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문화 / 배성동 소설가 / 2020-04-02 11:52:57
나는 숲이다 호랑이가 온다
▲ ⓒ문정훈

 

 

복면시대다. 마른기침에 사람들이 움츠릴수록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올해 초 괴질이 시작되고부터 팔기 시작한 발품. 삼 개월 만에 1200km를 내처 걸었다. 삼천리강산 끝자락인 두만강까지 간 셈이다. 천리를 걷는 무쇠다리로 숲의 왕을 찾아 나섰다.


타이가(Taiga)는 영원한 매력이다. 가면 갈수록 신비롭다. 100년 전 한국에서 사라진 호랑이를 찾아 국내를 비롯한 동북아 5개국의 백년숲을 탐사 중이다. 한국 탐사 10여 년에 이어 러시아, 중국, 일본 탐사 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만리(4만km)가 넘는 머슴새 발품을 팔고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범을 보면 무섭고, 범 가죽을 보면 탐난다. 고국에 돌아오는 날이면 영남알프스에서 발품을 팔아 다음 경비 마련에 나선다. 그렇게 탐사한 국내 기록을 지방 언론사를 통해 연재한 적은 있었지만 동북아 5개국 대탐사는 이번이 첫 연재다. 


신불산표범의 주요 통로였던 영남알프스와 낙동정맥을 고자 처갓집 드나들 듯했고,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한반도 허리춤을 꽤나 맴돌았다. 도저히 한반도 남측(DMZ 기준)에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어서 결국 갈 수 없는 땅 북측 두만강을 넘어 중국 동북수해에 이어 방대한 러시아 시베리아 침엽수림을 누비게 됐다. 


그곳 타이가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이다. 그 대표적인 맹수가 시베리아 호랑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호랑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러시아에서는 아무르 타이거, 중국에서는 동북호로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 중에서는 무려 300~400kg이나 나가는 대호도 있었다. 사나운 불곰이나 멧돼지 역시 300kg까지 나가는 괴물들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중국 만주리를 잇는 동청철도(1901년 개설)를 중요 동선으로 보았다. 국경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호랑이가 조선과 만주, 연해주를 드나들던 100년 전 당시의 이동 루트를 탐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중국 공안과 러시아 비밀경찰에 체포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누가 시키는 일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미친 짓’이었다.


원래 호랑이가 없는 섬나라 일본도 중요했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라는 명목으로 조선범의 씨를 말린 조선총독부 자료를 찾아야 했다. 한 번은 일본 열도 남부에 있는 야마구찌(山口)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왕대(朝鮮王大)를 근접할 기회가 생겼다. 어두운 수장고에서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약4m, 높이 990cm, 체중이 무려 300kg가 넘는 황소만한 대호였다. 난생 처음 조선대호를 접하고 엄청난 위엄 앞에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이마의 왕대(王大) 문양, 황갈색 몸집에 선명히 드러난 미역줄무늬, 축구공보다 더 큰 앞발,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존의 모습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엄청난 덩치와 용맹스러움과는 달리 전체적인 형상은 암울했다. 식민지 조선 어느 산중에서 잡힌 조선왕대가 섬나라 박물관의 박제로 남아 한낱 남의 구경거리로 전락해 있는 처지라니. 왕대는 100년 만에 찾아온 모국의 작가에게 “왜 이제 왔느냐”며 원성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는 것 같았다. 일제의 침략사가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조선의 배를 갈라 민족정기를 빼낸 부복장주(剖腹藏珠)의 비극적 최후 앞에 속죄 말을 조아렸다. 언젠가는 모시러 오리라고……. 


이 글의 배경은 한국과 조선, 중국 북만주, 러시아 시베리아, 일본 5개국이다. 출발점은 한반도 동남쪽에 있는 울주 대곡천이다. 그곳 반구대암각화에는 7000년 전에 새겨진 호랑이 표범 바위그림이 있는데, 3D로 정밀 분석한 결과 23마리로 확인됐다. 그중에서 ‘일어선 호랑이’를 주목한다. 러시아 동물학자들은 한반도 호랑이의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구대암각화를 새길 무렵의 대곡천은 호랑이의 중앙정부였던 셈이다. ‘일어선 호랑이’의 뜨거운 심장으로 중국, 러시아로 망명 간 호랑이를 맹추격한다. 


1880년~1980년을 배경으로 한반도 주변 5개국에 살았던 백년숲을 그려낼 참이다. 마침 숲에는 호랑이만이 아니라 구한말 격동의 시절들이 함께 있었다. 망해가는 조선을 구하려는 독립군과 쪽바리가 끄는 게다짝 소리가 듣기 싫어 천리타향을 떠도는 이주 조선인을 숨겨 준 곳도 숲이었다. 화승총 시대를 이끈 당대 최고의 사냥꾼들을 앞세우고, 본토에서 밀려온 중국인과 일본인에게 쫓겨난 조선인들이 모인 북방수림을 짊어지고 살았던 연해주 고려인들의 애환도 살핀다. 화적떼 봇짐도 털어먹을 암투도 있었다. 만물이 공존하는 시베리아 타이가를 찬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훈훈한 원주민들과 어울려 춤도 추었다. 


단순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한반도 주변 5개국 북방수림에서 펼쳐지는 맹수와 작가의 숨 막히는 리얼리티. 청년 일러스트의 생동감 넘치는 삽화와 함께 다가올 호랑이 백년사를 기대하시라.

 

배성동 소설가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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