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인문철학 강의 “숲에서 좋은 삶의 길을 묻다”

환경 / 이동고 기자 / 2019-10-16 23:43:10
울산환경교육센터 공동기획
▲ 김용규 여우숲 자연스러운삶연구소 대표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진 기질의 꼴에 대해 과감한 진단을 내리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세력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면서 우리 삶은 우주와 자연의 리듬을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숲 철학가이자, 오래된미래학교 교장이기도 한 여우숲 자연스러운삶연구소 김용규 대표의 강의가 있었다. 30대 젊은 CEO의 인생을 내려놓고 부러진 꿈을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는 김용규 대표, 자신의 책인 <숲에게 길을 묻다> 세상에 내놓은 그는 “숲은 늘 순간마다 삶의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그의 생태인문 철학 강의를 지면에 옮긴다.

일시적 환경대책은 환경을 더 악화
미세먼지가 문제라고 하면 정치인은 당장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해 미세먼지를 없애는 대책을 세워라”고 한다. 인공강우까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인공강우는 비행기를 띄워야 하고 연료로 벙커C유를 써야 한다. 벙커C유는 땅 속에 있는 화석연료를 써야 하고 결과적으로 온실가스가 많아진다. 지구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일을 대책이라고 급히 만들어 발표한다.

내가 빠진 지구환경 문제
지금 문제를 지구환경 문제라 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인간의 문제라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환경문제’라고 하면 ‘나’가 빠지기에 ‘생태’라고 해야 한다. ‘인간의 문제’라고 하면 ‘나’가 빠지기에 ‘나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 인간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나로 인해 그렇다고 해야 한다.
요새 폭풍이 많이 올라오는데 왜 그럴까요? 수온이 올라가면 공기가 더워진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내려와 북태평양 고기압이 전선이 형성되는데 지금이면 일본열도 아래로 밀려나야 하지만 기온이 높으니 치고 올라온다. 그러면 근원적인 매개변수는 빙하의 사라짐 현상이다. 그러면 빙하가 사라지는 이유는?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 상승. 화석연료 사용, 대량 축산산업, 인구의 증가, 숲 훼손 등이다.
이것이 다 인간의 문제지만 모든 것이 인간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주의 리듬’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환경교육보다 깊이 있는 생태교육 필요
환경교육보다 더 깊이 있는 생태교육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환경문제라고 하면 문제는 외부에 있고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있다. ‘우리의 변화’라는 개념이 부족하기에 생태전문가라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생태교육에서는 ‘우주의 리듬’을 썼는데 우주의 리듬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 생성, 변화, 소멸 이것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고, 이 리듬을 따라 모든 생명이 존재한다.
아이를 낳아 본 사람들도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 그 우주의 리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창조와 생성, 생산 지금 우리는 이런 영역과 계속 벗어나 있다.

창조 없이 소비만 하는 현대인들
인문적인 영역으로 새로 내놓은 것이 있는가? 아니면 남이 만들어 놓은 것 평생 소개하다가 죽는가? 옛날 어른들은 어떻게 했나? 모든 것을 만들고 창조하는 생활이 인간은 기쁜 것이다. 우주 리듬은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기쁨’으로 프로그램화 해놨다. 남녀가 특정 나이가 되면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프로그램화해 놨다. 지금은 그 연령이 낮아져 초등 3학년 정도면 관심을 가진다.
우리 인간 문명은 플라스틱 같은 영원히 살아갈 물질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짚, 흙, 나무 등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들을 가지고 집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돌아가지 않을 것은 없다. 하지만 너무 늦게 돌아가는 거다. 짧은 시간 리듬을 타는 생명체들이 환경호르몬의 문제 등 감당을 못 하는 것이다. 인류역사가 농약이나 화장품 경험해 본 것이, 우리 인간 DNA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생리천을 사용했는데 누나 세대부터 생리대를 쓰면서 우리 몸이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어마어마한 생리통을 겪고 있다.

우주의 리듬이 갖는 양면성
우주의 리듬이라는 것은 항상 양면을 갖고 있다.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선이 있으면 악이 있다. 반대 극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젊고 늙음이 항상 같이 있다. 두 살은 한 살보다 늙은 것이다. 우리 몸 속 세포는 매일 생기고 매일 죽는다. 우리 몸의 전체 세포가 한 달이면 다 죽고 갱신된다. 이러한 우주의 리듬 속에 죽지 못하는 것들이 대기나 물이나 땅 속에 살아남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먹는 물은 다 시체의 물이다. 나무의 물만 먹는 것이 아니다. 공룡의 물, 하마의 물이 여기 있다. 원효의 몸을 구성했던 물이 있다. 지금의 물은 죽음을 먹고 만들어진 물이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먹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생성은 소멸과 죽음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는 진리를 깨친 것이다. 당신은 좌인가 우인가 묻는 사람들이 있다. 부딪치는 것을 떼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로는 좌이고 때로 우이다. 좌도 우도 아니라고 하면 이미 벌써 정치 스펙트럼으로 보면 우 쪽이다.

