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광장답게…최인호의 <광장>

뉴스 /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 2020-09-09 10:43:47
서평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 산업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1961년 판 <광장> 서문을 읽는 현재가 남다르다. 최근 우리는 인간에게 있어 광장은 얼마나 거대한 것이고 또한 얼마나 편협해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불편한 세상을 바꾸고자 분출되는 의식들은 그 빛남으로 광장을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때론 바꾸고자 하는 세상보다 먼저 변해버린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광장 한가운데에서 목도하기도 하고, 소박한 바람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옹졸한 광장의 모습도 발견했다. 무수한 ‘그럼에도’의 기록을 담아 온 광장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아버지와 달리 이데올로기 따위는 관심 없는 철학과 학생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대남 비난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취조실에 불려가 고문을 당한다. 그가 본 남한은 겉으로는 자유가 넘치는 곳이지만 실은 사회적 소통이 결여 된 죽은 광장이다. 그는 월북을 감행한다. 모든 의사결정이 광장에서 사회적 소통을 통해 이뤄지는 북한, 그러나 직접 본 그곳은 개인의 숨구멍이 돼줄 밀실, 한 떨기 백합을 마련할 수 있고 개인 삶의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밀실이 부재된 곳일 뿐이다.


‘개인의 밀실이 광장과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은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p29)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군관 신분으로 참전해 서울로 오게 된다. 연인 은혜 또한 북한군 간호 장교로 참전해 둘은 전쟁 속에서 재회한다. 그러던 중 은혜는 명준의 아이를 가진 채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하게 되고 그는 전쟁포로가 된다. 


정전 후 이명준은 제3국을 선택한다. 제나라에서 쫓겨난 수난자 같은 모습이 돼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 호를 타고 동지나해를 항해한다. 이념대립이나 갈등이 없는 중립국을 선택했지만 그 역시 진정한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한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배를 탔다.’ (p187)


그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쉬고 있는 바다를 배 위에서 내려다본다. 지상에서 볼 수 없었던 푸른 광장, 그가 그동안 찾으려 했던 이상적인 공간을 바다에서 보게 된다. 이념이 배제되고 사랑과 자유라는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공존하는 이상적 세계다. 이명준은 그 푸른 곳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 


광장에 대한 고뇌는 여전히 풀어내야 할 현실적 문제이기도 하다. 공동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공간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곳도 되어야 한다.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는 이명준이 꿈꿨던 이상향이었다.


작가는 이 책의 판본이 바뀔 때마다 머리말을 다시 적었다. 오래 전 만들어 낸 인물, 사유와 행위, 고민과 선택이 바로 지금 이 시대의 것으로 ‘현재화’하는 것이라 밝혔다. 그 현재성으로 지금 우리 속에 있는 이명준에게 끊임없이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현실주의자가 되자. 하지만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68혁명 당시 쿠바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의 말이다. 냉철하게 현 상황을 바로 판단하고 행동하되 뜨거운 무엇인가를 가슴 속에서 키워나가라는 뜻이다. 광장은 그런 곳이 돼야 한다. 당장 아프고 다칠지라도 설득하고 싸워나가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곳,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진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꿈과 이상을 뜨겁게 담아 둘 수 있는 곳,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는 상황’ 속에서 단호히 ‘나만은 그렇게 해선 안 되는 상황’이라는 신념의 날카로움을 품은 밀실도 되어야 한다. 


최근 일련의 정치 상황, 종교적 상황 속에서 광장은 ‘내로남불’이라는 오물로 쌓여지고 있다. 광장을 광장답게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잘 물려줘야할 유산임에 틀림없다. 광장에 서서 더욱 더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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