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세상의 정훈씨, 피곤한 우리 집 정훈이

오피니언 / 신정훈 화담하다 플랜츠 실장 / 2021-11-22 08:53:33
청년 공감

밖에서 사람을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부터 구면이지만 아직 낯선 이도 있다.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고개를 숙인다. 나를 소개하고 안부를 물으며 미소 짓는다. 어색한 침묵이 생길까 두려워 말을 이어가고 웃음으로 민망함을 달래본다. 나는 그렇게 밖에서 만난 사람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하다. 실례도 실수도 하기 싫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니까.

집에서 사람을 만났다.


친절한 하루를 마치고 만난 사람. 매일 그리고 당연히 만나는 사람이다. 다녀왔다는 가벼운 인사를 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간다. 친절한 나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내 모습으로 쉬고 싶다. 그때 나를 부르는 부모님의 목소리. 노크도 없이 문을 여는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아침에 말도 없이 나간 아들이자 방금까지 짜증을 낸 아들에게 엄마는 안부를 묻는다. 저녁은 먹었는지 아침에 어딜 그렇게 급하게 나갔는지. 코앞까지 다가온 엄마를 외면하고 메신저 속 지인에게 답장을 보낸다. 친절한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나는 친절한 사람.


오늘 만난 사람들과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주고받는다.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주는 건 당연. 열심히 하루를 보낸 느낌이 들고 인맥이 좋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 같은 느낌. 뿌듯한 하루지만 몸과 마음은 지쳤다. 내 마음을 숨겨야 하고 싫어도 좋은 척해야 한다. 남들보다 한발 먼저 일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기억했다가 주문하는 센스도 발휘해야 한다. 고되지만 이 뿌듯한 느낌이 좋다. 집에 왔으니 이제 친절한 나는 진짜 휴식 시간. 따뜻한 물에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통에 담는다. 통에만 잘 담아두면 엄마가 알아서 해주니까 걱정 없다. 빨래를 담고 방으로 향하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온다. 날 추워져서 이불 바꿔놨다고 전기장판도 다시 설치해뒀다고. 아직 겨울 이불은 답답한데 왜 바꿨냐고. 나는 소리쳤다. 바꿔 달라고 당장. 왜 마음대로 바꾸냐고 나는 짜증을 냈다. 보다 못한 아빠가 나를 말린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말없이 이불을 다시 바꾼다.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와 내 불평으로 무거워진 공기. 엄마는 두꺼운 겨울 이불에 무거운 공기를 업은 채 방을 나간다.

나는 친절한 사람일까.


다시 돌아온 이불을 덮고 누웠다. 인터넷으로 세상 이야기를 구경한다. 그러다 발견한 이야기. 부모님과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이야기한다. 앞으로 부모님이 30년을 더 사시는가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처럼 지낸다면 진짜 남은 시간은 두 달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 뚱딴지같은 셈법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화면을 넘겼다. 5분 뒤 나는 그 화면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부모님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두 달이라고 한다. 이마저도 불확실한 시간. 더 가슴 아픈 건 부모님은 이 남은 시간이 빠르게 줄어듦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는 것. 그렇기에 잠시라도 우리와 더 보내고 싶어 하신다고. 하지만 폐가 될까 봐 자식이 부담일까 봐 애써 그 마음을 숨기신다는 점. 그러다 너무 답답하고 섭섭할 때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의 방문을 친절히 그리고 천천히 열고 오신다고 한다. 긴 글의 끝에 닿았을 때 내 뺨에도 눈물이 닿았다. 흐르는 눈물이 혹시나 방문을 타고 흘러 부모님께 닿을까 싶어 이불에 고개를 묻었다. 나는 너무도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나를 나보다 사랑하고 누구보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만.

나는 하루에 연락을 얼마나 할까.


일상을 나누는 채팅부터 낯선 사람의 게시글에 기록을 남기는 순간까지. 나는 사회의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친절하게 깍듯하게. 그런데 가족에게는 얼마나 연락을 하고 얼마나 걱정을 할까. 일이 아닌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연락을. 지난 한 달의 시간을 합쳐도 나는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휴대전화를 하루에 사용하는 시간이 6시간이 넘는데 한 달에 고작 두 시간이라니. 정말 두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부모님을 당장 만나러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두 시간밖에 서로의 삶이 남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웬 영화냐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하시면서도 내가 준비한 시간을 너무도 즐겁게 함께해주신 부모님. 우리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다시 돌아갈지라도.


눈물이 마르니 나는 다시 불친절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항상 하던 행동과 말투. 부모님은 오늘도 상처를 입으셨겠지. 달라진 것이라면 사소하고 짧게라도 내 일상을 이야기한다는 점과 부모님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것. 쑥스러워하시더니 이제 포즈도 잡으신다. 한 장 그리고 한 끼. 나는 부모님과의 시간을 더욱 기록하려 애쓰고 있다. 한 달 중 하루라도 친절한 아들이 되려고 달력에 기록까지 했다. 지금 우리의 뜨거운 열정, 빛나는 청춘을 만들어준 부모님께. 지금 바로 메시지 한 통 했으면 한다. ‘맛집 있는데 포장해갈까?’


신정훈 화담하다 플랜츠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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