에는 화장을 많이 했다. 채식 이후에는 자연스런 삶을 위해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채식을 하면 거의 군살이 빠져 버리기 때문에 피부주름은 생겼지만 피부 톤은 맑아졌다. 고릴라,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씨도 채식을 하는데 잔주름은 많지만 나이가 들어도 아주 맑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공식품으로 채식을 하는 분들은 살이 찌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채식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존 맥두걸 의사가 미국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밝힌 <살 안찌고 사는 법>이라는 책에는 많이 먹고도 살 빠지는 방법이 들어 있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너무 먹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국내 서적으로는 황성수 박사가 쓴 <빼지 말고 빠지게 하라>는 책이 있다. 채식이 조금 인기를 누리니 채식 초콜릿, 채식 가공식품 등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명한 선택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의사든 병원이든 모든 것을 맡기면 안 된다. 전공한 의사들은 자신들이 전공한 분야만 알고 일반사람들보다 영양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Q. 채식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통곡밀 현미채식은 통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는다. 통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구수하다. 한살림에서 팔기도 하고 회원 부모님이 하동에서 앉은뱅이 밀 농사를 짓는데 통곡물 가공식품도 만들고 전국 한살림에 판매한다. 통밀식빵을 만드는 분들도 양산에 있고. 회원 중에 서산에서 유기농 현미를 생산하는 분이 있고 껍질, 줄기, 뿌리째 먹고 감자, 당근, 우엉 등도 흙만 없애고 먹는다. 생으로만 먹는 것이 좋긴 한데 볶아 먹기도 하고 조려 먹기도 한다. 채식평화연대는 전국 조직이고 회원들이 곳곳에서 생산한 것을 공유하면서 소비한다. 재료를 구할 수 없는 것은 로컬푸드 구매를 통해 먹는다. 


닭고기 대신 콩고기도 있고, 생선 대신 무를 깔아 조림을 해먹는다. 국물을 만들 때는 멸치 대신 채소, 다시마, 마른 표고 등을 넣어 맛을 낸다. 예를 들면 육개장 대신 버섯개장을 만드는데 재료가 고사리, 토란대, 얼갈이배추,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애느타리, 녹두나물, 무, 대파, 고추기름, 고춧가루, 간장, 소금이 들어가는데 맛에 손색이 없다. 조금씩 채식을 하게 되면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Q. 채식을 하고 난 뒤 생활의 변화는? 


먹는 것으로 최대로 부풀어진 욕망은 남이 강요한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변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삶을 부단히 변화시키려고 하는 노력이다. 채식을 하면서는 예전에 사던 양의 반도 안 사게 되더라. 그전에는 월급을 타면 백을, 신발을 사야겠다는 욕망을 많이 품었는데 채식을 하고부터는 그런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남이 명품백을 메고 다녀도 이제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주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누군가에 의해 지배되는 삶이 아니고 어렵지만 내가 기획하고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변비가 금세 해소됐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들 아토피, 천식, 비염 등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채식을 하려 하지 않다가도 자기 몸이 너무 괴로우니까 이것만 먹자하면서 조금씩 먹으면 좋아진다더라. 


완전 채식에는 우유, 고기, 생선, 계란, 꿀도 먹지 않는다. 채식인의 입장에서 우유는 고기보다 더 잔인한 것이다. 암소가 새끼를 배야 우유가 나오기 때문에 암소에게 수시로 행하는 강제 임신은 인간 기준으로 보면 인간의 입맛을 충족하기 위한 성폭력에 가까운 것이다. 태어난 아기 송아지에게는 한 모금도 주지 않는다. 


채식을 하다보면 장아찌처럼 짜고 신선하지 않은 것도 멀리하고 된장도 김치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채소나 과일이 갖는 고유의 맛을 즐기게 된다. 아무래도 자극적인 것을 즐기는 사람은 성향도 폭력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씨를 뿌리는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 유기농 채식은 땅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다. 먹는 것이 그냥 때우는 일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즐기게 되는 계기도 된다. 먹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기고 되고 “내가 먹는 재료가 바로 내가 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된다.

Q. 울산에도 채식식당이 있나? 


원래는 울산에 4군데 정도 있었다. 야음동에 있던 ‘초선재’는 문을 닫았고, 중구청 앞에 있던 ‘채식사랑’도 문을 닫았다. 성안동 ‘단지’와 무거동의 ‘러빙헛’만 남아 있다. 이곳 페다고지에서는 한 달에 두 곳 단체에서 채식을 한다. 평화밥상연구소 대표인 권영순 씨는 한 달에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채식평화연대 환경평화밥상은 넷째 주 금요일에 하고 있으니 한 달에 페다고지에서 총 세 번의 채식식당이 열리고 있다.
 

▲ 채식식당에서 나온 스테이크는 식감에서나 맛에서나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행에 따른 채식 가공품을 이용할 때는 공부가 필요하다. 오미란 씨는 자기 몸과 건강에 대한 공부를 통해 의사에게 의존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고 기자

Q. 환경운동과 채식에 대한 입장은? 


환경운동의 기본이 채식이라고 믿는다. 알다시피 소가 내는 메탄의 반감기는 7년에 불과하다. 이산화탄소의 반감기가 100년인 데 비해 아주 짧다. 특히 메탄은 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에 비해 20배에 달한다. 실제 채식은 기후위기를 구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시민단체 사람들도 채식이나 생활방식의 변화가 없는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 내에서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다가도 나가서 뒤풀이 자리에서는 “고기 가장 싼 데 알고 있다. 내가 쏠게. 가자”하며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 술은 저절로 안 먹게 된다. 그냥 취한 상태로 가고 싶지 않다. 알콜이 음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구호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 바뀔 때 우리 세상은 변한다. 그런 것이 풀뿌리 단체이고 단체의 힘일 것이고 우리 삶이 돼야 한다. 


내 삶의 변화는 모두 채식으로부터 시작됐다. 3년 전 젊은 부부가 산촌에 자연주의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봤는데 감명을 많이 받았다. 바빠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 자신만의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되찾고자 할 때 창의적인 생활과 생각을 하고 싶으면 채식을 권하고 싶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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