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기획/특집 / ​곽원비 / 2020-05-20 12:04:36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내가 만난 5.18

5.18민중항쟁40주년울산행사위원회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내가 만난 5.18'을 주제로 울산시민들의 글을 모았다. 시민들이 보내온 글 가운데 몇 편을 추려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주>

 

 

나는 역사를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짧은 시간에 배워야 할 내용이 많았고 혹여나 내용을 놓치고 나면 진도를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나에게 역사는 사실상 학습하기보다는 무조건적으로 문장을 암기하기 급급한 과목이었다. 그런 내가 역사를 공부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역사가 고등학교 내신에 들어가서, 대학교를 가기 위해, 중요하다고들 하니까. 역사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자의보다 타의에 가까웠다. 중요하다는 부분들을 빨간 줄 그어 체크하고 무작정 쓰고 외웠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역사는 그 사건이 가진 가치보다 중요한 부분,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로 내용이 나뉘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도 그랬다. 군사 정권의 탄압, 민간인 학살 그리고 민주화.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와닿지 않았다. 글자 몇 줄로 배운 역사가 마음속 깊이 남을 리가 없었다.

 

최근 KBS 교양 프로그램인 <거리의 만찬>을 보게 됐다. ‘광수를 아시나요?’ 프로그램에서는 광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광수는 ‘광주에 침투한 북한 특수군 부대원’의 줄임말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기 위해 당시 외신 기자에 의해 찍힌 사진 속 광주 시민들을 허위 날조하는 단어다. 오백 명이 넘는 북한군이 남한으로 침투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광수로 지목된 사람들이 방송에 나왔다. 광주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왜 이렇게 매도돼야 하냐고 토로했다. 허위 내용을 담은 글은 개인의 SNS를 통해 끝없이 전파되고 일부 국회의원은 허위 내용을 뒷받침하는 거짓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피해자를 상처 주기란 쉽다. 아플 만한 곳을 후벼 파고 당신의 고통을 의심하기만 하면 된다. 방송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주먹밥을 너무 먹어 지금은 주먹밥을 입에도 못 댄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짧게 나왔다.

 

5.18 민주화운동이 과거의 일이라 생각했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과거사 중 하나이니만큼 날조한다고 날조되는, 지금 바꾸려고 하면 바꿀 수 있는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가까운 역사이니 증거 자료도 남아 있을 테고 당시의 기억으로 상처받는 사람을 충분히 구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광주를 비하하고, 민주화운동을 폄훼할 때도 나서서 무엇인가 행동해야겠다 생각하지 않았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행동 역시 방관이며 방조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18 민주화운동 생존자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한 번도 과거로 남은 적이 없었다. 5.18 관련 망언들과 왜곡이 만연하다. 그때의 싸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버겁다고 쉽게 암기하고 넘길 부분이 아니었고, 수업 진도 나가기에 급급해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 역사가 아니었다.

 

옳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발화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침묵은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만든다. 말에는 힘이 있다. 왜곡과 날조를 줄일 수 있으며 생존자들로 하여금 허위 사실에도 버틸 수 있는 지지대를 만들 수 있다. 비록 많은 활동을 같이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 몫을 다하고 싶다.

 

​곽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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