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야 더 잘 산다

기획/특집 / 이근우 시민, 농부 / 2020-07-01 10:05:10
농부 철학

도시농업(3)

토양의 수직적 깊이를 토심이라고 합니다. 식물의 성장 조건을 만족하는 토층의 깊이는 유효 토심이라고 부릅니다. 모래나 자갈층 등의 바로 그 위의 층까지가 유효 토심으로 정의합니다. 이 유효 토심이 깊을수록 작물이 잘 자랍니다. 반대로 얕으면 작물 성장에 장애가 옵니다. 덤바우 뒷산의 절개 단면을 보면 맨 위의 검은 색의 층은 흔히 부엽토라고 부르는 유기물층입니다. 이 층은 오로지 산의 나무들이 스스로 내어놓은 나뭇잎과 나무 본체들이 쌓여 이뤄진 것으로 식물들의 자기충족적인 생태를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부엽토 층은 그 자체로 토양의 기능을 하는 것이어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거나 자급적 순환을 통해 사용하고 난 양분 대부분을 저장, 보존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 부엽토 층


부엽토 층만을 떼어놓고 보면 지상 표면에는 갓 떨어진 썩지 않은 낙엽 등이 덮개 역할을 해 그 아래 썩기 시작한 유기물을 보호합니다. 썩기 시작한 식물 사체 아래는 분해되기 시작한 것들이 자리하고 본연의 흙과 마주하는 바닥에는 유기물이 완전히 썩어 무기물로 거의 전환된 부식이라고 부르는 진정한 부엽토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유효 토심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부엽토가 풍성해야 작물의 원활한 성장이 보증되는 것입니다. 산과 비슷하게 들 역시 이러한 층이 존재합니다만, 우리가 경작하는 밭에는 이러한 층이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부엽토의 존재를 자각하면서도 그 역할을 다른 식으로 대체해왔습니다. 밭갈이입니다. 이는 반 생태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농사는 밭에서 키운 작물을 이탈시켜야만 성립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자족적인 식물 사체의 누적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식물의 기능을 대신할 인위적인 방식이 필요합니다. 비교적 단순한 해결책이지만 밭갈이는 토양의 무력화된 기능을 일거에 물리적으로 해소합니다. 온도와 습도, 통기성 등을 다시 제공해주는 것이죠. 물론 작물과 함께 이탈된 양분은 외부에서 투입해줘야 하는데 이는 거름으로 해결했습니다. 유기물을 주로 하는 거름은 부엽토 층과 유사한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토양의 일정한 두께를 밭갈이로 뒤집는 행위는 일정 기간 농경지에 형성된 유사 생태계를 전복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갈아엎는 순간 농사가 의지하는 토양 생태계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죠. 자연 생태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본질에서 농업이 생태계로 환원할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밭갈이를 멈춘다 해도 경작지에 대한 유기물 공급은 외부에서 투입되는 수밖에 없어 이른바 농업생태계는 비 순환적인 속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선조 농민들은 부엽토 층의 순기능을 잘 인식해 열심히 유기물을 투입하고 밭의 유기물 함량을 높이기 위해 애썼습니다. 문제는 유기물의 덮개 역할에 주목하지 못해 밭의 토양 표면을 민낯으로 놓아뒀다는 것입니다. 토양 유기물 함량이 상대적으로 무척 높았던 먼 과거에는 유기물 덮개가 없더라도 토양 상태가 상대적으로 괜찮았을 것입니다만, 이런 경향이 역사적으로 반복되면서 토양의 무력화를 가속했습니다. 만성적인 토양고갈에 시달리게 된 것이죠.

