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리고 느린 걸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들꽃과 일몰

기획/특집 /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2020-04-01 10:25:12
행복산행

태화강 백리길 대방골

코로나19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쉬고, 사람이 붐비던 식당이나 카페가 한적하다. 팽팽 돌아가던 세상이 느슨해졌다. 따뜻한 봄이 오면 농촌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숲체험을 함께하던 필자도 덕에 평소와 다른 봄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쑥도 캐고, 막걸리도 빚고, 감자도 심으며 실로 여유롭고 고요한 나날들을 보내게 됐다. 

 

▲ 꿩의바람꽃

 

물론 바이러스의 고통을 받는 이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길 그리고 이 바이러스의 창궐이 어서 멈춰지길 바란다. 허나 이 사태 덕에 좋은 점도 생겼다. 쉼의 시간을 갖게 됐으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관계 속에 있을 일이 적어지니,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역시 세상엔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일도 없는 듯하다. 

 

▲ 넘어가는 햇빛 받아 반짝이는 생강나무꽃


사람들의 시간은 멈춰도 자연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여기저기 꽃이 피고 공기가 보드레하다. 실내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봄철이면 여기저기 봄나들이 다니던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나보다. 코로나19 때문에 꽃축제가 취소돼도 상춘객들이 밀려들어 곤혹이라는 뉴스 소식이 떠오른다. 인적이 드문 장소와 시간을 택해 밖으로 나서본다. 대방골은 큰 산을 접하고 있지도, 도심과 가깝지도 않은 태화강 백리길의 일부분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산우와 오후 4시에 약속했다. 해가 넘어가기 전, 다들 하산해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산행을 시작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걷기 시작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맑은 공기가 가슴으로 후욱 들어온다. 상큼하다. 한산한 도로와 가동을 멈춘 산업시설, 텅 빈 도시 덕에 공기가 깨끗해졌다더니 이렇게 일상에서 실감한다. 봄날이면 황사며, 미세먼지로 뿌연 나날들을 보냈던 게 떠오른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려 지구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 씁쓸하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람들은 화장실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놓으면서 지구를 화장실만도 못하게 여긴다”고 외쳐대던 장면이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편리함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이 아름답지 못한 행동들을 스스럼없이 했던가. 한 걸음씩 옮기며 부질없는 사과의 마음이나마 땅에 전했다. 

 

▲ 대방골에서 본 일몰. 왼쪽부터 신불산에서 고헌산까지 산등성이가 또렷하다.

 

대방골은 한실마을 사람들이 울산을 넘나들던 옛길로 좁다란 아리랑 고갯길이 정겹다. 지금도 드문 발걸음 덕에 많이 다져지지 않은 흙길이 폭신하다. 천천한 걸음으로 이 호사를 만끽한다. 가는 길마다 괭이밥, 현호색, 줄딸기, 개별꽃, 양지꽃, 꿩의바람꽃 같은 들꽃들이 정겹다. 천천히 걸으며 살피지 않으면 지나치고 만다. 정성을 들여야만 꽃들을 만날 수 있다. 봄날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개나리도 좋지만 은은한 매력의 자그마한 들꽃들이 참으로 좋다

 

▲ 산 들머리에서 만난 벚꽃이 곱다.

 

꽃길을 걸어 탁 트인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 곳에선 영축산부터 고헌산까지 울산을 둘러싼 고산준봉들을 잔잔한 물결 너머로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울어진 볕 받아 노란 생강나무 꽃이 반짝인다. 산우와 함께 의자를 펴고 앉는다. 오늘은 걸음을 멈추고 이곳에서 우두커니 앉아 일몰을 감상할 요량이다. 가져온 간식과 커피를 내린다. 지상낙원이다. 

 

▲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면 울타리 틈으로 풍경이 액자 속 사진처럼 보인다.
▲ 일몰을 기다리며 즐기는 커피와 간식
▲ 좁다란 아리랑고갯길이 정겹다.
▲ 해가 넘어가고 난 개와 늑대의 시간


해넘이 시간은 찰나인데,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시간은 길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빛깔이 더욱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앉은 자리에서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볕이 사라지는 만큼 추위가 찾아왔다. 물 위로 바람이 불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해가 배내봉 쯤 걸리더니 순식간에 쏙 넘어가 버린다. 우리는 아쉬워 추위도 잊은 채 말없이 한참을 바라봤다.

 

▲ 흰제비꽃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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