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자라서

오피니언 /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2021-11-22 08:54:31
기억과 기록

모든 동물은 행동으로 새끼를 가르치는데, 인간만이 말로 자식들을 가르친단다. 얼핏 보면 말만으로도 가르칠 수 있으니 수월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인간이란 종이 영위하는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다른 종보다 배우고 익혀야 할 일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많은 것을 말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말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접 경험해야만 내 몸에 스며드는 것, 우리는 그런 것들을 문화라고 부른다. 울산문화재단의 시민 기획프로그램에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그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울산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울산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소개하고, 그곳에서 특별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런 경험으로 채워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더 새롭고 흥미로운 도시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많은 가족이 함께하지 못했지만, 잠시나마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깨달은 점은 ‘얼마나 신나게 놀았나’가 아이들이 보낸 그 날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답사 장소는 언양이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놀기 딱 좋은 곳이었다. 언양 지석묘 옆에는 놀이터가, 오영수 문학관에는 도서관이, 언양읍성에는 황금벌판과 차가 다니지 않는 안전한 논길과 골목길이 있었다. 

 


들르는 곳마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 한참을 설명했지만, 나조차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지석묘에서 걸음으로 크기를 재던 모습, 오영수 문학관의 2층 도서관에서 꺼내어 본 책, 아이들이 열중해서 그렸던 그림, 언양읍성의 무너진 돌담을 따라 걸으며 느끼던 바람, 읍성 안 논길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깔깔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또렷이 기억난다. 

 


지금은 지석묘가 무엇인지, 오영수 선생님이 누구인지, 언양읍성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관심이 아예 없지만, 그곳에서 보낸 하루가 즐겁게 기억된다면 언제고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다음엔 더 알고 싶은 게 점점 더 많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그다음이 있을 테고 말이다.


울산 곳곳을 누비며 신나는 기억들로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운 아이들이 자라서 만들어갈 우리 도시의 미래가 궁금하다. 적어도 소중한 무언가가 쉽게 사라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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