 

▲ 팔순 노인의 양파 선별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비닐 덮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밭 토양 속의 수분과 양분을 안정적으로 보존하면서 토양의 굳어짐을 방지하고 잡초 발생으로 인한 수확 감소까지 해결하는 획기적인 방식입니다. 비닐 덮개는 그 자체로 밭 토양에 악영향을 끼치는 화학 자재는 아닙니다. 다만, 유기물은 숨을 쉬어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고 무기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식물의 뿌리가 안정적으로 깃드는 모체가 돼 주지만, 비닐을 사용 후 폐기해야 하는 반 순환적 자재입니다. 순환농법을 중시하는 농민들이 비닐 사용에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닐 대신 무엇을 덮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 보입니다. 김매기 한 풀을 덮어주는 것은 파종기나 모종 심기 철에는 풀이 적을 뿐 아니라 풀은 분해 속도가 너무 빨라 산과 들의 유기물층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비닐 사용을 반대한다면 대신 무엇을 덮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먼저 마련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성의 전제는 실현 가능성이고 농사의 생산성 유지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주말농장이라는 낭만적인 명칭을 도시농업이라는 생산적 어휘로 바꾼다고 주말농장의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성격이 바뀌지 않습니다. 도시농업의 생태적 기능은 제일 먼저 농장을 덮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종의 위원회가 구성돼 농사를 짓지 않는 기간에도 관리돼야 하고 그 핵심은 덮개작물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농촌에 견줘 도시농장은 자연 생태계와의 단절이 심한 만큼 농장 안팎의 경관 조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흔히 녹비 작물이라고 부르는 식물들이 자연 생태계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경관 조성 역할을 훌륭하게 해줄 것이며 덮개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녹비 작물은 가을 파종용으로 헤어리베치, 자운영, 보리, 호밀, 밀 등이 있고, 봄 파종용으로는 귀리, 메밀, 네마장황 등이 있습니다. 이랑과 고랑, 그리고 사람이 다니는 통로를 제외한 모든 농장 공간에 이런 것들을 심게 되면 농장 환경이 생태적으로 개선됩니다. 한 예로 보리에 깃드는 진딧물은 진딧물 천적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는데, 보리 진딧물은 대개 쌍떡잎식물인 작물에는 옮겨가지 않으므로 보리는 훌륭한 천적유지식물이 돼 줍니다. 다른 녹비 작물들 역시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데, 핵심은 도시농장의 종 다양성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의 목적은 당연히 농업생태계의 풍성함 확보입니다. 녹비 작물 중 콩과 작물은 겨우내 이랑에 심어 토양에 질소 공급을 늘리고,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둬 사체를 덮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나 메밀 등은 수확한 후 일정 기간 숙성한 후 이랑의 덮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재료와 섞어 거름을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외떡잎식물들은 분해 속도가 느려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지속하는 데에 유리합니다. 나아가 일부 녹비 작물을 작물을 심은 이랑에 사이짓기나 섞어짓기를 함으로써 지력유지를 하거나 작물과의 공생 구조를 형성하게 해 다양한 생태적 이점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 감자 캐는 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밭 표면을 덮는 덮개는 꼭 필요합니다. 가장 하책이 비닐 덮개인데 이는 안 덮는 것보다는 백 배 낫습니다. 중책은 신문지입니다. 유기물일 뿐 아니라 친환경 재질이어서 제법 훌륭합니다. 상책은 녹비 작물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도시 농업생태계를 풍성하게 해줘 자연 생태계와의 상호작용을 높일 수 있습니다. 부분적인 생태순환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적 구조의 이점을 위해 도시농업은 봄 분양 가을 폐장이라는 단속적인 과정에서 벗어나 연중 상시 관리돼야만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유지되는 도시농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모델을 더욱 강화해야만 합니다. 이는 생계가 목적인 농촌 농업의 절박함에 대안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농업의 목표는 생산성이고, 도시농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농작물 품질의 저하를 방지하면서 그 본연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수확물을 얻을 뿐 아니라 일정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어떻게 덮을 것인가라는 고민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효율적인 덮개에 관해 한 번 더 살펴보겠습니다. 

 

▲ 이랑에 심은 보리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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