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동백 전설과 견주는 다른 지역 전설

기획/특집 /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 2020-01-08 10:23:59
울산 동백

전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형태의 설화지만 이야기의 대상이 신이 아닌 자연물이나 인물이란 점이 신화와 다르고, 역사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민담과 다른 특징이다. 또한 전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 오는 통시간적(通時間的)인 존재이며, 시간에 따라 널리 전파되므로 넓은 공간에 파급된 문화 형태다.


전달하는 내용, 전달하는 사람, 전달 방법, 수용하는 사람, 그리고 어떤 변화가 있다는 점은 언어나 문학·언론과 비슷하지만, 일정한 형식과 내용이 결합한 형태로 전하는 과정을 수없이 대를 물려서 현재까지 이르렀다는 시간의 여과(濾過)와,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살아남은 것만 일정한 민족 또는 지방에서 인간에 의해 전승됐다는 점이 다른 문화 현상과 다르다. 따라서 민족과 지역 사이에 전설을 조사하고 비교하는 연구는 민족과 지역 향토의 기층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연구다. 다음 전설들은 울산의 동백 관련 전설과 문화를 이해하는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지역의 전설들이다.

울릉도 동백꽃 전설
 

▲ 울릉도 동백꽃 ⓒ경북 울릉군


울산에는 울릉도 동백나무가 남쪽 나라를 그리워해 남쪽으로 가는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목도마을 앞에 있는 섬을 발견하고 올라가 정착한 자생지가 울산 동백섬이라는 동백나무 자생지 기원 전설이 전하고 있다.


울릉도 어느 마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육지에 볼일이 있어서 배를 타고 육지로 가게 됐다. 하루 이틀 지나가고 남편이 돌아온다던 그날이 다가왔다. 그러나 남편이 타고 간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남편은 돌아올 줄 몰랐다.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마침내 자리에 드러눕게 됐고 이웃 사람들의 정성 어린 간병도 아랑곳없이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내는 숨을 거두면서 “내가 죽거든 남편이 타고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 주세요”하고서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부인을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다. 장사를 치르고 돌아오니 그 집 앞뜰에 있는 후박나무에 수없이 많은 흑비둘기 떼가 날아들어 우는데 그 우는 소리가 “아이 답답해. 열흘만 더 기다리지. 넉넉잡아 열흘이면 온다. 남편이 온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 원수야. 원수야. 열흘만 더 일찍 오지. 넉넉잡아서...”라고 하는 것처럼 울어대서 마을 사람들은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육지에서 남편이 배를 타고 돌아왔다. 남편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는 무덤으로 달려가 목 놓아 울었다. “왜 죽었나. 1년도 못 참더냐. 열흘만 참았으면 백년해로하는 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 한바다 원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하지”하고 통곡했다.


남편은 아내 생각에 매일같이 무덤에 와서 한 번씩 슬프게 울고는 돌아가고 했는데 하루는 실컷 울고서 돌아서려니 아내의 무덤 위에 전에 보지 못하던 조그마한 나무가 나 있고 그 나뭇가지에는 빨간 꽃이 피어있었다. 이 꽃은 눈이 하얗게 내리는 겨울에도 얼지 않고 피어있었다. 이 꽃이 바로 지금 울릉도 전역에 걸쳐 살고있는 동백나무 꽃이라고 한다.


울릉도 동백나무가 살기 좋은 남쪽 나라를 그리워해 남쪽으로 가는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목도마을 앞에 있는 섬을 발견하고 올라가 정착한 자생지가 울산 동백섬이라는 동백나무 자생지 기원 전설을 뒤집어 보면 울산의 동백나무가 북쪽으로 가는 해류를 따라 울릉도로 이주했다가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고향이 그리워 울산으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렇게 보면 울산 동백나무가 기원한 곳이 울릉도가 아니라 울릉도 동백나무의 고향이 울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울산의 동백나무가 울릉도로 퍼져 나갔다가 추워지면서 고향 울산으로 되돌아와 터를 잡은 곳이 동백섬이고 현지에 남은 나무들이 울릉도 동백나무라는 해석이 보다 합리적이다.

대청도 동백꽃 전설
 

▲ 천연기념물 제65호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 동백나무 ⓒ문화재청


대청도 동백나무 숲은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하고 서해에서 가장 북쪽에 자생하는 북한지다. 1937년에 울산 목도상록수림과 함께 조선총독부 천연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됐고 1962년에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재지정됐다. 이곳 자생지 동백나무의 기원에 관한 전설이 있다.


