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사랑이다

문화 /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2020-04-02 12:18:05
아빠 일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바이러스 때문에 다니던 헬스장이 휴업에 들어가서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고, 기름 값도 아끼며 환경에도 좋은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내 첫 자전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사 주신 12단 산악용 자전거였다. 수없이 넘어지고 나서야 결국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전거를 탔고 그때의 성취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아마 타고난 재능과 무관하게 노력만으로 무언가를 이룬 첫 성취의 경험이어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듯하다. 어떤 연료도 없이 내 다리의 힘만으로 제법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바람을 가르며 속도감을 느낄 땐 짜릿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날씨만 허락하면 등교도 늘 자전거로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휴일엔 자전거를 타고 놀러 다녔고 자전거를 좋아하는 친구와 당일치기로 경주까지 갔다 온 적도 있다. 뜨거운 초여름 날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고 종일 자전거를 타서 피부에 3도 화상을 입어 엄마한테 혼나고 오랫동안 고생한 기억도 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업과 세상의 다른 흥미 있는 것들에 관심이 쏠려 자전거는 내게서 멀어졌다. 20대에도 자전거는 없었다. 30대에 들어서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40대인 지금 그 어느 시절보다 더 열심히 타고 있다. 50대도, 아니 두 다리가 멀쩡하다면 죽을 때까지 자전거를 탈 것 같다.


자전거는 전신 운동이다. 하체를 주로 사용하긴 하지만 중심을 잡기 위해 상체에도 힘이 들어간다. 조금 달리다 보면 금세 온몸에서 땀이 난다. 울산엔 태화강을 중심으로 멀리 언양까지 도로가 잘 닦여 있어 자전거 타기 좋은 환경이다. 자동차를 탈 때는 보지 못한 여러 가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다운동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삼산동으로 달리는 동안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냄새도 바뀐다. 산이 많은 다운동에선 상쾌한 냄새가 나다가 태화동 대숲을 지나 삼산동 쪽으로 나오면 주위에 도로가 많아 차량이 내뿜는 매연 냄새가 난다. 


계절마다 풍경은 다른 옷을 입고 어느 샌가 마치 생태습지를 보듯 이름 모를 다양한 철새들이 태화강과 대숲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햇살 좋은 아침엔 대숲 사이로 비치는 태양의 빛이 강에 비쳐 유리알처럼 반짝거린다. 새들은 하늘에서 군무를 추고 물고기들이 간헐적으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어우러져 영화에 나오는 모습처럼 아름답다(바이러스로 인한 실내 체육관의 임시휴업으로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운동하러 나온 늘씬한 여성들을 훔쳐보는 재미는 덤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곳이라 감흥이 떨어져서 그렇지 태화강 국가정원과 그 일대는 세계 어느 도시에 견줘 봐도 절대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도시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그렇게 내 뺨을 부드럽게 때리는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있노라면 업무와 육아 스트레스, 그리고 삶에 대한 걱정들도 그 바람과 함께 저 멀리 뒤로 훌쩍 날아가 버린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페달을 돌리고, 바람은 애무하듯이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내 몸을 만지고, 풍경은 다가왔다가 뒤로 멀어진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찰나의 순간에 동시다발로 경험하지만 난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온전히 그 순간에 몰입한다. 오로지 나와 자전거 그리고 풍경이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좋은데 왜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지 않을까. 강변엔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돼 있지만, 시내로 진입하면 여전히 골목과 도로는 보행자나 자전거에 친화적이지 않다. 도로의 많은 부분이 자동차에 점령당해 있다. 골목엔 차로와 인도가 구분돼 있지도 않고 많은 차가 양옆으로 주차돼 있어 시야도 많이 가릴 뿐더러 교차로에선 위험하기도 하다. 직장과 회사가 먼 경우엔 자전거 타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장을 입고 일해야 하는 곳이나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어야 하는 여성들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독일 함부루크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도시의 모든 곳에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주거지와 회사의 거리가 아주 멀지 않다면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학교로 갈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배달도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로 많이 했다. 자연스럽게 도로에는 차량이 많이 없고 미세먼지도 없이 깨끗한 하늘 아래 사람들과 아이들이 차 대신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자동차보다 훨씬 느린 자전거를 타서인지 그들의 삶의 속도도 더 느리고 더 여유로워 보였다.


상상해 본다. 우리의 도시도 그렇게 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게 직장과 학교, 주거지의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하고 차량에 빼앗긴 골목을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는 날을. 우리가 사는 곳이 미세먼지 걱정 없이 언제 어디서든 자전거를 타고 삶에 대한 걱정을 훌훌 날려 버릴 수 있는 그런 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말이다.


그런데 자전거가 왜 사랑이냐고? 자전거는 아주 좋은 하체 운동이자 심폐 지구력 운동이다. 자전거를 타면 하체 근육이 단련되고 혈류량이 증가하며 남성 호르몬도 왕성하게 분출된다. 그렇다, 자전거는 곧 사랑이다. 당장 오늘부터 자전거를 타자.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구독신청

오늘의 울산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