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섬에서 건진 베리끝 ‘제망매가(祭亡妹歌)’

기획/특집 /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 2021-11-08 00:00:21
태화강 100리길 탐사(4)

경주 사람들도 걸어서 몰려와 물 맞던 지잔물탕, 지지마을 세 도랑 물탕골 거쳐 선바위 태화강으로

조선 중종 “울산의 입암연(立岩淵) 등 전국의 효험이 있는 곳에 기우제를 지내도록 하라”

중종은 1527(22년)과 4년 후에 두 번이나 같은 취지로 장소까지 정해주며 팔도관찰사들에게 지시했다.

“근래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곡식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금년의 가뭄은 전에 비해 더욱 극심하여 두어 달이 넘게 가물어 곡식이 모두 말라버렸다. <여지승람(輿地勝覽)>을 상고하면 비를 빌어 응답이 있는 곳으로는 다음과 같았다. 경상도에는 울산의 입암연, 영산의 법사지(法師池), 성주의 대자암(大子岩), 선산의 이어연(鯉魚淵), 고성의 용수암(龍水岩), 의성의 혈동(穴洞)과 천암(穿岩), 밀양의 구연(臼淵) 등이다. 소재지의 수령으로 하여금 제물을 정결하게 마련하여 정성을 다해서 제사 드리게 하라.”

이처럼 중종 때 두 번의 혹심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낸 곳은 경상도 8곳 중 울산에는 ‘입암연’이 유일했다.

큰비에 떠내려와 처녀와 스님 깔고 앉은 ‘선바위’

입암마을에 어느 처녀가 냇가에서 빨래하고 있었다. 그때 태화강의 상류에서 큰 폭우가 내려 입암마을 쪽으로 밀고 내려올 때 성난 흙탕물에 거대한 바위가 떠내려오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처녀가 엉겁결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머! 얄궂어라. 바위도 장가가는가봬?”


그때 우람한 바위는 처녀를 깔아뭉개려고 다가왔다. 놀란 처녀는 쥐고 있던 빨래방망이를 떨어뜨리며 자빠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스님이 처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려 그녀를 와락 껴안았을 때였다. 그 바위가 두 사람을 깔고 앉아 우뚝 멈춰 섰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를 ‘선바위’라고 불렀다.
 

▲ 선바위 앞에서 입암리 주민 이상구 씨의 설명을 듣는 태화강백리길탐사팀.

 


범서읍 지지와 중리마을에서 각각 다르게 부르는 ‘중리천(中里川)’

이 하천은 지지마을의 공부암도랑, 큰들도랑, 뒷들도랑의 물이 합류해 남쪽으로 흐르다가 지잔물탕이 원류인 물탕골을 만난 후 선바위 서쪽에서 태화강 본류와 합류한다. 지지와 중리마을에서는 구유처럼 길게 생긴 ‘구이소[槽沼]’를 기준으로 지지도랑(지지천)과 중리도랑으로 각각 다르게 부른다.  

 

▲ 중리천 중류. 지지마을 공부암도랑, 큰들도랑, 뒷들도랑의 물이 모여 물탕골과 만나고 선바위 서쪽에서 태화강 본류와 합류한다.

높은 오르막길에 경순왕도 주민들도 모두 학을 뗀 ‘허고개[虛峴]’

이 고개는 남쪽의 범서읍과 북쪽의 두동면으로 나뉘는 경계 지점으로 동쪽의 국수봉과 서쪽의 연화산을 잇는 긴 등성이를 ‘뒷비알’이라 한다. 두동면 주민들이 40리의 먼 울산장을 다녀오면서 이 고개를 넘을 때 경사가 심해 허기에 지친다고 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이 고개 직전에 중리천의 ‘물풍디’나 ‘구이소’에서 물이라도 마신 것이 겨우 힘이 되었다. 예전에는 지잔물탕이 있었던 곳에 허고개주막[虛峴酒幕]이 있어 쉬어갔다. 


한편 경순왕이 남루한 중과 제의를 지내고 사라진 후 곧 그가 문수보살임을 깨닫고 이 고개까지 쫓아왔으나 사라져 버려 허! 허! 하고 탄식했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 허고개 고갯마루에 있는 고분. 도굴의 흔적이 있다.

 

▲ 허고개주막 터. 지잔물탕에 물 맞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국수와 막걸리를 팔았다.


한때 국수와 막걸리까지 팔 정도로 번성했던 ‘지잔물탕’


지잔물탕은 예전에 범서읍 중리에서 허고개 고갯마루에 오르기 전 동쪽에 있었다. 예전에는 땀띠와 신경통 등에 효험이 좋아 외지에서는 주로 경주 주민들이 도보로 몰려와서 물을 맞아 인근의 주민들은 자리가 없어 심야를 이용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으나 현재 폐쇄됐다. 

 

▲ 지잔물탕 터. 땀띠와 신경통에 효험이 좋아 예전에는 경주 주민들도 걸어와서 물을 맞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지만 지금은 폐쇄됐다.

