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어서 잘 모르는 소중함에 대하여...가을 끝자락의 고헌산

기획/특집 / 노진경 시민 / 2021-11-22 00:00:42
행복 산행
▲ 낙엽송 숲 뒤로 보이는 고헌산

 

▲ 산의 초입, 나무들이 앙상하다.

 

가을이 완연하다. 산촌에 살며 변화하는 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감동이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상에서 잊고 종종 더 소홀해지는 것처럼 거실과 마당에서 매일 마주하는 자연에 익숙해지니 감흥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바쁜 일상을 보낸다는 핑계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가족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일상의 환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가까운 산을 떠올렸다. 산허리까지 나뭇잎이 벗겨진 고헌산을 찾기로 했다. 

 

▲ 오르던 중 뒤돌아본 산내면

 

▲ 아직은 남은 억새들이 볕을 받아 반짝인다.

 

▲ 나무들은 겨울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오전 시간 동안 업무를 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하고 난 오후, 고요히 홀로 산으로 들었다. 무엇이든 오롯이 혼자서 하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중턱인 와항재(해발고도 535m)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하고 등산화를 고쳐 신는다. 끈을 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청명한 하늘과 주황색으로 물든 낙엽송이 곱다. 


산길로 접어든다. 산하인 마을에서 산을 볼 때는 아직 가을의 모습이었는데, 산 중턱의 나무들은 잎사귀를 다 떨어트리고 처연하다. 자박자박 걷는 소리가 고요함을 메운다. 오후 두 시 반, 초입에 산행을 시작하는 이는 혼자인 듯하다. 어느 정도 오르다 보니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지금 올라가기에 늦어서 위험할 텐데…” 걱정의 말들을 받는다. 걱정하는 마음은 감사히 받고 그들의 불안은 흘려보낸다. 배낭 속 헤드랜턴과 방한복 덕인지도 모른다. 

 

▲ 울주군 소호마을과 산그리메

 

▲ 문복산과 와항재

 

▲ 청명한 가을하늘과 오리나무

가파른 오르막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와 거친 호흡과 함께한다. 걸음의 수와 비례해서 머리와 마음이 가벼워진다. 오르다 뒤를 돌아 산하를 내려다보니 마을이 고요하다. 어쩌면 마음이 고요해져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빛이 고개 넘어 사선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산을 오를수록 더 겨울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여전히 가을도 남아있다. 앙상한 나무와 구절초, 빛에 반짝이는 억새들, 겨울과 가을이 뒤섞여있다. 앙상한 나무가 억새 틈에 한 그루 우뚝 서 있다. 그 뒤로 가지산이 볕을 듬뿍 받았다. 그 모습이 보이는 소나무 아래 판판한 돌 위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꺼내 홀짝인다. 이런 여유가 좋다. 문득 이렇게 여유를 부리다가는 하산길에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 나무 한 그루와 가지산을 바라보며

 

▲ 소나무 아래 앉아서 마시는 커피

 

▲ 길 위에서 바라본 정상

마음을 바꾼다. 정상을 가려던 마음을 버렸다. 되어지는 만큼 걸으며 과정을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다시 여유가 생겼다. 땀이 다 식고 커피가 다 비워졌을 즈음 다시 배낭을 업고 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오르막 다시 온몸에 열기가 돈다. 나지막한 소나무와 누군가의 소망들이 만든 돌탑을 만난다. 그 돌탑들을 지나니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많다. 정상까지 고작 200~300m 거리였지만 걸음을 돌린다. 


물론 정상의 경치와 성취감도 좋지만, 오늘은 좀 더 고요히 내면에 집중하고 싶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너덜길로 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조심으로 오는 긴장이 몸을 더 고되게 한다. 주의하되 긴장은 내려놓는다. 척박한 내리막을 지나 소나무 터널을 지나니 참나무 잎사귀가 뒹구는 흙길이 나온다. 

 

▲ 나즈막한 소나무와 돌탑들

 

▲ 하산길에 원없이 밟았던 낙엽들

 

▲ 나무 사이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사락사락 부러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느낌이 좋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 사이로 해가 넘어간다. 바람이 차갑다. 쓸쓸하지만 단단해진 느낌이다. 산길이 끝나가니 아쉽다. 언제나 산을 빠져나올 때면 그런 마음이다. 매일 마당에서 만나는 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산으로 드니 더 소중한 마음이 든다. 이 기억을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때때로 떠올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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