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담론 4: 현실 미러링 -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문화 /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2021-11-23 00:00:32

<헝거게임>은 2008년 세 권의 책(수잔 콜린스)으로 출간된 뒤 2012~2015년 사이 네 편의 영화로 잇따라 개봉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활자를 보고 이미지를 그려낸 독자들의 상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영화 <헝거게임>은 상상의 합집합 그 이상을 구현해냈다. 해외에서 흥행하고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주목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 공식 포스터

 

이 영화에 대한 연구나 담론은 페미니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2010년 전후 전 지구적 화두는 페미니즘이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디즈니마저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한 시기다. <헝거게임>은 페미니즘을 넘어서 자본주의시장체제의 문제점을 응축시켜 잘 다루고 있다.


권력은 폭정(暴政)에 대항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반란의 대가인 ‘헝거게임’을 법제화해 이들을 통제한다. 통일국가 판엠의 수도 캐피톨 아래 12개로 나뉜 각 구역은 매년 만 12~18세의 남녀 청소년들을 선발해 배틀로열 방식으로 최후의 생존자 한 명을 뽑는다.


캐피톨의 기득권층은 분장, 의상, 삶의 형태가 극단적이다. 얼굴, 머리, 전신의 문신과 염색, 삶의 모든 시스템은 상상력이 실체화된 첨단기술의 집합체다. 이에 반해 민중의 삶은 비루함의 극치다. 무기력한 노인은 나무껍질을 까먹고, 위험을 무릅쓰고 잡아 온 다람쥐 한 마리가 빵 한 쪽과 물물교환된다. 노동은 각 구역 주민들이 전담하고 캐피톨은 그저 향락한다. 누군가 한국의 재벌은 대중을 ‘말하는 원숭이’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캐피톨이 각 구역 주민들을 그렇게 본다. 목숨을 건 헝거게임 참가자들을 불쌍한 강아지에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듯이 한다.

 

▲ 캐피톨 사람

 

주인공 캣니스는 금지된 영역인 숲에서 사냥하는 소녀 가장이다. 고압전류가 흐른다는 팻말만으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용기 있는 그녀만이 고기를 취한다. 발각되면 잔혹한 처벌이 있어도 당장의 굶주림이 더 절실하다. 캐피톨이 그녀에 환호할 때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그녀를 위험분자로 인식한다. 그는 헝거게임의 목적을 두려움보다 더 강한 희망으로 전제하고, 조작되고 희박한 확률에 미천한 희망을 갖게 함으로써 절대다수를 지배한다. 그에게 헝거게임은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규정한 범위 안에서 절대다수의 피지배층은 무기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권력자들은 유희하되 피지배층은 종속하고 굴복하며 공포와 고통을 느껴야 한다. 아이들을 볼모로 한 나이 든 이들의 무기력감, 비겁함, 죄책감은 권력자들에게 가장 큰 무기다. 같은 구역의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남더라도 결국 한쪽이 배신해야 하는 게임의 규칙은 대통령에게 목적지향적이고 각 구역의 주민들에겐 지극히 잔인하다. 캣니스의 가족에 대한 애착은 어떤 두려움보다 앞선다. 사랑에 기반한 생존의지는 복종, 두려움, 본능, 기회주의 등 어떤 동기보다 강하다. 따라서 용기 있는 캣니스는 체제에 대한 쿠데타의 불씨이므로 처단 대상이 된다.


이 나쁜 게임의 규칙에서 동생을 대신해 지원하는 것이 캣니스의 첫 번째 규칙 위반이다. 헝거게임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로 수렴돼야지 감동적인 희생에 대한 공감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불타는 의상과, 기득권층에 화살을 조준하는 것이 두 번째와 세 번째 규칙 위반이다. 불꽃이란 메타포와 반항의 의미는 절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동조의 손동작은 판엠에서 금기지만 캣니스는 이 행위를 통해 각 구역의 주민들로부터 반항심을 유도해낸다.

 

▲ 동조를 유도하는 캣니스의 손짓

 

부조리한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는 캣니스를 통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한다.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N포세대의 절망과 상통한다. 게임 참여 추첨통에 이름을 많이 넣을수록 식량을 조금 더 배급받는데, 그녀의 연인인 게일은 42개나 넣는다. 목숨을 담보로 생존 투쟁하는 대기업 하청 문제와 연결된다. 주최 측은 어린 루가 죽임을 당했을 때 들꽃으로 추모하는 그녀에 대한 감동 이슈를 남녀 간 로맨스로 덮어버린다. 정치권이나 대기업 관련한 언론 메커니즘과 같은 방식이다. 헝거게임의 메시지들로 우리 현실을 직시해보면 바른 사람이 바른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다만 그렇게 믿고 있고 있거나 그러고 싶을 뿐.


이후 2, 3, 4편은 캣니스와 그녀를 죽여 없애려는 대통령 간의 극적 전개로 이어진다. 결국 그녀를 통해 각 구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음모론인 줄 알았던 제13구역의 반란군 기지에서 캣니스가 선봉에 서면서 민중의 승리로 이끈다. 서사구조부터 섬세한 장치까지 소설과 영화 <헝거게임>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강조되는 정치의 계절에 꼭 확인할 필요가 있는 콘텐츠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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