이회명(李會明, 1851~1911))의 한시 ‘지잔약수 터’

약수터는 어디에 있나/ 지산(芝山) 아래에서 흘러오네.
마시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니/ 한 잔 마시고 온갖 병을 물리치세.

베리끝에서 들려오는 울산 민중들의 ‘제망매가(祭亡妹歌)’

어느 해 한여름에 며칠째 큰비가 쏟아져서 태화강은 온통 흙탕물을 이루며 무서운 기세로 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이때 젊은 부부가 시집가지 않은 누이동생과 함께 베리끝을 막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를 뒤따르던 두 여자가 공교롭게도 함께 발을 헛디뎌 굽이치는 강물에 휘말렸다. 사내는 자신의 앞에서 막 떠내려가는 옷자락을 엉겁결에 움켜쥐고 허겁지겁 끌어냈는데, 아내였다. 그는 얼른 누이동생을 찾았으나 이미 강 한가운데에 떠내려가면서 그를 향해 손을 길게 뻗더니 이내 사나운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 누이동생에 대한 울산 민중들의 부채감은 가까운 하류에 있는 삼호섬에 그 시체를 한 총각이 발견하도록 설정해 마음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 주는 후일담 전설이 탄생했다.


그 후 가련한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모내기 노래로 승화돼 각각 다르게 전해오는데, 최근에 채록한 이 민요를 소개한다.

“찰방찰방 베리 끝에/ 무정터라 울오라바/ 나도 죽어 저승 가면/ 서방님부터 정할래라.”(제보자: 황대승(남, 72세), 울주군 삼남읍 작괘들길 ××. 2021년 2월 15일 삼남읍 심류정 갤러리)

▲ 베리끝.


‘나가소(羅哥沼)’의 유래: 나가(羅哥) 문중의 소(沼)인가? 당장 “나가소!”인가?


다전마을의 낙안산 끝에 나(羅) 씨들이 큰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은 땅이 넓고, 기름져서 풍족한 마을이었다. 어느 날 해가 문수산에 기울었는데, 지친 모습이 역력한 한 노인이 이 마을에 들어와 가장 큰 집을 찾았다. 


“동래로 가는 과객인데, 갈 길이 멀어 헛간 짚북데기에라도 하룻밤 자고 갈 수 없겠소?”
“당장 나가소!” 


“당신이 나가(羅哥)니까 당장 나가! 나는 성(性)이 사천(泗川) 목가(睦哥)니까 절대 못 가!”


“여봐라! 이 미친놈을 당장 끌어내라!”


“나가지 말라 해도 나간다. 나가들이 이곳에서 영원히 나가도록 해 줄 것이다!”


다음날 그 노인은 영축산에 올라 나 씨들의 마을을 향해 무슨 주문을 외우더니 지팡이로 구영리부터 다운동까지 선을 긋고 자취를 감췄다. 그때 갑자기 큰비가 쏟아져서 나 씨들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생긴 소(沼)라고 하여 ‘나가소’라고 전해오고 있다.
 

▲ 나가소.


울산 최초의 근대식 철근 콘크리트 교량 ‘구 삼호교’

구 삼호교는 1924년 5월 22일 준공한 울산 최초의 근대식 철근 콘크리트 교량으로 중구 다운동과 남구 삼호동을 이어준다. 일제가 울산과 부산 사이의 내륙 교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식민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건설했다. 1924년 5월 22일 개통식 때는 60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와 대성황을 이뤘다.

 

▲ 구 삼호교 교각 행렬.

 

삼호섬공원 “나는 남구 삼호동이 좋아”

중구청장 “그래도 주소지는 중구 다운동이야”


이 공원은 중구 다운동과 남구 삼호동을 잇는 신삼호교 서북쪽에 인접해 있다. 태화강 생태공원 조성 1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 12월 13일 공원으로 개장했다. 


2020년 7월 울주군 삼남읍 출신인 이우정(73세) 선생의 제보로 베리끝에서 물에 빠져죽은 누이동생 시체가 이 섬에 떠 내려와 떠꺼머리 총각이 건져서 마음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고 고이 묻어줬다는 귀중한 베리끝 전설의 후일담이 발굴됐다.
 

▲ 삼호섬 전경.

원내골[院內谷]이라는 지명 남긴 ‘굴화원(屈火院)’

굴화원은 범서읍 굴화리 백천마을에 있었던 원(院)이다. 이 마을의 남쪽에 원내골[院內谷]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는 ‘굴화원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원의 명칭이 지명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웅촌면 대복리의 ‘원터’도 있는데 이는 대양원(大洋院)이 있었던 곳이다. 이 원 인근에는 범서읍 망성리와 서사리에 견분원(犬墳院)과 고지원(古之院)이 각각 있었다. 

 

▲ 해연, 낭관호, 사군탄 추정지.

 

글=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사진=김정수 사진작가

※이 글은 울산민관협치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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