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 비치는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오피니언 /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2020-09-16 00:00:12
기억과 기록

창 너머 비치는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 가을은 이렇게 스며들 듯 우리 곁으로 오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여파는 여전해 이 작은 계절의 변화를 기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투명한 미래는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게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러합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면 그저 손을 놓고 지내게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다 많은 것을 놓쳐버리게 되죠.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말입니다. 올 2월부터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별 고민 없이 했던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시간이 왔고, 이것이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말엔 언양읍과 삼남면 일대로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2020 울산저널 시민학교’ 울산 선사시대 기행에 강사로 참여한 것이죠. 언양읍성 북문에서 일행을 만났습니다. 십여 명이 모였습니다. 기행하기에 딱 좋은 인원입니다. 


우리가 만난 첫 문화유산은 언양지석묘로 고인돌입니다. 지석묘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영남지역에서 가장 큰 지석묘로 잘 알려져 있죠. 처음 언양지석묘를 만났던 때가 기억납니다. 도로 옆 논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던 모습 말입니다. 벌써 삼십 년도 더 됐나 봅니다. 언양지석묘는 예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에게 ‘용바우’로 불렸답니다. 오랜 시간 이 땅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논 가운데 있는 커다란 바위는 농사에 필요한 비를 내리게 하는 영험한 힘을 가졌다고 믿어졌나 봅니다. 


언양지석묘를 지나 언양향교 정문인 입덕문(入德文) 앞을 지키고 있는 교동리 고인돌을 만나러 갑니다. 몇 천 년도 더 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고 판판한 돌로 지하 방을 만든 뒤 죽은 이의 주검을 넣고 뚜껑을 덮은 뒤 커다란 덮개돌을 얹었겠지요.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다른 세상에서의 삶을 안전하게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겁니다. 그러나 삶은 삶으로 이어져 있고, 조상의 무덤은 후손들을 이어주는 끈이 되었죠. 무덤 앞에서 조상을 기리고 현세의 복을 비는 의식행위는 계속됐고, 의식행위는 무덤 덮개돌에 작은 구멍으로 남았습니다. 교동리 지석묘에는 20여 개의 바위구멍이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누군가가 그 위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현재 비석은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았습니다.


방기리 알바위를 가기 전에 상천리 통도사국장생석표에 들릅니다. ‘장생’은 장승의 다른 말입니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 말입니다. 장승은 보통 나무로 만들어졌든 돌로 만들어졌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소 괴기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통도사국장생석표는 비석 모양입니다. 마을 앞 장승이 마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경계 표식이듯 통도사국장생석표도 통도사의 영역을 알리는 경계석입니다. 통도사 경계에 7개의 국장생석표가 있었는데, 1085년 고려 정부가 새로 12개를 세우라고 해서 세웠다는군요. 상천리 통도사국장생석표는 그중 하나입니다. 이곳까지 통도사 소유의 땅이었다는 것이죠. 고려시대 통도사의 땅이 얼마나 넓었는지, 양산지역의 불교세력과 중앙권력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문화유산이 통도사국장생석표입니다(양산 백록리에는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의 통도사국장생석표보다 더 잘 보존된 국장생석표가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일정은 ‘방기리 알바위’입니다. 마을 안을 흐르는 개천가에 얕은 소나무 숲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가득합니다. 바위에는 알 모양의 구멍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바위구멍은 선으로 연결돼 있기도 합니다. 지석묘 덮개돌에 바위구멍이 새겨졌듯이 이곳의 바위구멍도 비슷한 이유에서 새겨졌겠죠. 바위에 구멍을 내어 바위가 가진 신비한 힘을 나눠가지겠다는 인간의 염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국의 산천에 새겨졌거나 새겨지고 있는 무수한 이름들이 그 증거가 아닐까요? 혹 여행길에 바윗돌을 문질러 돌이 붙는지 시도해 본 경험은 없나요? 재미를 핑계 삼아 말입니다. 일상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의식행위가 무의식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삶과 삶은 시간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흩날리는 빗줄기가 일정을 끝내라고 재촉했죠. 그렇게 울산 언양읍과 삼남면 일대의 선사시대 유적을 답사하는 기행이 마무리됐습니다. 파아란 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 속에서 수다를 떨며 지역을 답사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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