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피니언 /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2020-07-01 11:26:04
기억과 기록

기업의 가족정책은 무엇을 위한 정책이었을까?

친구네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다.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아빠가 6개월 간 휴직 중이다. 친구는 날이 갈수록 깨끗해지는 집과 거짓말 같이 취침시간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을 보며 남편의 육아휴직을 찬양하곤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어린이집과 학교가 문을 열지 않은 기간 동안 24시간 내내 자녀 돌봄을 담당해야 했던 남편은 육아우울증 직전까지 갔노라며 고개를 젓는다. 여자는 가족을 돌보고, 남자는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한다는 전통적 성별관이 당연시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텔레비전 속에서도 아빠들이 요리를 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광고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친구네 이야기는 여전히 예외적이고 특별한 일이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눈치 볼 일이 되는 직장문화 속에서 선뜻 휴직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은 아예 포기해야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럼, 직장 내 문화가 바뀌면 남성의 육아휴직은 늘어날까? 모순적이게도 가족은 ‘가족을 위해서’ 남성의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부부 중에서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돈을 적게 버는 쪽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더 낫다(앞서 예로 든 친구의 경우 부부의 임금격차가 거의 없는 경우다). 남녀임금격차가 여전한 한국사회에서, 특히 고임금 남성노동자들이 많은 울산지역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가족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남녀임금격차 현상의 여러 측면 중에서 ‘가족임금’으로서의 남성노동자의 고임금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컨베이어벨트의 도입으로 획기적인 자동차 대량생산의 시대를 연 미국의 포드사로 가본다.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시작한 포드사는 1914년 파격적인 고임금 정책을 시행했다. 먼저 고임금을 줄만한 노동자를 가려내기 위해 노동자들의 가족관계를 조사했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가족의 몫까지 임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혼남성의 당연한 의무로서 ‘남자다운’것으로 여겨졌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하고 단조로운 반복노동과 교대근무를 참아내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었다. 이를 통해 포드사는 이직률이 감소하는 등 성실한 노동자를 얻게 됨과 동시에 중산층 가정이라는 안정적인 소비자층을 확보하게 됐다. 대규모 자본은 남성노동자를 가족의 대표, 생계부양자로 위치 짓는 전통적인 성역할 인식을 바탕으로 가족임금의 성격을 갖는 고임금 정책을 펼쳤고, 이를 통해 많은 수의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기업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까지 포섭함으로써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상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문화까지 형성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의 임금 향상은 물론 노동자를 위한 기업복지도 대폭 확대됐다. 특히 주거비용, 의료보건비용, 학비보조비용의 비중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당시 남성중심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남성=가족의 생계부양자로 위치 지으며 임금협상에 임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노동자의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더욱 성실한 근로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됐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기초해 노동자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 노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던 것이다. 기업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지역사회에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기도 하고, 가족들을 기업으로 초대하는 각종 문화행사나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가족정책을 펼쳤다. 미혼보다 기혼 노동자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이 돌아가고, 자녀가 있는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아진다. 여기에 경력이 늘어날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임금구조가 더해지면 기혼여성 노동자는 일을 그만두고 가족의 돌봄을 책임지고, 기혼남성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이상적인 노동자 가족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경제발전에 따라 도시의 모습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순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초인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앞의 사례들은 ‘가족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인식은 종종 누군가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족을 위한 국가, 지역사회, 기업의 각종 정책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성역할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며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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