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과 우리 교육

교육 / 도상열 두동초등학교 교사 / 2021-06-09 00:00:38
교육 톺아보기

마이클 샌델은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배경으로 오바마의 ‘공정’이라는 구호를 꼽았다.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된 오바마의 이미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와 비슷한데 그런 오바마 대통령의 행적이 트럼프를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화려한 언변으로, 감동적으로 연설했지만 그럴수록 정치적 혐오와 포퓰리즘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20대들이 민주당에 느끼는 혐오와 포퓰리즘적 행동이 오버랩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교육이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라.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질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기득권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벌이 필수 요건이 돼버려 가진 자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녀들의 학력을 조작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된 트럼프마저도 자신이 매우 공부를 잘한 학생이었다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는 학벌사회에서 오바마의 주장은 서민들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샌델은 정치적 허무주의와 혐오, 포퓰리즘이 오바마 대통령 시기에 더 확산했다고 분석한다.


요즘 우리나라 20~30대에서 최고의 화두는 공정이다. 능력주의와 능력주의 시스템에 반하는 결정은 정의롭지 못한 결정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정서적으로 가장 큰 반감을 갖는 세대가 20대다. 시험을 치고 정식 입사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정규직이 되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20대가 공정에 민감한 세대가 됐을까?


난 수시제도와 내신제도의 변화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역설이다. 고교교육을 내실화하자는 주장이 능력주의 사회를 더 공공화하고 있다는 역설! 수능으로만 대학에 진학하던 세대와 내신과 수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세대 사이에는 입시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내신이 강화되자 고등학교 교육이 내실 있게 운영되는 측면이 있지만, 학생들 처지에서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과 관계가 점수를 채우기 위한 활동이 돼 버렸다.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대학 진학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봉사활동도, 대회 참석도,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 자체의 목적보다 대학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평가권 앞에 몸을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게 됐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수록 더 그렇다. 이렇게 고등학교 3년을 자신의 삶 없이 오직 대학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와 점수 올리기에 최선을 다해 온 젊은이들이 공부를 게을리하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학생들이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고 주장하면 동의할 수 있을까? 20대의 정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게 역설이지 않은가?


수능과 내신의 조합으로 치러지는 대학입학시험은 강력한 능력주의를 형성한다. 수능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주의의 입지를 구축한다. ‘머리만 좋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소질과 자질이 있다는 걸 알고 미리, 꾸준히 준비해야만 대학 진학의 기회를 부여했기 때문에 공정성 시비는 걸지 마라.’ 이런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이건 착각일 뿐이라는 게 마이클 샌델의 주장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의 학력은 부모의 문화자본에 따라 좌우된다는 걸 명확하게 알게 된다. 학생들의 지력, 태도, 인성. 자질은 학생 자신의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관계망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사회와 학교에서는 부모가 가진 문화자본의 차이를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계층분화는 더 가속화될 것이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질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자신들이 어떤 기득권을 가졌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교사가 개입하지 않으면 능력이 있는 친구들은 그들끼리 무리를 만들고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문화를 만들어 간다. 어른들이 하는 행태와 다르지 않게 기득권 연대를 만들어 간다. 학교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장치로 소외되고 부족한 아이들을 부추겨 세우지 않으면 사회통합, 연대의 정신은 자라지 못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자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교어린이회에서 다양한 사업을 스스로 기획해 추진하고 학생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등 그 존재감이 드러나자 학부모들이 학급 반장은 모든 학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해 왔다. 해서 우리 반에서는 2주마다 반장선거를 해 모든 학생이 반장이 돼 활동하게 해 봤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 앞에 잘 나서지 않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반장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는가? 이 아이들은 머리보다는 몸으로, 책임감으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똑똑한 아이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학교는 이런 경험을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민주주의자를 기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앞에서 말한 수시 체제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대입 시스템을 대학 평준화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청년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공부 못하더라도 리더의 경험을 다양하게 체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고 20대가 우편향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데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계속 되뇐다면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혐오와 반동을 막지 못할 것이다. 


도상열 두동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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