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기획/특집 / 이기암 기자 / 2019-10-03 15:23:16

 


▲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광장 ⓒ이기암 기자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인류 역사는 노동과 함께 발전해왔다. 원시공동체사회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노동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사냥의 모습처럼 수렵과 목축 그리고 경작을 통해 삶을 지속했다. 계급사회로 접어들면서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 소외된 노동이라도 결국 노동이 더해진 바탕 위에 문화가 생성되고 유지되고 계승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노동력을 사고 파는 시장이 만들어졌고, 그 속에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대립이 분출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산업혁명을 앞두고 기술 발달에 따른 직업 변화와 더불어 노동 역시 어떤 물결 위에 놓일 것인가 궁금증이 더해지는 때다. 우리가 노동박물관을 주목한 것도 그 변화 속에 필요한 사회적 성찰 때문이었다.

울산에서 노동박물관을 바라보는 이유

1960년대 최초의 국가공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울산은 오랜 기간 산업수도라고 불렸다. 1962년 울산시로 승격될 때 인구가 20만 명이었던 도시가 100만 명이 넘는 광역시로 또 한 번 발돋움 했던 성장의 역사가 써 나갔다. 그 과정은 도시 인구 속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온 노동자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후 7월 5일 현대엔진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3개월에 걸친 노동자대투쟁이 펼쳐졌다. 산업수도라는 별칭과 함께 노동의 메카, 노동자의 도시라는 새로운 수식이 붙게 된 것이다. 2014년 국내 최초의 노동박물관이 울산에 만들어진 것도 그래서 당연한 것이었다. 울산 북구 오토밸리복지센터 4층에 위치한 ‘울산노동역사관’은 작은 공공박물관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각종 소장 자료가 10만 점에 이르며 근현대역사 속 노동을 드러내는 집약공간으로 가치가 있다. 기존에 전국 곳곳에 각 지방의 특산품을 앞세운 박물관은 많았지만 그 생산물을 만드는 주인공인 노동과 노동자를 드러낸 곳은 없었다. 예를 들어 석탄, 담배, 김치, 녹차, 옹기 박물관이 있다면 사람은 뒤로 밀리고 제품이 주목받는 형식이었다. 최근 울산노동역사관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울산 북구청이 노동역사관을 정식 박물관으로 등록할 수 있는 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증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장고를 규격에 맞추고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대폭 확장할 예정이다.

 

▲ 어린이를 위한 노동과 직업 전시. 스웨덴 노르셰핑 박물관 ⓒ이기암 기자


탐페레, 노르셰핑, 코펜하겐 그리고 함부르크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10박 11일 동안 북유럽 노동박물관을 찾았다. 노동박물관이 위치한 도시는 핀란드 탐페레, 스웨덴 노르셰핑,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함부르크였다. 코펜하겐은 덴마크 국가수도지만 나머지 도시들은 아니었다. 특히 핀란드와 스웨덴 노동박물관은 국립임에도 지방도시에 세워졌다. 해당 도시들이 수도는 아니어도 그 나라의 발전을 이끈 공업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 최대 공업도시인 울산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가까운 대만도 수도인 타이베이 대신 남부의 산업도시 카오슝에 노동박물관을 만들었는데 같은 경우다. 차이점은 울산은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생산을 하고 있는 산업도시지만 북유럽의 노동박물관이 위치한 도시는 과거형이라는 점이다. 탐페레와 노르셰핑은 산업혁명 이후 공업이 크게 발달했지만 현재는 산업의 변화와 더불어 이전의 명성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독일 함부르크도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함부르크는 독일 도시 중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며 유럽 전체로 봐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그러나 현재 독일 최대 공업지역은 루르지역 도르트문트나 에센으로 바뀐 상태다. 결국 기존 제조업에서 다음 산업이 발전하면서 도시도 함께 변화를 걷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웨덴 노동박물관이 지닌 가치는 컸다. 노르셰핑은 스웨덴 내륙의 공업도시였지만 1960년대를 경과하면서 해당 기업들의 공장이 차례로 문을 닫으며 쇠락한 도시로 전락했다. 그 공업단지 곳곳이 리모델링을 거쳐 박물관과 문화시설로 탈바꿈했는데 노동박물관이 대표적인 공간이 됐다. 원래 섬유공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국립노동박물관으로 변모한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폐공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 재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 눈길을 끌었다.

