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기획/특집 / 이기암 기자 / 2019-10-17 11:08:44

 

▲ 노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과거와 현재 박물관 건물 모습 ⓒ이기암 기자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부유했던 산업도시 역사를 뒤로한 노동박물관

스웨덴 동부에 있는 노르셰핑(Norrköping)은 발트해로 향하는 모탈라강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 인구 9만 명 도시지만 스웨덴에서는 열 번째로 크고, 핀란드 탐페레처럼 북유럽에서 발전한 공업도시 중 한 곳이다. 하지만 탐페레보다 더 빠른 변화를 맞이한 곳이다. 이 도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루이스 드 기어(Louis De Geer 1587~1652)다. 벨기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성공을 이룬 사업가인데 스웨덴 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가 노르셰핑에 온 것은 1627년으로 무기산업, 조선, 황동, 제지, 섬유공장을 차례로 지으며 산업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래서 도시 한 복판에 그를 기념하는 회색 동상이 세워져 있을 정도다. 그가 일으킨 회사들은 이후 스웨덴 대표 그룹 중 하나인 홀멘(Holmen)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차례로 사라진 공장들이 도시에 남아 지나간 역사를 보여준다. 1800년대 이후 가장 부유한 산업도시라는 명성은 과거가 됐고, 1970년대에 들어서 폐업하거나 이전하면서 버려진 공장들은 변화를 꾀해야만 했다. 모직공장은 린셰핑대학교(Linköping University)의 가장 중요한 캠퍼스가 됐고, 홀멘 제지공장은 콘서트홀로 바뀌었다. 나머지 공장들은 하나둘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그중 국립노동박물관은 1962년 마지막으로 생산을 중단한 홀멘 섬유공장을 1980년대에 전면 개조해 1991년 문을 열었다.
 

▲ 노르셰핑 과거 공장지대에 있는 노동박물관 입구.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1800년대와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 ⓒ이기암 기자


방직공장에서 35년 일한 여성 노동자 알바 칼슨

노르셰핑에 있는 노동박물관(Arbetets museum)은 스웨덴 국립박물관 중 유일하게 수도인 스톡홀름 밖에 세워졌다. 노르쉐핑 곳곳에 1800년부터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은 데 노동박물관 건물은 원래 공장지대 안에 있는 다리미 모양의 섬 위에 통째로 세워진 섬유공장이었다. 마치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7층 건물은 지어질 1917년 당시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스웨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업건물이란 평을 받을 만큼 지금 봐도 인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이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 들어선 노동박물관은 새로 개조된 모습 뒤로 예전 건물이 지닌 역사도 함께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한 층씩 걸어 올라가다 보면 계단 중간마다 알바 칼슨(Alva Carlsson)이란 여성을 소개한다. 그녀는 공장에 일했던 600여 명의 노동자 중 대부분이었던 여성 노동자를 대표한다. 1927년부터 1962년까지 35년을 일한 그녀의 물품을 들여다보면 노동박물관이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하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스웨덴 산업을 대표했던 과거에 머물지 않고 그 산업 속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도시를 지탱했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동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취재진을 맞아준 헬레나(Helena Törnqvis) 역시 국립박물관을 지방도시에 만든 이유와 함께 알바 칼슨에 대해 애정을 담아 설명했다. 알바 칼슨은 하나의 상징이며 그녀뿐 아니라 이 건물에서 평생 일했던 분들이 있었다고 덧붙인다. 그녀를 앞에 내세운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자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여성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서 삶을 영위했던 분들을 선구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물관의 주인공이 노동자다. 그런데 노동운동을 이끌거나 노동자 혁명사에 이름이 새겨진 명망가가 아니었다. 바로 평범하지만 평생을 노동하며 살았던 여성 노동자를 맨 앞에 내세웠다.
 

▲ 계단마다 공장에서 일한 알바 칼슨과 여성 노동자 상징물을 전시해 놨다. ⓒ이기암 기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기획전시

이곳 노동박물관은 소장품을 보관하거나 역사 기록을 보관하는 아카이브 역할보다는 노동과 노동자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지하전시실에서 열린 ‘소리의 변화(Sounds of Changes)’ 전시도 흥미를 끌었다. 과거에는 익숙하게 들었던 생활도구들의 소리가 곧 사라진다는 독특한 발상을 담아낸 전시였다. 2층 기획전시도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선거권’을 다룬 카툰이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에드워드 칼슨(Ewert Karlsson)의 작품세계를 담은 상설전시관 안에 전시됐다. 지금도 유리천장이란 말처럼 여성 차별이 있다고 하지만 아예 선거권이 없었던 때를 되돌아보는 전시였다. 3층 전시의 주제는 ‘위기와 비전(KRIS & VISION)’. 과거 노르셰핑이 걸어온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한 준비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전시장 한 편에 세워진 검은 비석이었는데 앞면에 여러 개의 이름과 연도가 새겨진 것이었다. 멀리서 볼 땐 도시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다가 가보니 도시에서 사라진 회사와 그 폐업연도를 적어둔 것이었다. 바로 노르셰핑의 위기이자 스웨덴 산업의 위기였던 시기를 장엄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어진 전시들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노동자 가정의 생활 변모 역시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5층에 전시된 ‘미래의 나라(Future Land)’였다. 전시 큐레이터인 헬레나에게 물으니 2014년에 스웨덴 박물관협회에서 최고의 전시로 뽑혀 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관련 전시는 미래의 세상을 단순히 보여주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손으로 돌려보고 열어보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중 어린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배우는 노동과 직업선택의 체험 공간은 박물관 전체에서도 가장 정성을 들인 모습이었다. 헬레나의 설명을 따르면 실제 전시 기획 과정부터 학자와 학생 그리고 시민들이 큐레이터처럼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과 많은 토론과 대화를 거쳤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이 궁금한 것에 대한 좀 더 나은 답변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노동자 삶과 문화에 조금 더 집중하기

