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눈을 찌른 자, 자신의 혀를 자른 자 <오이디푸스 왕>

문화 /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2021-11-22 08:46:04
밥TV 지상중계

인문숲 시즌3-그리스 비극

▲ 조미정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왼쪽)와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오른쪽)


오이디푸스는 어떤 사람인가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오이디푸스는 어떤 인물인가?


조미정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추진력 있고 책임감을 보여주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측정하고 재는 자, 추론하고 판단하는 자, 역병을 물리치는 의사, 범인을 쫓는 판검사,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에 저항하는 인물로 기원전 5세기의 소피스트를 대변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역병의 역할

최미선=비극은 역병이 돌면서 시작된다. 역병을 일으킨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처단해야만 역병이 사라진다고 하고 있다. 역병을 일으킨 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이 비극의 주요 모티브인데 여기서 역병의 역할, 역병이 담당하는 전환의 역할을 설명해 달라.


조미정=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구한 영웅이었다. 어느 순간 도시에 역병이 돌고, 이 역병을 물리치려면 선왕 라이오스 살해범을 찾아서 처단해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진다. 오이디푸스는 적극적으로 그 범인을 쫓는다. 그런데 결국은 그 범인이 자신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장님이 돼서 테바이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된다.


고대 아테네에는 파르마코스라는 의식이 있었다. 파르마코스는 범죄자나 병자나 불구자 등을 가두는 수용소를 지칭한다. 새해가 되면 파르마코스에서 무작위로 한 사람을 선정해서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최미선=일종의 희생양이다.


조미정=그렇다. 그럼으로 해서 오염된 것, 부정한 것, 나쁜 것으로부터 공동체가 정화된다고 믿었던 거다. 


최미선=오이디푸스가 축출되는 과정과 똑같다.


조미정=이 과정은 동물을 바치던 희생제보다는 조금 더 앞선 원시적 형태의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발전해서는 비극 작품에서 영웅적인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비극 공연도 하나의 제의적인 기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행동하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

최미선=오이디푸스는 왕위를 물려받은 자가 아니다. 자기 힘으로 왕위를 획득한 자다. 행동하는 인간, 오이디푸스에게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조미정=독립선언인 셈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또는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서 코린토스에서 테바이로 길을 떠난다. 또 자신의 과오가 드러난 후에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운명의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 그 모든 것을 책임지는 모습에서 독립선언으로도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에 대한 평가

최미선=오이디푸스는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라서 결론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짜릿짜릿하다. 추리소설의 원류라고도 얘기하는데 이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조미정=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비극이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플롯의 중요성을 아리스트텔레스가 강조하고 있는데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다. 1500년 전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굉장히 정교한 플롯으로 돼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니체도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는,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긍정하는, 숭고하고 용기 있는 고귀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최미선=이 오이디푸스 비극은 장님이라는 모티브가 굉장히 중요하다. 첫 번째 이 모티브를 가져오는 사람이 테이레시아스라는 장님 예언가다. 테이레시아스는 어떤 인물인가?


조미정=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다. 신탁이라고 하는데 신의 질서나 전통적 세계관과 지혜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무의식의 세계라고도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세계이지만 굉장히 영향을 받는 세계다. 


오이디푸스로 대변되는 새로운 질서 또는 진보적인 지식, 의식적 영역과 대치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미선=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가 눈이 먼 것을 굉장히 비웃는다. 그런데 결국은 자신도 자기 눈을 찔러서 장님이 되고 만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데 ‘본다는 것’, 눈, 이것이 의미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조미정=‘본다’라는 것은 ‘안다’라는 것 아닐까? 내가 의식한다는 것.


최미선=특히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성을 크게 부여하는 사회였다. 


조미정=겉으로 보이는 의식적인 세계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세계라든지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세계 안의 어떤 힘, 이런 걸 의식하지 못하는 걸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찔러서 장님이 된다. 이 과정에서 테이레시아스를 비웃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성찰을 얻게 된다. 빛을 포기함으로써 정신적인 지혜를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자기인식이 확장되고 통합되고 성숙되는 모습으로 간다고 볼 수 있다. 


최미선=테이레시아스가 무의식의 영역을 상징한다면 오이디푸스는 의식의 영역을 상징한다고 했다. 눈을 찔러서 장님이 된다는 설정이 그 두 가지를 통합하는 설정으로 보인다.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진 것 같다.

오이디푸스의 의미

최미선=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조미정=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부은 발, 절름발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발에 쇠꼬챙이를 채운 채 숲속에 버려진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데 그 이후로 발의 상처 때문에 절름발이가 됐다. 절름발이라는 이름이 갖는 다른 상징을 생각해 보면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구한 영웅의 모습이지만 세계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이성이나 의식적인 부분만 보고, 확신에 차 있는, 오만에 차 있는 모습, 즉 균형 잡히지 않은 절름발이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최미선=프로이트에 의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굉장히 유명해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조미정=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따온 정신분석학적 용어인데 아버지와 경쟁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보통 어린아이들이 만 3세에서 5세 사이에 이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는 거대한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열등감과 좌절감을 갖게 된다. 이런 갈등이 결국은 공포감으로 온다.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보복하지 않을까?’하는 공포를 ‘거세공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타협한다. 아버지랑 경쟁해서는 게임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아버지 존재를 수용하고 타협하면서 ‘아버지처럼 멋진 사람이 돼야지’하는 남성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초자아, 양심, 도덕이 발달하게 된다.

오이디푸스와 올드보이

최미선=여전히 불편하지만 현대인에게 잘 읽히고 회자되기도 하는 작품이다. 현대인에게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읽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조미정=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게 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삶의 고통은 계속되고 일어날 일은 계속 일어나게 돼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비극의 운명의 피해자인가? 오이디푸스를 보면 결국은 피해자로 남는 게 아니라 그 무게를 감당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또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슬프지만 담담하게 살아가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이디푸스는 여러 가지 영화나 연극으로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다.


최미선=대표적으로 어떤 작품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조미정=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을 가장 비슷하게 따온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다.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오대수다. 오이디푸스와 어감이 비슷하지 않나? 오대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 실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희생이 된다. 그 실수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되는데 오이디푸스 왕하고 굉장히 비슷한 플롯이라고 볼 수 있다.


최미선=결국 오대수도 자기 혀를 잘라버린다.


조미정=그렇다.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찔러서 장님이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최미선=오대수가 자기 혀를 자른 행위는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른 행위처럼 어떤 전환의 행위가 될 수 있겠다.


조미정=그렇다. 자신의 과오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런 행동을 하면서 자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오이디푸스는?

최미선=이 작품은 선생님에게는 어떤 작품인가?


조미정=한 마디로 비극이다. 너무 끔찍하고, 삶이란 무엇인가, 굉장히 처절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계속 책을 읽어오면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인간에 자신의 운명을 창조해가는 그런 줄거리도 생각이 났다. 또 자기기만에 함몰된 인간상을 얘기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의 이야기도 다시 떠올리게 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도 생각난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그 영화에서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어떤 선택을 바꿈으로써 현재가 바뀌고 미래가 바뀌는 이런 줄거리다. 처음엔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오이디푸스>를 다시 읽으면서 저런 삶의 고통에 접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현실을 어떻게 또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선택의 자유의지라고도 설명한다.

정리=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