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삼국지>란

문화 /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2021-11-23 00:00:06
아빠 일기

아이에게 읽혔던 삼국지는 내 호기심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잠들 시간이 훌쩍 넘어버린 시각, 아빠인 난 삼국지 읽기를 멈춰야만 했다. 아이는 읽기로 한 분량이 적다고 느낄 만큼 매번 아쉬워했다. 다음 장면이 늘 궁금해서 읽어달라고 내게 애원했지만, 잠을 청하라는 엄마의 눈짓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랑 함께 읽었던 나 역시 아이만큼이나 매번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건의 결말을 남겨두고 잠시 끊어야 하는 이 불합리한 처사는 아이나 나나 같은 마음으로 다가왔다.


현재 아이와 <삼국지> 한 질, 스무 권 중 드디어 마지막 책을 읽고 있다. 놀랍다. 이 <삼국지>를 지금까지 읽을 수 있었던 동력은 아이의 호기심을 넘어 나의 호기심의 발로였다.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은 대상에 대한 매력과 상상력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특히 영웅은 늘 매력적인 대상이다. 삼국지에 나타난 영웅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과 다소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인물 중에 우리가 닮고 싶은 영웅을 찾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는 법이다. 영웅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인물이다. 기억에 남으려면 역전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전쟁은 그러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반면 난세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한낱 ‘건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를 읽는 주요 3국이 책의 원류인 중국과 더불어 한국, 일본이란다. 이들 국가별로 선호하는 영웅이 다르다고 한다.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자룡’, 그리고 한국은 ‘제갈량’이다. 중국에 가면 거대한 관우상이 있다. 관우에게서 느껴지는 기품과 아우라를 그들은 좋아한다.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로서 결혼을 거부하고 유비에게 충심을 다했던 조자룡에게 눈길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한국은 유교적 전통과 교육에 대한 남다른 사고로 보아 제갈량의 지적인 면에 매료됐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기행과 업적은 <삼국지>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들 셋은 모두 유비의 사람이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의 원제목이 <삼국지연의>인데 중국의 한 나라를 정통으로 보는 시각에서 쓰였다고 한다.


전쟁과 전투는 <삼국지>의 주요 사건이다. 권력이 하나로 집중되는 시대에 그 권력을 잡기 위한 전쟁은 수도 없이 벌어진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누구나 탐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필연이다. 한 사람의 권력과 영웅을 만들기 위해 (사실과 다를 순 있지만) 100만이 넘는 군사를 동원하기도 했다. 때론 100만이 넘는 군사가 몰살당하기도 했다. 철저하게 개인이 사라진 시대였다. 늘 강자만이 남았다. 전쟁 속에 가려진 약자와 백성들의 삶은 일부러 담아내지 않는 듯했다. 대의를 위해 소의가 희생돼야 하는 현실, 비견 지금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지금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쟁이 벌어지는 공간은 철저하게 힘에 의지한 세계다. <삼국지>는 그 힘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리적인 힘, 즉 군사와 무기의 수적인 우세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요건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필승의 요건은 ‘지략’이다. 바로 ‘소프트 파워’다. 지략에 있어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제갈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프트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바로 ‘책’이 아닐까. 읽는 능력은 물리적인 힘을 극복한다.
그런데 <삼국지>의 최종 승자가 누군지 아는가? 촉의 유비도, 강동(오)의 손권도, 위의 조조도 아니다. 영웅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후반부에 뜬금없이 ‘사마의’가 등장한다. 촉과 강동이 손을 맞잡은 가운데 위의 대도독 사마의는 제갈량과 한바탕 지략 경쟁을 한다. 이때 제갈량은 위를 향한 북벌을 여러 차례 시도하며 승기를 잡기도 했지만, 여섯 번째 북벌에서 결국 죽게 된다.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촉도 망한다. 그리고 강동마저 흡수한 사마의가 최종 승자가 된다. 그에 의해 진나라가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지>의 묘미는 그 누구도 승자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아이와 함께 읽었던 <삼국지>는 요약본에 지나지 않는다.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을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지만, 그걸로 내게 충분하지 않았다.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은 짧은 글로도 가능하지만 짧은 글은 긴 글이 가진 섬세한 묘사와 개연성 있는 사건의 전개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삼국지>는 중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인데, 짧은 글은 역사적인 배경을 담기에 부족해 보였다. 급기야 난 긴 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제 과거에 접었던 <삼국지> 읽기를 다시 시도하려고 한다.


반백 년이 가까운 나이, 4050 세대는 흥미를 좇아 살기보다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살고 있다. 아직 남은 생애를 생각하면 여전히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든다. ‘흥미 없이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삼국지>의 배경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끝없는 전쟁터에서 사는 우리 역시 무언가에 불을 지펴야 한다. 인생을 비유하는 책으로 <삼국지>만한 것을 찾기가 어렵다. 적어도 <삼국지>를 읽는다는 것, 이 나이에 건전한 흥밋거리가 아닐까.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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