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들>

문화 /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2020-08-13 11:37:13
서평

 

코로나19 때문인지 몰라도 올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가 크게 줄었단다. 인구 자연감소 현상은 7개월째 이어져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사회) 진입은 물론이거니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사회) 진입도 머지않았단다. 지난 총선에서는 여성 정책으로 “4B운동(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 운동 지양”을 공약으로 내놓은 국회의원 후보도 있었으니, 여성들의 주체성‧자율성‧존엄성과는 별개로 소명을 다하지 않은 “자궁”에 대해 국가적 대책까지 마련하려는 시도가 참 웃프기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여성들이 이기적인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착취를 종식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여성할당제 등을 통해 여성의 사회‧정치계 진출을 확장하고, 청년세대를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세워 청년세대의 주거불안을 없애고, 모든 국민이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다 해결될 일인데 뭘 그리 어렵게들 생각하실까?
“4B운동”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과업에 대한 파업 선언이다. 몇 여성들의 파업 선언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국가의 장래를 걱정한다는 건 근대국가라는 시스템이 여성들의 희생 없이는 존립 불가하다는 얘기 아닐까? 한 예로, 나이가 들어 암이 생기면 남성 환자의 간병은 대부분 배우자가 맡으나, 여성 환자는 남편이 아닌 딸이나 며느리가 간병을 맡거나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가의 의료시스템은 아내, 딸, 며느리 등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령 인구에 대한 돌봄 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가시화된 지 오래다. 대표적 노인성 질환인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치매 보험 상품이 잇달아 출시되고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 또한 머지않아 일본의 문제들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현재를 읽는 것은 한국의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일이 된다. <장녀들>은 일본 문학의 한 장르로 구축된 ‘개호(介護)소설’이다. 돌봄 노동을 가리키는 일본어인 개호(介護)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건 고령사회에서의 돌봄은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축소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다.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장녀들>은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장녀에 관한 이야기다. 장녀에게 부과되는 돌봄 노동이 그다지 낯선 일도 아닌 것이 우리에겐 ‘K-장녀’라는 신조어가 있지 않은가. <장녀들>은 장녀들의 돌봄 노동에 대한 3편의 이야기이지만, 각 이야기가 주는 고민의 지점들은 조금씩 다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간병 때문에 비혼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딸, 심각한 당뇨에도 스스로를 방치한 어머니가 딸에게서 장기 이식을 받으려 하는 와중에 갖게 되는 어머니에 대한 딸의 애증, 의료봉사를 떠난 히말라야에서 직면한 현대 의학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 가족 내에서 비혼인 딸의 위치와 역할, 늙고 병들어가는 부모를 받아들여야 하는 딸의 심리 변화 등을 미묘하게 포착할 수 있다. 


<장녀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는 계속 노인 인구와 비혼 인구 비율은 늘어날 것이고, 기대 수명은 점차 높아질 것이나 삶의 질은 답보할 수 없다. 이래도 계속 “이기적인 젊은 여성” 탓만 하고 있을 텐가?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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