폭풍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파도에 휩쓸려 이 섬에 들어오게 됐다. 청년은 자신을 정성스럽게 간호를 해 준 대청도 처녀 덕분에 기력을 차리게 됐고 사랑에 빠졌다. 얼마 뒤 처녀와 혼인하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지내던 중 밤이면 꿈속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이는지라 걱정이 돼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다. “꿈속에 부모님이 자주 보여 몹시 걱정이오! 금방 다녀오리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런데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남편의 고향에 동백나무가 많다는 말을 들은 아내는 고향에서 돌아올 때 동백나무 씨앗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동백기름으로 곱게 단장한 머리를 남편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리다 약속하고 떠난 남편은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고향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믿고 기다렸다. 아내는 날이면 날마다 바닷가로 나가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오늘 오는가, 내일 오는가, 오지 못하면 소식이나 오는가, 기별이나 오는가, 꿈에라도 오는가 노래를 부르며 슬픔을 달랬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결국 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더니 이윽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남편은 부모님만 두고 떠나 올 수 없어서 하루 이틀 미루다가 2년 만에 동백나무 꽃씨를 주머니에 가득 담아서 대청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내가 불과 열흘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남편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남편은 아내의 무덤 앞에서 통곡했다. 남편이 무덤에 엎드리자 주머니에 있던 동백나무 씨앗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듬해 아내의 무덤가에는 동백나무 씨가 싹을 틔웠고. 그 나무에서 아내의 그리움을 토해 내기라도 하듯이 해마다 이른 봄이면 붉디붉은 빨간 동백꽃이 피었다. 울릉도 동백꽃 전설과 쌍둥이 전설이다.

오동도 동백꽃 전설
 

▲ 여수 오동도 동백꽃 ⓒ여수시


이 전설은 전남 여수시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없는 이유와 동백나무의 기원 전설이다. 여수 시민들은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없는 이유가 “고려 공민왕 때의 신돈은 전라도의 ‘전(全)’자가 사람‘인(人)’자 밑에 임금‘왕(王)’자를 쓰고 있는데다 남쪽 땅 오동도라는 곳에 상서로운 새인 봉황새가 드나들어 고려왕조를 맡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해 봉황새의 출입을 막으려고 이 섬의 오동나무(봉황이 집 짓는 나무: 벽오동나무)를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오동나무숲이 우거진 오동도에는 아리따운 한 여인과 어부가 사이좋게 잘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바다로 일을 나가고 아내 혼자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도적떼가 들어와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다. 아내는 도둑떼에 쫓기게 됐고 바닷가 절벽까지 쫓기던 여인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벼랑 창파에 몸을 던져 정조를 지켰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돌아온 남편이 오동도 기슭에 정성껏 무덤을 지었는데 북풍한설이 내리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 동백나무 꽃이 피어나고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신이대(이대: 화살대)가 돋아났다. 그래서 오동도에는 ‘동백꽃 전설’ 비문이 있다.


“멀고 먼 옛날 오동(벽오동나무)숲 우거진 오동도에 금빛 봉황이 날아와 오동열매 따 먹으며 놀았드래. 봉황이 깃든 곳에는 ‘새임금 나신다’ 소문이 나자 왕명으로 오동숲을 베었드래.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른 후 오동도에는 아리따운 한 여인과 어부가 살았드래. 어느 날 도적떼에 쫓기던 여인 낭벼랑 창파에 몸을 던졌드래. 바다에서 돌아온 지아비 소리소리 슬피 울며 오동도 기슭에 무덤을 지었드래. 북풍한설 내리치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는 여인의 붉은 순정 동백꽃으로 피어나고 그 푸른 정절 시누대로 돋았드래.”(동백꽃으로 피어난 여인의 순정)

해운대 동백섬 황옥공주 전설
 

▲ 해운대 동백섬 해운대 석각 ⓒ문화재청


해운대 동백섬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있는 작은 육계도다. 바닷가 바위 위에 최치원 선생이 새겼다고 하는 ‘해운대’ 석각과 부산시민들이 세운 ‘황옥공주 인어상’이 있다.


해운대 석각은 신라 말 시인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새겼다고 전해진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라 말기 어지러운 정국을 벗어나 가야산으로 입산할 때 이곳을 지나가다 자연경관이 너무 뛰어나 대를 쌓고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주변을 거닐다가 암석에다 해운대란 세 글자를 음각함으로써 해운대란 지명이 탄생했다고 한다.


석각에 새겨진 해운대란 글자가 최치원의 자필이라고 하는 확실한 기록은 없는데, 고려시대 문인인 정포의 시 가운데 ‘대는 황폐하여 흔적도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았구나’라는 구절을 볼 때 이미 당시부터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오랜 시간 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씻겨 ‘해운대’ 세 글자 중 ‘운’자가 많이 마모돼 있다.


하늘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고 땅이 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지금의 해운대에는 무궁(無窮)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본래 나라를 다스릴 임금이 없었으나 하늘이 특별히 보내준 금상자 속 황금알을 깨고 나온 어린아이가 십여 일만에 성인으로 자라나서 왕위에 오르니 하늘의 은혜로 임금이 됐다 하여 은혜왕(恩惠王)이라 불렸다. 은혜왕은 나라의 이름을 무궁이라 지었다.