전시 관람을 마치고 4층에 있는 회의 사무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노르셰핑 노동박물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두 명의 전시 큐레이터가 인터뷰에 응했다. 노동박물관에 대한 간략한 사전 설명을 받은 뒤 운영과 전시 구성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먼저 박물관이 들어선 위치에 대해 보강 설명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과의 관계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죽어버린 공장지대를 되살리는 프로젝트 이전에 스웨덴노총이 건물을 매입했고 지금의 박물관 부지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노동박물관의 이사진 중에는 스웨덴노총 외에도 스웨덴전문직노총(TCO), 노동자교육협회(ABF)에서 선임된 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노동조합과 관계가 깊은 반면 전시 내용에 노동운동을 다루는 부분은 빠져있는 게 궁금했다. 질문해보니 이전 노동운동의 역사 자체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노동자들의 삶과 문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2년 전 철강노동자에 대한 전시를 했을 때도 스웨덴 철강산업을 일으킨 타 국가 이주노동자를 다룬 것을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 전시에서 집중했던 것은 노동자 개인의 정체성, 이주해온 가족의 역사, 가족 안의 단결처럼 삶에 대해 더 주목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국립노동박물관이라는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스웨덴 각 지역에 걸쳐 있는 여러 노동박물관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는 그 지역에 속한 역사에 집중하는 것이며 국립박물관은 노동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담는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곳은 물품을 수집하는 것보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 결과 1991년 박물관이 문을 연 후 약 2600개 이상의 인터뷰를 했고 다양한 노동 이야기와 사진 문서를 수집하는 데 집중해오고 있었다.
 

▲ 박물관 큐레이터 헬레나가 인터뷰에 앞서 박물관 건물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소개했다. ⓒ이기암 기자

 

▲ 노르셰핑의 산업과 노동역사를 드러내는 전시. 폐업한 공장들을 묘비처럼 표현했다. ⓒ이기암 기자


노동박물관 네트워크를 실천해온 작업들

인터뷰를 마칠 즈음 헬레나는 한 권의 책을 건넸다. 펼쳐보니 스웨덴 곳곳의 여러 박물관이 빼곡하게 채워진 안내서였다. 국립노동박물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스웨덴 전역의 노동과 관련된 박물관을 조사한 결과를 묶은 것이라고 했다. 이 내용은 노동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검색할 수 있는데 스웨덴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너르게 퍼져있는 총 1450개 이상의 노동 관련 박물관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소개하고 있다. 각기 규모는 다르지만 이렇게 많은 곳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할 때 부럽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국립노동박물관이 앞장서서 노동박물관협회 및 조직을 위한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있었다. 소규모 조직일수록 그렇게 전략적 협업을 할 때 지속가능하다는 개념이었다. 실제로 단순히 공공박물관협회에 머물지 않고 업종별로 관련 있는 여러 네트워크와 협회를 책임 있게 주도하거나 참여하고 있었다. 나아가 전 세계 나라별로 존재하는 노동박물관 네트워크 워크랩(WORKLAB)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울산노동역사관이 참여할 수 있는 주체라고 참가를 권유했다. 스웨덴 노동박물관을 관람하고 운영 계획에 대해 취재하면서 핀란드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울림을 받은 부분도 바로 협업에 관한 것이었다. 노동박물관 전시를 구성하는 과정에도 여러 층의 협업이 있었고, 운영진에도 노조와 학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협력과 파견이 있었다. 스웨덴 곳곳의 작은 노동박물관을 연결하고 박물관에 참여하는 회원들과 연결도 탄탄해 보였다. 노르셰핑이라는 도시는 울산에 비교한다면 인구가 겨우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곳이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가치는 단순하게 계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노르셰핑 노동박물관은 쇠퇴한 산업 속 망해버린 공장 하나를 재활용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동력을 품어낸 공간이기 때문이다. 

 

▲ 노동박물관 5층에 전시된 미래의 나라 테마 속 노동과 직업에 관한 학생 체험 전시 ⓒ이기암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구독신청

오늘의 울산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