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어버린 노동운동 “솔직하지도 명확하지도 않고, 토론도 하지 않는다”

노동 / 이종호 기자 / 2020-07-08 10:29:09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년

87 노동항쟁 33주년 기념 토론회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7월 5일 오후 4시 울산노동역사관 교육관에서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33주년을 기념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7월 5일은 33년 전 현대엔진에 노동조합이 설립돼 울산과 전국을 휩쓴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된 날이다.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한 이날 토론회는 울산민주화운동기념계승사업회와 울산노동역사관1987이 함께 주최하고 울산저널이 후원해 열렸다.

 

▲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도화선이 된 현대엔진노동조합 설립일인 7월 5일 87 노동항쟁 33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이종호 기자

 

주제발표를 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1987년 이후 지난 30여 년의 한국 노동운동은 ‘때 늦은 개화, 때 이른 조락’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노조조직률은 10%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기본권은 갈수록 형해화되고 있으며 저임금, 비정규 노동의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는 노동의 고립을 가져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노조의 실리주의와 경제적 이익 매몰은 한국 노동운동의 계급적 연대성을 약화시키고 있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중심이 된 노조운동은 이념적 좌표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유연화에 따른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격차는 확대되고 있고, 개인의 생존은 ‘공동체’라는 가치가 아닌 ‘각자도생’으로 쏠려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노광표 소장은 “노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정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면서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대응 준비는 불가피하게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고 있고, 향후 한국의 노동체제와 노사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총론적인 구상과 논의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조합이 국가 차원의 복지와 사회적 임금을 쟁취할 수 있는 연대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며 “연대의 정신이 사라져버린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무덤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근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양극화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연대임금과 직무급제 등을 도입하고, 노조와 노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회연대전략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조운동 세력의 지역사회 개입 전략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서 자각하고 자리매김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아 민주노총울산본부 정책국장은 울산시 노동국을 신설해 미조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광주형 일자리와 연동된 상생형 일자리는 반대하지만 다른 논의기구는 가능하다”며 ‘(가칭)사회적 대화 구축을 위한 울산지역 자동차산업 노사정 포럼’을 제안해 7월 말 출범한다고 밝혔다.


김재인 한국노총울산본부 정책실장은 “코로나19로 대한민국 사회와 울산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진단하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원하청 사회연대전략을 확대하고, 울산화백회의를 통한 울산형 사회적 대화, 울산형 일자리 모델을 구축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노동자 생명권 강화와 노동기본인권을 확보해야 한다”며 “포스트코로나, 사회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율희 SK이노베이션노조 정책실장은 “노조 활동이 침체하면서 후배 노조 활동가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미흡했고, 노조 집행부가 너무 자주 바뀌면서 회사와 노조의 역량이 기울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며 “젊은 세대의 트렌드에 맞춘 소통이 필요하고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SK 노사가 함께 운영하는 사회공헌기금과 협력사상생기금, 공동근로복지기금도 소개했다.


김윤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정책실장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시작한 전투적 조합주의, 1998년 정리해고의 분수령으로 촉발한 경제적 조합주의, 2020년 사회적 조합주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실력행사를 통한 불필요한 마찰을 협약을 통해 줄이고, 더 이상 노동조합이 폭력집단으로, 귀족노조 집단으로, 혼자 배만 부르면 된다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언론의 마녀사냥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1987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가장 큰 성과는 노동자들이 집 살 계획이나 결혼 계획 같은 자기 꿈을 갖게 된 것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기업별 노조 틀 안에서 정규직 중심으로 노조를 운영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노동자들이 시민사회 운동으로 대거 진출하고, 기업 밖에서 지역산별을 준비하는 지역 노동센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광표 소장은 “노동운동이 꿈을 잃어버렸다”며 “지금 노동운동은 솔직하지도 명확하지도 않고, 토론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조운동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거대 노조가 있는 울산지역에 노동운동연구소 하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87세대가 물러나면서 노동조합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지만 세대 간 단절과 소통 부재도 심각한 문제로 짚었다. 노 소장은 “코로나 이후 국가와 지역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공공성과 생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담론을 제시하지 않으면 방어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종호 기자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구독신청

오늘의 울산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