무궁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임금에게 마땅한 왕비가 없어 모든 신하가 왕비 감을 찾으며 결혼할 것을 원했으나 은혜왕은 굳이 이를 사양하고 하늘이 보내줄 왕비만을 기다렸다. 이때 멀리 바다 건너 ‘나란다’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본래 바닷속에 있었던 ‘수정국’과 부모가 같은 나라였고 그들의 몸 끝에는 지느러미가 옷 속에 감춰져 있었다. 나란다 임금과 왕비가 첫 여자아이를 낳으매 선례에 따라 공주의 이름은 부모의 나라인 수정국에 가서 지어 와야 하므로 특사로 거북이를 보냈는데 이 거북이는 그 옛날 용왕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토끼를 잡아 갔다가 놓쳐버려 수정국에서 쫓겨난 그 거북이었다. 거북은 수정국의 대왕대비에게서 공주의 이름을 황옥공주(黃玉公主)라 지어 왔다. 이 거북이는 아직도 살아남아 황옥공주를 그리며 동백섬을 맴돈다.


황옥공주는 선녀처럼 아름답게 자라났다. 나란다 임금과 왕비는 공주를 시집 보낼 신랑감을 찾고 찾았다. 어느 날 꿈속에서 신령이 나타나, 바다 건너 무궁국의 은혜왕에게 시집보내라는 현몽을 하게 돼 마침내 무궁국의 은혜왕과 나란다국의 인어공주 황옥이 짝을 맺으니 황옥왕비가 머문 곳이 지금의 동백섬이다.
황옥왕비가 처음으로 무궁국의 땅인 동백섬에 내려서 수정국의 대왕대비인 외할머니가 일러준 말씀대로 겹겹이 걸쳐 입은 옷 중에서 제일 깊은 속치마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치니 저녁노을 빛에 반짝이는 속치마는 바람에 나부끼며 높푸른 하늘 멀리 날아가고 갑자기 발이 갖추어진 완전한 사람이 됐다.


세월이 흐르자 황옥왕비는 외할머니의 수정국을 매우 그리워했다. 옆에서 항상 모시고 있던 거북이가 안타까이 여겨 수정국 외할머니가 선물한 황옥을 주면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이 황옥을 꺼내 달을 비춰 보라고 일러줬다. 황옥왕비가 황옥을 달에 비춰 보니 어느덧 눈앞에는 꿈속에도 그리던 수정국과 나란다국의 아름다운 달밤이 나타났다. 물론 황옥왕비도 그때에는 황옥공주로 변신해 바닷속을 마음대로 헤엄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들은 황옥공주가 <삼국유사>에서 전하듯이 수만 리 바다 건너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아유타국의 허황옥이라고 본다. 임진왜란 즈음에 김해 김씨, 허씨 사람들이 지금의 해운대도서관 주변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그들의 시조였던 김수로왕과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황옥공주의 로맨스를 가져와 토착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서천 동백나무숲 전설
 

▲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에서 바라본 일출 ⓒ충남 서천군


서천 동백나무숲은 충남 선천군 서면 마량리 바닷가에 있다. 이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에는 500여 년 수령의 동백나무 85주가 8265㎡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강한 바람 때문에 키가 2m 내외이며, 옆으로 퍼져있다. 정상 동백정에 올라가면 서해의 푸른 바다와 낙조의 아름다움, 오력도의 풍경과 어울린 바다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해 서천팔경에 들어간다.


이 숲은 약 500년 전 마량 수군첨사의 꿈에 바닷가에 있는 동백나무 꽃 뭉치를 많이 증식시키면 마을에 항상 웃음꽃이 피고 번영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바닷가에 가 보니 정말 동백나무 꽃이 있어 증식시켜 심고 가꾼 것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에 이곳 당집에 모여 고기가 많이 잡히고, 바다에서 무사하게 해달라고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외연도 상록수림 동백나무숲의 전횡 장군 전설

▲ 외연도 상록수림 ⓒ보령시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상록수림에 제나라 전횡 장군의 전설이 깃던 사당이 있다. 전횡 장군은 기원전 200년경 한나라에 대항하다 패장이 돼 부하 수백 명과 함께 외연도로 피신했으나 한 고조가 투항하지 않으면 섬 전체를 토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부하들과 함께 자결했다는 인물이다. 외연도 주민들은 약 400년 전부터 동백나무숲의 전횡 장군 사당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제사는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 섬 주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다. 제사는 사당에 장군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를 올리는 ‘당제’와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산제’,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용왕제’로 진행된다.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 거제시 외간리 동백나무 ⓒ거제시

동백나무는 예부터 우리나라 남쪽 바닷가 주민들이 그 나뭇가지를 혼례상에 차려 놓고 신랑 신부의 무병장수와 굳은 약속의 징표로 삼아왔다. 거제시 외간리 이정묵 씨 집터에 동서로 각각 한 그루씩 마주 보고 서 있는 부부 동백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높이 7m, 수관(樹冠) 동서 7m, 남북 6m, 수령 약 350년으로 지엽이 무성하고 지상 40cm 부분의 둘레는 2m다. 이 부분부터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이 부부 동백나무의 꽃이 두 그루 다 골고루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어느 한쪽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나무를 가정의 화목과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신성시 여겨 해마다 12월 마지막 날이면 나무 밑에서 마을 제사를 지낸다.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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