자연 생태, 사람 생태
자연환경이 아니라 생태라고 했을 때 ‘태’자가 ‘꼴 태’이고, 꼴은 바로 ‘꼬라지’다. 예를 들면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의 서로 차이나는 것을 설명해 봐라 하면 그 꼬라지(생김새)가 선수유나무는 잎이 마주나기, 거치 모양 다르다고 한다. 틀이 다르다. 이는 각 지방 사람들 기질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충청도 사람 기질
충북사람들은 흔히 ‘느리다’. ‘양반이다’이라 하지만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 진짜 속을 잘 모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신라군, 백제군, 인민군, 부역자들을 겪어서 말을 하면 다친다는 것을 안다. 충북은 백두대간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준령에 있다. 중앙길의 통로다. 내 고향은 70여 명 마을사람들이 살던 마을인데 국군, 인민군 번갈아 있었던 경험이 너는 어느 편이냐는 강요당한 경험이 있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전에 마을공동체 강의를 했는데 칠순이 넘는 마을 리더가 먼저 한 이야기에 맞다고 하고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도 맞다고 한다. 신라군이 백제군이 인민군이 국군이 번갈아 들어오면서 권력은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고 피해만 본 사람들이니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충청도 사람들 단적인 예가 서로 언쟁이 붙으면 자기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법이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 봐유”가 된다. 그 모호함이 ‘됐시유~’ ‘갠쟎아유~’이라는 말로 드러나는데 이는 ‘됐다’는 정중한 거절과 ‘괜찮다’는 만족과는 다르다.

경상도 사람 기질
이에 비해 경상도 사람들은 ‘빠르다’, ‘거칠다’, 금세 언니 오빠라고 부르고 ‘정이 많다’, ‘속이 다 보인다’, ‘소리가 크다’ 등등 특징이 있다. 경상도는 언제나 잃어버린 10년 빼고 권력을 놓아 본 적이 없는 지역이다 보니 목소리가 크고 언니, 오빠만 잘 받들면 기득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지역특성을 반영한다.
군대를 다닐 때 ‘우리가 남이가’ 지휘관이 건배사를 하는데 ‘됐나?’하면 받아서 ‘됐다!’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 됐는지를 몰라서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저기 대답을 안 한 놈이 있다”고 하더라. 그걸 옆 사람이 참다못해 “고마 됐다 캐라”고 답변을 하더라. 파이팅이 넘치는 문화다.
정이 많다, 권력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문화, 동생은 형과 누나에게 잘 보이면 되는 문화다. 형이 술값을 안 내고 동생이 술값을 내면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는 듯이 생각하는 문화다. 환경을 놓고 태를 보려면 전체적 관계성, 순환성에서 바라봐야 정확히 보인다.

기득권 세력이 도태되는 이유
앞으로 시대를 이끌고 갈 지역은 영남인가 호남인가 묻고 내가 볼 때는 호남일 것이다 하자. “뭐라 카노? 나가자! 우리가 왜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노?”하고는 나가버리는 것이다. 나 같으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것이다. 영남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왜 공부 안 해도 가능하게 됐을까?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 열심히 해서 올라간 영남 출신들이 다 권력을 잡고 있다. 울산지역도 곳곳에 도로이고 도로 공사판이고 가족문화센터 만들고 경주에는 테니스 코트가 남아돌고 있다. 호남은 권력을 잡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장학회를 만들고 그 지역 기업인들이 후원하고 지역 도서관들은 ‘위대한 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인문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영남지역 인문학 강의는 작년부터 초대를 받고 있다. 7년 정도 호남지역을 돌아다니며 인문학 강의를 다녔더니 이제 새로운 사람을 초대해 강의를 듣더라. 이 격차가 30년도 정도 날 것이다. 경상도는 아직 ‘윗대가리만 바꾸면 그 덕에 산다’는 이 꼴을 바꾸지 않으면 요원하다. 각자가 주인이 되는 꼴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강의에 질문하지 않는 것도 경상도 특징이다. 언짢은가? 언짢으면 막 질문해야 한다.

