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더 나은 사회가 되길

교육 / 박현주 울산장애인부모회 북구지회장 / 2020-07-30 10:19:53
학부모 칼럼

몇 년 전 시어머니가 암 투병으로 병원에 계실 때 간병을 할 사람이 시누이 둘과 나 셋밖에 없어서 일주일을 나눠 간병을 했었습니다. 사는 게 넉넉지 않았고 장애아이 엄마였지만, 어쩔 수 없이 간병을 하게 됐습니다. 낮에는 아이가 학교 갔다 와서 남편이 올 때까지 봐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했고 간병하고 집에 오면 미뤄져 있던 가정 일을 해야 했던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장애아이는 며칠 만에 나를 보면 서럽다는 듯 한참동안 울었고 나 또한 마음이 미어지도록 아팠습니다. 하지만 안 할 수도 없고 간병인을 쓸 수 없는 처지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해나갔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아이도 적응하는 것 같았고, 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돌봐줄 시간이 없으니 더 하나라도 잘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니 편식이 심해지고 눈치도 많이 보고 우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내가 집에 있는 날에 더 얘기도 많이 해주고 같이 보내는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강했던 아이인데 나와 떨어지고 난 후 심리적인지 자주 아팠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화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남편한테 얘기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전화기를 끊으면 미안함이 너무 컸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또 지나고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시어머니는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에 따뜻한 포옹 한 번 해주시고 웃으면서 그렇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습니다. 시어머니와 안 좋았던 일, 좋았던 일 등 수만 가지의 일이 사진 필름처럼 지나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어머니의 따뜻한 포옹 한 번이 속상했던 모든 일들을 지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나를 껴안으며 펑펑 울었고 가지마… 가지마…하는 말만 했습니다. 엄마가 없었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에 나도 눈물이 났습니다.


장애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늘 힘든 시기가 오면 참아야 했고 무조건 해야 했으며 마음으로 억눌렸던 게 미친 듯이 폭발할 때가 있습니다. 난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왜 이렇게 큰 짐을 어깨에 이고 평생을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는 나 자신에게만 화를 내며 그렇게 30대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40 중반이 다 돼가면서 예전보다는 격하게 마음이 동요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늘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 같습니다.


장애아이 엄마로서 이런 불행한 일들이 생겼을 때 안심하고 맡길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힘들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 불안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박현주 울산장애인부모회 북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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