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인 50주기, 오랜만에 부여행

문화 / 이동고 기자 / 2019-10-04 16:01:05
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신동엽 문학관은 소박하고 조촐한 맛이 있어 오히려 편안했다.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마지막 시 구절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는 아직 살아 퍼득이는 시어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작가회의에 소속됐지만 올해 부여에서 열리는 전국작가회의 모임에는 처음 참가해 본다. 울산작가회의에 속한 작가들과 함께 1박 2일의 여정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가는 길을 굳이 고속도로로 빠르게 갈 이유는 없다. 황간 IC에서 나와 국도를 타고 가면서 둘러볼 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경로를 잡았다. 국도를 조금 달리다 보니 ‘노근리 현장’이라는 표지판과 사진으로 봐서 익숙한 쌍굴다리가 나왔다. 잠시 차를 세우고 오기 힘든 역사현장을 둘러봤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는 1950년 7월 28일부터 5일간 250명에서 300명 정도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현장이다. 쌍굴다리는 큰 해골의 빈 동공처럼 어둑한 구멍이 음산하다. 터널 곳곳에는 그 당시 총탄의 흔적을 둥근 원으로 표시해 놨는데 수백 개에 이르러 그 참혹상을 짐작하게 한다. 1950년 7월 23일 미군은 사건 당시 남측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 중 민간인으로 가장한 북한 육군 병력이 숨어있다는 첩보를 근거로 영동읍 주곡리 주민에게 소개령이 내리고 임계리, 주곡리, 타 지역주민은 영동읍 임계리에 모이게 한다.

남쪽으로 피난을 유도하자 주민 500~600명은 영동읍 하기리 하천변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26일 피난 행로가 철로로 변경됐는데 그 날 정오경 미군 비행기 폭격과 기총소사로 철로 위 피난민 다수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 날 오후 미군의 공격을 피해 노근리에 있는 개근철교(쌍굴) 밑으로 피신했고, 26일 오후부터 29일 오전까지 미 육군은 쌍굴 밑으로 피신한 피난민들에 대해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을 해 다수의 피난민이 몰살당한다.

억울한 죽음이 묻혔다가 1999년 10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한미양국은 공동조사를 했고 2001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2004년 2월 9일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해 3월 5일 노근리 사건 특별법이 공포된다. 이후 피해자 가족들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현재까지 계속 중이다. 당시 노근리 주변에 몇 차례 공군 작전이 수행된 사실은 있으나 피난민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는지는 해당 작전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한미 조사단의 공식 입장이었다.

한편 공식 조사발표 이후에도 미 참전 용사들의 ‘상부 명령이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되자 미 국방부는 ‘명령이 없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명령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고 이후 AP통신을 통해 증언을 했던 참전용사들은 증언 내용을 번복했다. 이후 증언자들의 사망과 연락두절, 증언거부 등으로 미군 측 증언은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영동을 지나면 금산군인데 부리면을 흐르는 금강은 특별히 금강이라 부르지 않고 ‘적벽강’이라 하는데 주변 바위가 붉다는 뜻으로 중국지명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방향에 금산군의 가장 높은 성주산(624m)이 있고 강변에 솟은 높은 바위절벽은 웅장하기 그지없다. 이 강물은 굽이굽이 돌아 대청호로 흘러 들어 공주와 부여를 지나 장항과 군산 사이 해안가로 빠져 나간다. 용담댐 건설로 이전보단 못하지만 적벽강의 물은 수량도 좋고 맑은 편이다. 무주도 반딧불이가 유명하지만 금산군 제원면의 반딧불이도 그에 못지않아 청청 물길을 자랑한다. 강변에 자리한 원골유원지는 반대편 깎아지른 절벽에 인공폭포를 조성했고 그 아래 식당은 어죽으로 유명하다. 작가들과 금강을 내려다보며 강에서 잡은 피라미를 튀겨 만든 도리뱅뱅이와 인삼튀김, 민물새우튀김, 어죽을 같이 들며 모처럼 편하게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논산을 지나 부여군에 들어서니 백제 전성기를 누렸던 성왕의 동상이 있는 로터리가 나온다. 그 로터리 저 멀리 계백장군 동상이 보인다. 부여군은 신동엽 시인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2019년 전국작가회의 모임을 신동엽 50주기에 맞춰 사)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가 부여군에서 행사 주최를 한 이유기도 하다. 경상도 신라문화권에 속했던 울산작가들이 백제문화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신선한 일이었다. 신동엽 문학관은 소박하고 조촐했고, 압도적이지 않아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39세에 요절한 작가의 ‘맑고 빛나는 눈’은 그대로 시인의 눈이다.

신동엽 문학상은 우리나라 주요 문인들을 길러내는 자극제가 됐다. 이문구, 김성동, 현기영, 김사인, 윤정모, 도종환, 김남주, 방현석, 김하기, 고재종, 공선옥, 이원규, 박민규, 박후기, 송경동, 황정은 등등(내가 들어본 작가 위주), 문인들은 지역의 문화를 이끌고 가는 집단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우리는 잘 하고 있는가? 작가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문학으로 삶의 문제를 공유하고 창작에서 나오는 생각을 교류하는 ‘정신이 살아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 여긴다. 작가회의는 친일의 거짓 역사를 세우려는 어둠속에서도 우리의 참 역사를 지켜내려고 싸워온 문인들이다.

개인주의화되고 더욱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곧은 정신을 지켜낸 것은 펜을 든 사람이었다. 신동엽 시인의 흉상 옆에 있는 펜촉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타 지역 작가들 모습도 많은 자극제가 됐다. 그날 밤 지역 출향작가도 같이한 자리에서 오랜만에 늦게까지 어울렸다. 문인 작가는 작가를 두려워하면서도 또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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