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쌀

오피니언 / 정진익 농부 / 2021-09-13 00:00:54
자작나무

9월 들어 날씨가 선선해지고 가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다가오는 것이 추석이 다. 추석 차례상에는 많은 과일과 고기, 생선 등이 오른다. 그래도 차례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꼽으라고 하면 밥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인데 이 상식적인 추석의 밥에 대해 알아보자.


울산에서는 예로부터 벼를 나락이라 했기에 여기서는 벼를 나락이라고 하겠다. 밥은 이 나락으로 만든다. 추석 때 햅쌀로 밥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녹록지가 않았다. 요즈음은 많은 품종이 나와 일찍 수확하는 조생종이 언제나 생산돼 햅쌀을 먹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추수 전인 추석일 때가 대부분이라 햅쌀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우리가 먹는 쌀은 자포니카 계열로 동아시아에서 주로 먹지만 쌀의 주류가 아니다. 주류는 안남미로 알려진 인디카 종이다. 이 둘은 같은 종이 아니고 같은 속이다. 그래서 호랑이와 사자처럼 새끼를 낳을 수는 있지만 번식력이 없는 종이 나온다. 자포니카 종은 인디카 종의 돌연변이다. 이 자포니카 종의 특징은 찰기가 많은데 찹쌀은 더 찰기가 많은 돌연변이다. 이는 탄수화물 비중이 높아 추운 지방에서 더 많은 열량을 선호한 결과로 보인다. 


자포니카 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이 있는데 6월 21일경인 하지를 지나 일조량이 줄어들어야 꽃이 핀다. 그래서 보통 7월 말에서 8월 초에 꽃이 피고 9월에 익어 늦어도 10월 중순이면 거의 추수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10월에 추석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햅쌀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180일 정도 키워야 나락이 익으므로 보리를 심는 이모작인 경우 6월이 돼야 모내기를 하므로 모판은 5월 초에 만들면 10월 말이 돼야 하고 4월 중순이면 10월 중순이 된다. 그래서 거의 3월부터 준비해서 4월에 모판을 만들고 5월부터 모를 내 10월에 수확하게 되는 것이다.


음력과 양력은 거의 35일 정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2월 4일이 거의 입춘인데 이때가 음력 1월 1일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설날이 입춘을 중심으로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한다. 설날이 1월보다는 2월에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추석인 음력 8월 15일은 양력 9월 20일경이 되고 여기서 15일 내로 앞당겨지든지 뒤로 밀리든지 하는 것이다. 올해는 9월 21일로 거의 일치하는 추석이다. 그래서 올해 일반품종의 벼는 수확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햅쌀을 먹었을까? 그 답은 찐쌀에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올게쌀이라 불리기도 한다. “올해에”의 줄임말 “올게”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한다. 올해에 나온 쌀을 올게쌀이라고 하는 듯하다. 보통 벼 수확 전에 논바닥을 말리기 위해 논의 둘레와 가운데 물길을 내 물을 빼서 논을 말린다. 그래야 논에서 일할 수 있다. 이 물길을 울산에서는 “도구”라고 하고 이 도구를 내기 위해서 1줄이나 2줄의 나락을 베어내는데 이 나락을 도구나락이라고 한다. 이 도구나락을 큰 가마솥에 쪄서 말리고 이 말린 나락을 찧어서 쌀로 만들면 찐쌀이 된다. 밥으로 해 먹기도 하고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추석에 햅쌀을 먹었다고 하면 거의 찐쌀밥인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 고려시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그렇다. 앞에서도 말한 대로 현대에서는 품종이 개발돼 찐쌀은 시골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춘곤기가 있고 추곤기가 있다. 추곤기에 요긴한 식량이 도구나락이다. 춘곤기가 보리가 익기 전 식량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면 추곤기는 보리가 떨어지고 쌀이 익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도 춘곤기보다는 추곤기가 수월해 감자니 고구마니 해서 먹을 수 있었지만 쌀 구경은 이 찐쌀을 통해서 처음 하게 되고 이때부터 쌀밥 구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잘 말린 찐쌀은 굉장히 단단해 씹기가 어렵다. 한참을 입안에 가득 넣어 침으로 불리면 특유의 고소하고 단맛이 우러나와 어릴 적 별미였다. 입안에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더 많이 우러나와 다람쥐처럼 볼록한 입을 하고 먹던 기억이 새롭다.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누구나 먹던 찐쌀이 시골 장터에서나 가끔 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추석에 다시 한 번 추억한다.


정진익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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