북유럽 노동정책과 환경에서 본다면

우리가 찾아본 네 곳의 노동박물관 중 코펜하겐 노동박물관은 1982년에 건립돼 가장 오래된 역사를 보여줬다. 나머지 세 곳은 모두 1990년대에 문을 열었다. 운영 주체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노동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공공의 목적에 동의하는 사회적인 흐름과 맞물려 준비됐다는 것에는 다른 게 없었다. 이는 해당 국가의 노동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우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 비율이 70%를 넘는 국가들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해마다 줄어든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기간 2배로 늘어났던 노동조합 조직률은 1997년 IMF 구제금융기간을 거치며 정리해고법과 파견제법이 통과된 후 꺾이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규직 노동자 일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체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비율도 함께 줄어든 것이라는 분석이 타당하다. 아울러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을 붉은 색깔의 안경을 쓰고 보게 만든 사회적 반대 분위기도 한몫했다. 분단국가라는 상황을 빌어 노동운동을 ‘빨갱이’라고 폄하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의 권리는 축소 제한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하지만 북유럽은 노동조합 가입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핀란드의 경우 실업급여를 노동조합이 관리하는데 결국 사회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한다. 결국 높은 노동조합 조직률은 사회적인 발언권이 커지는 선순환 구조가 됐고, 정치, 교육, 문화에서 매우 긍정적인 노동정책이 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박물관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공간이라고 여겨진 것이다.

 

▲ 인쇄공업을 체험할 수 있는작업대.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이기암 기자


노동교육 인권교육이 펼쳐지는 학습 공간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권리가 자연스러운 것이 기본적인 바탕이라면 교육은 어린 학생 때부터 사회규범으로 체득하게 한다.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학교 공간의 노동교육이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찾아갔던 독일을 하나로 사례로 보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4단계로 나눠진 교육과정 중에서 의무교육에 속하는 초등과 중등1과정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학교수업으로 받게 된다. 헌법에 보장된 사항을 비롯해 각종 법 속에 포함된 노동기본권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노사관계와 직업교육 속에서 노동 권리를 좀 더 체득하게 된다.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과정에 노동은 학습 속에 빼놓을 수 없는 과목이 된 것이다. 교과서도 당연히 그런 원칙 속에서 만들어진다. 노동박물관은 교실 밖에서 직접 체험하는 노동과 인권교육의 학습 공간이 되고 있었다. 우리가 찾았던 박물관은 어린이들이 쉽게 노동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로 돕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끼리 찾거나 학생 단체 관람객들이 박물관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노동을 경험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울러 아동노동과 여성노동에 대해 특별하게 전시를 열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국가와 도시가 다른데도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 남성의 세계로 생각할 수 있는 노동을 확장해서 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유럽 노동박물관은 노동교육, 인권교육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사회구성원들이 쉽게 접하고 이해하도록 돕고 있었다.

노동존중 세상으로 가는 징검다리

우리는 촛불혁명을 거칠 때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던 바 있다. 그 때 광장에서 적폐청산을 통해 그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꿨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노동존중 세상이다. 촛불혁명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노동존중 세상은 매우 중요한 화두로 꼽혔다. 그래서 선거에 나온 후보들 중 진보를 자처한 이들은 앞 다퉈 노동공약을 내걸었고 당선 후 그와 관련한 정책적인 행보를 펼친 바 있다. 그럼에도 노동존중 세상이 얼마나 다가왔는지 척박한 노동환경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묻는다면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훨씬 더 많이 붙어있는 게 현실이다.작년 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 노동자의 나이는 겨우 24살이었는데 그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올해 2월 대통령이 고 김용균 노동자의 가족을 청와대로 불러 만났고 정부 여당은 관련 업종에서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하지만 우리는 그 뒤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기에 안심할 수 없다. 여전히 재벌들은 부의 편법 승계를 위한 꼼수를 쓰고 있고 경기불황에서 가장 먼저 칼바람을 맞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동존중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직 없다는 비판이 계속 나오는 이유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박물관이 노동존중 세상의 바로미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4개국 박물관을 탐방하면서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얻게 됐다. 우리 사회가 담아야할 중요한 가치인 ‘노동존중’. 국민과 시민의 다수가 노동자며 그 가족인 세상에서 과거 역사와 미래 비전을 담아낼 노동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 아동 노동역사를 보여준 코펜하겐 노동박물관 전시 ⓒ이기암 기자

 

이기암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