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생태학적 전환과 시민운동

기획/특집 / 이근우 시민, 농부 / 2021-10-12 00:00:10
농부 철학

농생태학의 이해(9)

농생태학은 지속 가능성의 학문입니다.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포괄적이며 총체적인 탐구를 추구합니다. 이 연구는 생태학에 바탕을 둔 이론(과학), 그 성과에 기초한 농법의 실천, 그리고 이론과 실천의 성과를 동력으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추동하는 (시민)운동을 포함합니다. 지속 가능성을 대전제로 유기적인 관계인데, 이론과 실천과 운동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관련이 아니라 세 요소가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 세 요소의 어느 한 가지가 나머지를 제한하거나 고무할 수 있습니다. 농업이 처한 상황의 고려 없이 어느 한 요소가 의도적으로 강조돼서는 농업의 지속 가능성의 가능성을 약화하거나 무력화할 것입니다. 실제로 실천에 해당하는 농사방식을 담당하는 농민이 농생태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친환경인증제도를 예로 들어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인증 농가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증제도가 인증 농가의 소득을 보존, 향상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환경 농사방식을 적용하는 것에 결국 실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감소 요인입니다. 친환경 농업으로의 전환에 대한 공적인 교육이나 경과 과정의 보장 없이 인증을 획득한 농가에게 친환경에 대한 모든 의무를 전가하는 것도 농민의 부담이자 반감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친환경인증제도를 일종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꾀하는) 농생태학적 운동이라고 한다면, 정책 변화의 의지가 오히려 실천영역을 옥죄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농생태학은 농업의 농생태학적 전환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 진정한 가을꽃, 구절초

단계적 전환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식품과 농업을 위한 지속 가능성의 5가지 핵심 원칙’ 중에서 ‘식품 시스템의 생산성, 고용 및 부가가치 증대’를 첫 번째 원칙으로 정하고 “식량 및 기타 농산물의 충분한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생산성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농경지의 확장을 제한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강화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식품과 농업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에 필요한 변환의 핵심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기는 하나 농민의 관점에서는 모순된 주장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생태학자, 스티븐 R 글리에스만은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위해 다섯 단계를 제시합니다. 첫 3단계는 농민의 실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농업의 농생태학적 전환은 농업의 방식과 과정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단계적 전환의 조건은 전환을 전후해 농민의 생산성과 경제성에 심각한 변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단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산업 및 관행의 효율성 증대: 값비싸고, 희소하거나, 환경에 해를 끼치는 투입물의 사용과 소비를 줄이기 위해 산업 및 기존 관행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이 수준에서 변화의 주요 목표는 산업 투입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 투입물을 줄이고 부정적인 영향도 감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종자 개선, 최적의 심기 밀도, 좀 더 효율적인 살충제와 비료 사용, 정확한 물 공급과 같은 실천 통해 생산량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킵니다. 말하자면 “정밀 농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와 같은 방식은 본격적인 농생태학적 전환이 아니라 일종의 선수 조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단계. 외부 투입물의 대체: 이 단계에서의 전환 목표는 환경에 해로운 농자재 제품을 천연 자재로 대체해 환경적으로 건전한, 재생 가능한 자재로 교체하는 것입니다. 유기농업이 이러한 접근 방식의 예입니다. 합성 질소 비료를 대체하기 위한 질소 고정 덮개작물 및 돌려짓기, 해충 및 질병의 자연 방제, 비옥도 및 토양 유기물 관리를 위한 유기 퇴비 사용 등입니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 기본 농업생태계는 일반적으로 더 단순화된 형태에서 변경되지 않으므로 투입물 대체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3단계. 생태학적 과정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생태계의 재설계: 이 단계에서 전체 시스템 설계의 근본적인 변경은 1단계와 2단계에서 계속되는 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합니다. 생태학적 기반 돌려짓기, 다작작물, 혼농임업, 동물과 작물의 통합과 같은 조치를 통해 농장 구조 및 관리에 다양성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 해바라기

전환 준비단계의 가치

농생태학적 전환에서 1단계와 2단계는 전환의 준비단계입니다. 산업화된 농업 방식, 즉 화학 자재 사용과 대규모 단작재배 형태의 농법을 건전하고 간결한 시스템으로 정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특히 2단계에서 권하는 천연 자재의 광범위한 도입과 경작에서 다양성 확보는 자칫 노동과 비용의 부담을 크게 늘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세화된 소득구조는 농민에게 그러한 변화가 위험한 모험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농생태학의 운동 요소가 적극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생태농업 관련 시민운동은 3단계에 진입한 것처럼 보이는 농업과 농민에게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정부의 친환경정책과 다르지 않아 실천하는 농가에 과도한 의무와 책임이 전가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더구나 합리적인 설계나 과학적인 검증이 부족한 상태로 짓는 농사는 몇 해 가지 않아 만성적인 흉작을 겪게 됩니다.


사실 1, 2단계의 농사에 자발적으로 진입하는 농민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농생태학적 전환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농작물의 품질 향상에 큰 도움을 주는 방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문제는 있으나 천연 자재를 원료로 하는 액(체)비(료)의 광범위한 사용은 이미 일반화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 농업의 고비용 구조에 대한 무의식적 반성과 저항일지도 모릅니다. 철저하지는 않더라도 1, 2단계의 유용성에 눈뜨기 시작한, 그리고 언제든 기회가 되면 진입할 준비가 돼 있는 농민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운동 차원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확대해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농생태학적 전환의 동력인 것입니다.
 

▲ 땅 기운 서린 버섯

계몽이 아닌 중재로서의 운동

농생태학이 말하는 사회 경제적 변화의 핵심은 유통입니다. 유통 시스템이 농민의 이해관계와 유리된 채 생산자인 농민을 역으로 압박하는 형태로 고착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농산물 경매에서 벌어지는 등급별 가격의 엄청난 격차는 농민의 소득을 갉아먹는 적폐와도 같은데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농산물의 품질에 발언할 수 있고, 생산자는 제한된 범위에서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직거래가 대폭 늘어나고 있으나 준비와 여력의 부족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킬 만한 서비스 체계를 갖춘 농민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농민에게서 농산물을 구매해 유사 직거래를 하는 상인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어 농민의 직거래 활성화가 다시 또 침체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시민) 운동이 상호 보완적 기능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활동가들이 1, 2단계로 진입했거나 진입을 원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세분화한 단계의 진행 상황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는 생산 활동 동참으로 농민의 책임감과 의욕을 고무할 것입니다. 아울러 생산자 중심의 유통 채널을 구축하는 데에 중재자로 나서 소비자의 생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구할 수 있다면, 전환 과정에 참여하는 농민의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충족하는 것이어서 성공적인 단계 완수에 힘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농업의 지속 가능성의 든든한 밑천이 마련되는 운동이 아닐까요?

 

▲ 토란과 고추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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