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문화 / 최미선 시민 / 2020-07-29 11:08:59
비워야 산다

 

정리정돈을 배운 후 또 발작이 시작됐다. 이번엔 창고다. 베란다에 있는 작은 창고는 말린 풀들이 가득 찬 검은 봉지 파란 봉지가 점령한 지 오래다. 여름을 시골에서 보내고 가을에 수확물을 거둬 오시는 어머니의 성과다. 너무 많으니 조금만 가져오시라고 하면 처음에는 이제 늙어서 가져오고 싶어도 못 가져오니 이번에만 가져오신다고 하시더니 해가 거듭되면서 이제는 취미가 그런 거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 다 먹지 못하는 풀들이 적체가 되면서 이제는 창고 문을 열기가 무섭다.


많이 싸웠다. 그러나 70여 년 형성된 습관은 바꿀 수가 없었다. 더 짧게 산 나를 바꾸자.


물건을 적체해 놓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래서 창고에 있는 모든 풀들을 꺼냈다. 그리고 지퍼가 달린 지퍼백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너무 얼기설기 덩어리가 큰 고사리는 큰 봉투 그대로 두고 나머지 풀들은 소분해서 옮겨 담았다. 비닐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려 하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다. 다 담고 나니 정확히 지퍼백 35봉지와 큰 비닐봉지 5개가 나왔다. 물론 벌레가 있거나 좀이 슨 것들 상당량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어머니께 보내드렸다. “올해는 풀 말리느라 고생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답이 왔다. “고생했어. 미안하고.”


미안하다는 어머니 말씀에 씩씩거리며 한껏 솟은 어깨가 내려앉았다.

맥시멀리스트와 같이 산다

맥시멀리스트와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맥시멀리스트들은 빈 공간을 보면 물건으로 채우려 한다.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정리하면 구석구석에서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용기와 노끈과 신문지 등이 나온다. 정성껏 접었거나 비닐 등에 담겨 있다. 나름 정리하신 것이다.


공존의 모색은 대화에 있다고 하지만 경험상 대화와 설득은 두려움과 습관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 대화는 짜증과 원망이 동반돼 그 끝이 좋지 못했다.


보여 줄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보유하고 계신지 수치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보유하고 계신 곡물의 종류와 양 말린 풀들의 종류와 양, 습관처럼 사모으는 이쑤시개의 양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같은 것끼리 모아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제 짜증과 원망을 빼고 ‘객관적 관찰-느낌-소망’을 넣어서 담백한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최미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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