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오피니언 / 정진익 농부 / 2021-11-22 00:00:05
자작나무

추위가 점점 더해가는 계절. 겨울을 준비하는 김장을 하게 되는 시기다. 김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배추, 무, 소금, 고추다. 이중 가장 먼저 준비하는 재료인 고추에 대해 알아보자.


고추는 벼와 달리 우리나라 날씨와 참 맞지 않는 식물이다. 그럼 왜 많이 재배하는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금씩 보급되다가 약 100년 만에 우리나라 전역으로 퍼져 김치와 풋고추, 고춧잎나물 등으로 버릴 것 없이 애용한 열매채소다. 좋아하는 그만큼 날씨와 병충해에 맞서 농민들의 땀이 서려 있는 작물이다. 


고추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가 된 것은 그만큼 고추의 뛰어난 점이 있어서다. 가지과로 가지와는 사촌 간이다. 캡사이신이라는 물질로 매운맛을 내며 먹고 나면 엔돌핀이 분비돼 사람들이 좋아한다. 고추에는 비타민A도 많지만 비타민C가 많다. 비타민C는 고추를 연구하다가 고추에서 분리한 물질이었다.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와 달리 여름에 덥기는 해도 습도가 높고 우기가 오는 날씨가 아니어서 고추는 고온이기는 해도 다습한 기후에는 잘 자라지 않는다. 때문에 뿌리의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고랑을 깊이 파 물빠짐이 좋게 해 습기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탄저병이라는 고추에 치명적인 곰팡이병이 있는데 습도가 원인이다. 잦은 비가 오는 해는 탄저병이 극심해서 한 번 걸리면 밭의 고추 전부가 말라 죽는다. 


고추에는 약간의 단맛이 있는데 벌레들이 좋아하고 잎에는 진딧물이 많이 낀다. 그래서 고추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농작물이다. 요즈음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습도와 벌레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보온만 생각하는데 비와 습기로부터도 보호받아 과일 재배에도 많이 적용시키고 있다. 포도는 거의 시설재배를 하고 복숭아, 채리, 사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놀부전>에서 놀부가 온갖 행패를 부리는 것 중 하나가 고추밭에 말 달리기라는 것이 나온다. 그만큼 고추는 살짝만 부딪혀도 잘 부러진다. 이렇게 힘들게 키우지만 우리 국민이 워낙 좋아하는 열매채소여서 재배 기술도 발달하고 점점 더 품질이 향상되고 있다.


고추 모가 자라서 밭에 이식하는 데는 70일~90일 정도 걸리므로 거의 2월경부터 고추재배가 시작된다. 늦서리가 안 내리는 4월 전후에 모종을 심게 된다. 붉은고추의 수확은 7월 초부터 보통 하게 된다. 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9월에 접어들어 선선해지면 거의 끝물이 된다.


고추는 처음 열리는 열매가 가장 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아진다. 대신 열리는 고추가 더 많이 열린다. 고추를 따서 말리면 잘 마르지 않는다. 고추도 홍시처럼 익어 흐물흐물해지고 나서 마르게 되는데 홍시 상태의 고추를 만지면 물러서 터지거나 으깨진다. 햇빛에 말린 고추, 일명 태양초는 그래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름에 소나기라도 내리면 비설거지 중 첫 번째가 고추였다. 땡볕에 거의 한 달 걸린다. 그만큼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마라도 올라치면 아랫목에 불을 때서 말려야 했다. 고추와 같이 잠을 자야 했다. 


고추로 유명한 영양에 가보면 지금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탑 같기도 하고 굴뚝 같기도 한 고추 말리는 탑이 남아 있다. 밑에서 불을 때고 3층 높이의 탑에 여러 칸을 만들어 칸칸이 고추를 넣어 말렸다. 지금은 전기 건조기가 나와 하루면 다 말린다. 그래서 요즈음은 태양초가 드물다. 그래도 반건조 오징어처럼 반건조 고추를 햇빛에 말리는 방법으로 태양초를 만들고 있다. 물론 정말 옛날처럼 만드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태양초의 장점을 살려 나가는 것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 말린 고추를 고춧가루로 만드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절구통에 넣고 고추를 빻았는데 마른 고추는 질겨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 번 넣고 찧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마치 마른 낙엽을 넣고 찧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 어머니들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는 알 수 있다. 절구통은 울산에서는 도구통이라 하는데 절구를 도구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1년에 걸쳐 힘들게 만든 고춧가루가 드디어 김장김치에 들어가게 되고 고추장에 들어가게 됐다. 예전에는 많이 사용하지는 못해서 김치가 지금보다는 빨갛지 못했다. 고추장도 조그만 항아리에 담고 아껴 먹었다. 


우리나라의 유별난 고추 사랑은 힘든 노동을 감수하고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열매채소가 되었다. 김치를 드시면서 한 번쯤 농민의 노고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정진익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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