생극, 대극의 나
명리학은 사주를 밝히는 학문이다. 생극의 문제. 즉 무언가는 나를 살리고 무언가를 나를 죽인다. 무언가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무언가는 나를 억압한다. 이것은 아까 이야기한 대극의 핵심이다. 여러분은 하루를 살리는 힘과 죽이는 힘 속에 있다. 우리의 마음 역시 그렇게 생겨 먹었다. 내 속에 미투를 일으킬 만한 모습이 있나? 없나?  서울 80대 한 할머니는 그런 것도 없으면 송장이지 그게 사람이야 하더라. 내 속에 선과 악이 동시에 있다. 내 자식에 대한 정명신 교수가 가진 생각, 조국의 모습이 있나? 없나? 내 속에 홍준표 있나? 없나? 사람은 그 대극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는 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실증주의 전통을 세웠다. 경험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한 마디에 세상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생각할 때 존재한다는 것이다. 뉴튼의 기계론적인 세계관, 제1, 2 법칙의 발견과 철학이 결합하면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나왔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도 있지만 욕망하고 있는 나가 보이나? 위대한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알아챈다.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 좋은 삶은 ‘생각에 빠져있는 나’가 아니라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어려운 말이다. “참을 인을 세 번 쓰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바로 “화가 나 있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다. 데카르트가 보지 못한 것은 바로 ‘그걸 바라보는 나’이다. 영적 역역에서는 ‘침묵의 목격자’라고 한다. 침묵의 목격자가 없으면 나는 끊임없이 휘둘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관찰하는 더 큰 나’를 둘 때 내 안에 있는 나를 억누르고 악으로 치부되는 감정은 다스려질 수 있다.

인문이라는 무늬, 나이테
인문이라고 할 때 문은 무늬 문자로 썼다. 쉽게 설명하면 무늬이고 나이테다. 여러분의 나이테는 무엇인가? 사람의 나이? 그것 때문에 씁쓸하다. 나이가 들어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았는데 그걸 고백하지 못한다. 인정하고 복지혜택을 받으면 되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걸 하지 못한다. 부양가족이 있으면 자식이 당연히 부양한다고 봐서 복지혜택을 못 받는데 그럴 때는 가족관계해체사유서를 쓰면 된다. 유교적 질서 속에 두고 있기 때문에 유학의 무늬로 우리를 각인한 것이 우리이고 자식과 떨어진다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이고 무늬다.
여러분의 자식을 잘못 바라본다. 새가 자식을 계속 데리고 있나? 소나무는 솔방울을 계속 붙잡고 있나? 떠나보내야 한다.

중앙과 경계
중앙에 앉는 사람이 좋은 듯하지만 경계를 선택한 사람도 있다. 식물 생태로 보면 찔레, 국수나무, 쥐똥나무, 개나리 등 경계에 사는 나무들은 약하디 약하다. 무덤을 쓰는 자리들, 산과 들을 연결하는 임연부라는 공간은 퇴적물, 유기물이 계속 쌓이는 자리다. 맹금류들은 깊은 산 깊은 곳에 산다. 두꺼비, 뱀들은 겨울 되면 숲으로 돌아간다. 오고가는 자리에 먹이가 제일 많다. 살모사는 짐승들이 많이 오가는 자리에 산다. 한 마디로 저자거리다. 까마귀, 까치나 고라니가 이런 곳에 산다. 우리나라는 중앙 중심이고 로컬을 인정하지 않아 많은 문제가 생긴다.

항상성과 리듬
숲과 개괄지 중 어디가 온도가 높을까? 숲은 겨울에도 바닥은 얼지 않는다. 숲이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고 얼어도 약하게 언다. 토양의 동결선은 30센티미터에서 1미터까지 내려가는데 제주도에는 없다. 지구온난화는 사실 겨울에 더 춥다. 더 춥고 더 더워진다. 지구온난화의 리듬이 그렇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항상성을 가지려고 한다. 사람 혈압은 80~150식으로 오가는데 양파즙을 많이 먹으면 혈압이 떨어진다. 하지만 하나를 잡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리듬 위에서 사는 것이 좋다. 정맥과 동맥이 같이 작동하는 것처럼 리듬을 타고 살아야 한다. 초승달 그믐달의 변화처럼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불순이 오면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이다. 그 리듬 속에서 사는 삶이 건강한 삶이다. 생리주기, 리듬 등등.

라이프 온 리듬(Life on rhythm)
바닷물도 3.5의 염도로 항상성이 있다. 다행이 지구는 대기권이 있어서 밤낮의 기온차가 많이 안 된다. 다른 항성은 항상성이 없기에 문제가 된다. 지구 항상성을 받치는 대기권에 구멍이 난 것이 오존의 파괴다. 탄소가 저장된 화석연료를 많이 쓰게 됐다. 모든 질서는 항상성이 있고 되먹임(피드 백)이 있는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눈의 감지나 뇌 자극 등 어떤 형태로 되든 되돌아온다. 공격성을 가지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을 매개로 일어나고 그것에 또한 되먹임이 있다. 모든 것에는 생과 극이 있음을 알고 신중해야 한다. 전문가로서 생태교육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리듬 위에서 살아가는 ‘라이프 온 리듬’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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