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남겨진 역사, 언양 고인돌과 삼남 알바위

문화 / 이종호 기자 / 2020-09-16 00:00:58
울산 선사시대 교실 5강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에 있는 언양 지석묘는 영남에서 가장 큰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2003년 지표조사 당시 받침돌 6개가 확인됐다. 덮개돌은 길이 850cm, 너비 530cm, 두께 300cm에 이른다. 주민들은 이 고인돌을 ‘용바우’라고 부른다. 이번 답사를 이끈 원영미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청동기시대 언양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삼남면 언양향교 안에 자리한 교동리 고인돌은 화강암으로 모서리에 각이 없는 장방형이다. 덮개돌 윗면에 약 20개의 바위구멍(성혈)이 있다. 크기는 길이 210cm, 너비 130cm, 두께 80cm다. 2003년 지표조사 당시 덮개돌 윗면에 비석을 꽂아 비대석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2015년 언양향교 정비공사 때 비석과 고인돌의 덮개돌을 분리해 지금 자리에 뒀다. 고인돌 아래 받침돌은 보도블록으로 인도를 조성하면서 확인되지 않는다.


삼남면 상천리 통도사국장생석표 앞 설명판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쇄가 희미해졌다.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장생(장승) 형태의 돌로 만든 표지석으로 국가의 명에 따라 세웠다. 고려시대 사찰에 지급되는 사원전의 경계이자 소유권을 나타내는 국장생석표는 1085년 통도사에서 세웠다. 상천리 통도사국장생석표가 세워지기 전에 7기의 석표가 있었지만 절의 영역을 새롭게 표시하기 위해 통도사에서 상서호부에 보고했고, 새로 12기의 석표를 세우라는 명을 받아 세웠다. 상천리 국장생석표는 자연석 앞면을 거칠게 다음은 비석 형태로 높이 120cm, 너비 62cm다. 원영미 교수는 상천리 석표는 양산시 하북면 백륵리에 있는 보물 제74호 양산 통도사국장생석표와 함께 고려시대 통도사의 영역과 중앙정부의 사찰 행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삼남면 방기리 하방마을 들머리에 있는 알바위는 바위 구멍 모양이 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 교수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면서 바위 표면을 작은 돌로 수없이 비비고 마찰시켜 뚫어낸 구멍으로 바위를 새긴 암각화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바위들은 ‘동뫼’라고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 소나무숲 아래 흩어져 있다. 성혈은 적게는 10여 개, 많게는 30~40여 개가 새겨져 있다. 작은 돌로 문질러서 둥글고 오목하게 만들었다. 수십 개의 십자형 선각 그림과 두세 개의 단순 동심원이 나타나는 것도 있다.


원영미 교수는 “농경사회에서 풍요 다산의 의미로 해석하거나 태양에 대한 제의와 관련해 주술적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며 “바위들이 단을 이루면서 봉분 모양을 나타내는 점을 볼 때 알바위는 당시 이 지역 지배집단의 수장을 묻은 무덤이거나 글의 제의 행사장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 유적으로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와 같은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며 방기리 알바위와 1km 떨어진 통도사 입구 신평소공원 유적과도 연관이 있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방기리 알바위 동쪽에는 방기리 취락 유적이 발굴됐다. 1996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이 주관한 발굴조사로 청동기시대 집자리 49동, 환호 1기 등 유구가 확인됐다. 반달돌칼, 돌도끼 등 석기와 토기들이 발견됐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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